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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기억’ _ 황필규 변호사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변

by 동-감 2019. 6. 1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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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겪거나 접했고 기억한다. 가습기살균제가 문제되었던 2011, 나는 전혀 그 기억이 없다. 잠시 외국생활을 하고 있었고 한국 뉴스를 거의 보지 않았다. 2013년 한 서울 변호사 모임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믿을 수 없었고 동참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이 참사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참사는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의 시간, 그 순간들을 함께하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2015년 말 검찰의 수사와 함께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사회적 참사에 관심이 가져왔던 터라 언론보도를 지켜보며 참사의 진상을 조금은 알게 됐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참사 상황이 그러하듯이 책임져야 할 주체들이 전혀 책임지고 있지 않음도 알게 됐다. 언론의 관심도 높고 함께하는 단체와 변호사들이 많을 것이라 판단했기에 내가 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다루는 한 단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옥시 본사 RB가 있는 영국에서 진행될 소송에 관한 자문을 요청했다. 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와 관련해 다국적기업의 본국에서의 소송가능성을 연구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자문에 응했다. 영국변호사들과도 긴밀히 협의하며 소송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을 만났다. 유엔에 추가진정을 제기하고, 옥시 본사 RB의 투자자인 네덜란드 연기금 윤리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외국 소재 자회사의 부정부패 혹은 뇌물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영국의 특별검찰인 중대사기수사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피해자들을 만난 이상 떠날 수 없었다. 두 가지 고민에 시달렸다. 거의 모든 집단 참사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분열한다. 전혀 다른 경험과 인식을 가진 이들은 의견일치를 보기 어렵고, 극한적인 상황에서의 인식과 의견을 불일치는 곧바로 적대적인 관계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관계에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분들을 만나며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지만 쉽지 않았다. 사회적 참사, 인적 재난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간 극단적인 힘의 불균형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옥시의 경우, 영국 본사와 국내 회사의 최고경영자들, 대형로펌 변호사들, 위기관리 자문회사들이 총동원된 전략회의를 매일 하며 대응을 모색했다. 반면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소수가 모여 부족한 정보에 근거한 논의를 간신히 이어가고 있었다. 피해자들의 내외적인 갈등, 힘을 불균형으로 인한 소외와 분노는 피해자의 책임이 아니며, 이를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것은 참사를 참사로 답하는 것이다.

SK케미칼 자문 변호사가 찾아와 회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2년 전쯤 세계 500대 기업 중 상당수를 고객으로 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자문회사 사람에게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해 물었을 때 모든 진실을 밝히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는 것이 기업이 사는 길이라고 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리고 회사가 관련 물질에 대한 검사를 안했을 리 없고 밝히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최근 그 회사가 자체 검사를 한 사실, 검사 결과를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참사의 책임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기업과 정부가 관련된 진실의 은폐를 통해, 과학적 기준에 의한 피해 입증이라는 접근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더 심한 2, 3차 가해를 가하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여러 기업들이 유해물질을 생산, 판매, 유통시켰고 그 유해물질을 통해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이를 사실상 방치했고 사후적으로도 그 진실 은폐 행위에 사실상 가담하거나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피해자들과의 진정한 만남, ‘기억의 재구성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 철저한 진실규명, 책임자의 처벌, 접근 방식의 변화를 통한 피해자들의 실질적 구제, 재발방지책의 마련,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끝날 수 없다.

글_황필규 변호사

 

* 이 글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웹진 vol. 3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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