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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통신] 듣고 공감할 줄 아는 법률가가 최고의 법률가다 _하승수 변호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공감의 목소리/공감통신

by 동-감 2019.06.2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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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휴업을 한 지 14년 차가 되고 있지만, 그래도 최근 몇 년 동안 재판정에 갈 일이 꽤 있었다.

2006년 변호사 휴업을 한 후에 처음 행정법원에 간 것은, 정보공개소송의 원고가 되어서이다. 2014년부터 청와대, 국회 등 여러 기관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비공개 결정을 받는 바람에 직접 원고가 되어 행정소송까지 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6건의 정보공개소송을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부는 원고가 멀리서 오는데 변론을 가능한 빨리 종결하자고 말했던 재판부이다.

사실 필자가 사는 곳이 충남 홍성이어서 서울행정법원에 오려면 기차 타고 서울 와서 다시 행정법원까지 와야 했다. 그런데 단 한명의 재판장만이 그런 원고의 사정을 알아줬다. 그것에 고마워할 일인지는 모르지만, 재판의 결론에 관계없이 그 재판장이 최고의 재판장이었다. 새벽밥 먹고 기차를 타고 여러 번 법정을 오가야 하는 사람의 사정을 알아주는 것이 그저 고마웠을 뿐이다.

박근혜 정권 마지막에 두 가지 일로 피고인이 되어 형사재판을 받게 되었다. 하나는 광화문 광장에 천막을 친 일로 벌금형으로 기소가 된 것이고(국유재산관리법 위반), 다른 하나는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것으로 역시 벌금형으로 기소가 된 것이었다(집시법 위반). 그래도 변호사를 7년 반하면서 형사법정에도 꽤 출입을 했었는데, 피고인이 되어 경찰서, 검찰청을 가고 법원을 가게 된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법정에 앉아 재판을 기다리면서, 앞의 사건들에 대한 재판을 방청하게 되었다.

대부분 벌금형 사건들이었기 때문에 불구속 피고인들이 직접 나오는 사건들이 많았다. 여러 법정에서 방청을 하면서 본 재판장의 반응은 똑같지 않았다. 피고인의 얘기를 들어주려는 재판장도 있었고, 짜증을 내는 재판장도 있었다. 그중에 기억이 나는 사건은 이렇다.

집시법 위반 항소심 사건에서 필자 바로 앞 순서에 재판을 받은 피고인이 있었는데, 피고인이 직접 나와서 재판을 했다. 게임을 같이 하던 사람들끼리 분쟁이 생겨서 형사재판까지 오게 된 사건 같았는데, 재판장이 꽤 오랜 시간 피고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사건의 내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솔직히 게임에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무슨 얘기인지를 알기는 어려웠다. 필자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재판장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판결 선고일에 법정에 갔는데, 필자사건 선고 바로 앞에 그 사건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결론은 무죄였다. 그리고 필자도 무죄였다. 솔직히 필자가 무죄를 받을 것은 예상했기 때문에, 앞 사건에 대한 결론이 더 좋았다. 재판장도 게임이 생소했을 텐데, 피고인의 얘기를 끝까지 들으면서 이해하려고 했던 재판장의 태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필자도 법률가가 되면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1997년 검사시보 시절에 피의자·참고인의 얘기를 경청했더니, 어떤 사람은 무혐의로 풀려나게 할 수 있었고, 진짜 나쁜 사람은 인지해서 처벌하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내가 속해 있던 방의 검사였다. 그는 경찰이 포승줄에 묶인 피의자를 데려오면,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를 쥐어박는 것부터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결국 그 피의자의 얘기가 맞았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법률가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실정법이나 판례를 공부하는 능력이 아니라 듣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맡고 있는 사건의 원·피고, 피고인, 피해자 등의 처지가 되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것이 잘 안 되는 법률가들이 많다. 법률가를 양성하는 과정에서도 듣는 능력에 대한 교육은 부족한 것 같다. 들을 줄도 모르는 법률가들이 법을 다룬다는 것은 재앙이다. 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건을 다루고 판단을 한다는 말인가?

지금의 시대에 필요한 법률가의 상은 지나치게 무거울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억울하다고 하면 그 억울한 얘기를 들어주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왜 여기까지 왔을까를 한 번쯤 생각해주는 법률가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필자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경험이 너무 많다. 검사시보 시절 어떤 사건에서는 경청을 했지만, 어떤 사건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변호사 시절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찾아오던 여러 사람의 얘기를 충분히 듣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건에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어려움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부끄럽다. 스스로는 잘 못 했지만, 그래도 법률가의 제1의 미덕을 꼽으라면 듣는 것과 공감 능력을 꼽고 싶다. 잘 듣는 법률가가 최고의 법률가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할 수 있는 법률가가 최고의 법률가다.

 

글_ 하승수 변호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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