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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통신]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_ 박김영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

공감의 목소리/공감통신

by 동-감 2019.07.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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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옛날 우리 앞집에 살던 숙이 엄마 알지?”

“누구? 난 모르는데...”

“얘는, 왜 몰라? 우리 집 앞에 살던 숙이네 엄마...”

“난 모르겠어, 생각나지 않는데...”

“아~ 맞다! 넌 모르겠다, 그때 넌 집에 없었지... 내가 깜박했네.”

순간, 나도 모르는 숙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와 동생들은 이야기하며 그들만의 공감의 웃음과 맞장구가 이어진다. 나는 내가 모르는 시간의 낯설음이 엄마와 동생들과 거리가 느껴진다. 나는 어린 나이에 선택의 여지 없이 이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온전히 엄마가 나를 업고 학교에 등하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재활치료와 공부하기 위해 집을 떠나야 했다. 동생들은 엄마 곁에서 엄마에게 투정도 부리고, 엄마와 싸워가면서도 학교를 다녔지만, 나는 낯설고 무섭기만 한 재활원이라는 곳에 가야만 했다. 이 공간은 나에게 익숙해지지 않았고, 밤마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닦아야 했다. 그래서 늘 가슴 한구석 채워지지 않은 갈증이 있고, 이렇게 엄마와 형제들과 함께 공유되지 않는 시간의 거리가 느껴질 때마다 내가 이방인 같기만 하다. 가족이 함께 공유하는 시간 안에 나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너 이 음악 아니?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영화의 음악인데 너무 좋아. 너도 이 영화를 봤으면 좋을 텐데, 이 음악을 영화와 같이 봐야 더 좋은데... 네가 영화 보러 갈 수 없으니까 할 수 없지.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 올리비아 핫세 인데, 진짜 예뻐 내가 이 올리비아 핫세 사진 구하느라 어려웠어. 그런데 너에게 특별히 이 사진을 줄게 이것 정말 귀한 거야.”

나는 오래도록 올리비아 핫세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도 보지 못했으면서...

나와 같은 또래였던 옆집 언니는 영화와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유행하는 가요와 팝송 영화 음악까지. 집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나에게 문화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고 배우, 가수에 대한 소식도 들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감독, 프랑코 제피렐리)’에 대한 영화 스토리는 책으로 알고 있었지만, 영상과 음악이 있는 영화는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것인지 늘 궁금했다. 이 궁금증은 이후, 비디오가 나오고 남동생이 첫 월급으로 비디오플레이어를 사서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 비디오를 대여해서 보고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하지만 집에서 TV 화면으로 영상과 음향을 보는 것과 달리 영화관에서 좋은 사운드로 영화를 관람하는 묘미에 대한 것을 영화관에서 ‘늑대와 춤을(감독, 케빈 코스터너)’이라는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 ‘늑대와 춤을’에서 대지를 두드리며 달리는 버팔로의 두드림과 웅장함은 가슴을 뛰게 하는 감동이 있었다. 그래서 좋은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나는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를 보고 몇 년 후, 사람이 세월을 기억하는 방식이 문화와 사회와 깊은 연결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과거를 이야기할 때 ‘내가 초등학교 몇 학년 때...’ 또는 ‘내가 중학생 때...’ ‘내가 군대에서...’라고 이야기를 사회적인 시점으로 시작한다.

2005년에 장애여성공감에서 장애여성 생애사 쓰기 프로젝트 사업으로 여러 장애 유형과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장애여성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며 살아 온 장애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의 자기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차별과 억압을 온전히 몸으로 살아온 절박함이었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이야기 정리가 안 되는 것이었다. 언제, 어느 때, 몇 살 때 있었던 경험인지 그 시점을 알 수가 없었다. 정규교육을 시점으로 기억될 수 없는 시간은 매일의 일상이 몇 년간 다르지 않게 살았고, 어떤 사건이 정확하게 몇 살 때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해...’, ‘둘째 동생이 결혼하던 해...’, 가족사에 자기 세월이 있는 것이다. ‘늑대와 춤을’ 영화에서 나이를 세는 세월이 없듯이 사회적인 과정에 제외되어온 사람들에게는 다른 시점으로 기억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늑대와 춤을’의 인디언과 이 사회의 주변인으로 살아온 장애여성과의 만남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나는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영화를 보기 위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관을 찾아야 했다. CGV 영화관은 화면 앞 좌석이 장애인 좌석이라 영화 한 편 보고 나오면 며칠을 목이 아프기 때문에 뒤에서 화면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다른 영화관을 찾아서 그 영화상영 시간에 이동과 나의 시간을 무리해야 했다. 이렇게 힘들게 영화를 보려는 것은 왜? 어떻게? 기생충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고, 소수자로서 어떤 공감대가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어떤 행동이 가능한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이 시대에 우리는 공유하고, 공감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안 보고가 아니라 이 시대에 왜 이 영화가 필요한지 함께 어떻게 공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시/청각 장애인은 이 영화에 자유로운 접근이 안 되고 있다. 한국 영화에 화면 해설이 안 되고 자막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년부터 장애인 영화관람권을 위해 법원에 영화관, 배급업자를 상대로 권리구제청구소송을 하였다. 그래서 이번에 법원에서 조정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영화관과 배급업자들은 자기들은 이행할 책임이 없다고 책임방기를 했다. 우리는 작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청각장애인이 자막이 없어 영화를 볼 수 없었던 것을 진정서를 냈다. 그것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영화관, 배급자들에게 책임 없다고 기각하였다. 이들은 이것을 내세워 더욱 책임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들은 장애인을 고객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문화 차별은 사회적 배제이다. 문화에서 배제되면 시대적인 공유와 공감을 할 수 없고, 소외되는 상태가 된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사회에서 문화를 함께하지 못하면 가족 안에서 지역 안에서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문화는 이제 권리이다. 시대적인 아픔을 함께하고 문화정보를 공유하고, 관점을 성장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장애인은 환경이 생존하게 한다. 인간이 인간다움으로 진화하는 것도 어떤 환경에 놓였는가에 달려 있다. 장애인이 생존 가능한 환경 중에 문화도 해당된다. 문화는 소통이고 공감이고 인간다움의 필수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생존하기 위한 문화가 환경의 기본 권리이다. 

나는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당당한 고객으로 편리하고 안전하게 영화를 관람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다. 나는 내가 영화라는 문화의 권리를 침해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글_박김영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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