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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통신] 어떤 평범하고 특별한 힘 -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공감의 목소리/공감통신

by 동-감 2019.03.0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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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 아이’(おおかみこどもの)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호소다 마모르 감독의 2012년 영화다. 평범한 여대생 하나는 어느 날 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하나가 사랑한 는 늑대인간이었다. 사랑하는 는 눈 내리는 날 태어난 유키와 비 오는 날 태어난 아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버린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흥분하면 귀가 쫑긋하고 꼬리가 쏙 나오는 늑대아이 둘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하나의 육아일기이며 남들과 달리 태어났지만 여느 아이들처럼 자라나는 유키아메의 성장기다. 영화는 특별한 소재를 선택했지만 도리어 지극히 평범하고 평온한 일본 농가의 일상을 보여준다. 주인공 하나의 얌전하고 따뜻한 심성이 영화의 한 축을 이끌어간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포인트도 여기에 있다. ‘하나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람이다.

 

  특별함을 숨기며 살아야 하기에 농촌으로 들어온 가족들은 이웃들과 관계 맺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러나 하나는 자기 방식대로 웃으면서 헤쳐 나간다. 결국 두 아이가 늑대의 길과 인간의 길 앞에 서 있을 때도 어느 한 쪽을 강요하지 않고 그들이 잘 선택할 수 있도록 곁에 있기만 한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데 기괴할 정도의 강인함이 느껴졌다. ‘하나가 서 있는 사회는 봉건적이며 지극히 인간중심적(동물이나 다른 생명에 대한 배타적인 의미에서)이며, 싱글맘에게는 가혹한 정글과 같은 곳이다. 그러나 하나는 무수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자신 인생에 대한 원망이나 타인에 대한 분노 없이 스스로의 길을 간다. 영화 곳곳에 숨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풍경들의 불편함들을 상쇄하는 하나의 상냥함이 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한편 평범하게 살 수 있었으나 특별한 삶을 선택한 인물이 있다. ‘미스터 션샤인은 의병에 대한 이야기다. 3.1운동 100년을 즈음해 뜨거운 불꽃으로 살다 사라진 이들을 불러낸 드라마는 사랑받았다. 드라마를 좋아했고 주인공 고애신을 사랑했다. ‘고애신은 귀족가문의 손녀로 태어났으나 동시대 여성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거부한다. 독립운동으로 아들내외를 잃은 할아버지는 손녀를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가 의병 되는 것을 반대하지만 애신은 거절한다. 그녀는 자신의 길을 선택한 후 말한다. “할아버님껜 잔인하나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 하오. 불꽃으로. 죽는 것은 두려우나 난 그리 선택했소.” 불꽃으로 살기를 선택한 애신이 당대를 설명하는 대사는 이렇다. “신문에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가베, 불란서 양장, 각국의 박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나의 낭만은 독일제 총구 속에 있을 뿐이오.” 일제에 귀화하고 투신한 귀족들이 가베와 외국 신문물을 즐길 때 그녀는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그녀와 의병들이 평범한 일상을 거부한 대가로 치룬 희생은 혹독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일상을 빼앗겼다. 쫓기거나 고문을 당하고 살해 당하거나 국외로 내 몰렸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은 그들의 시절은 소박했으나 찬란하고 위대했다.

 

  두 영화와 드라마는 특별했으나 평범하게 살아낸 사람과 평범하게 살 수 있었으나 특별하게 살아 낸 사람의 이야기로 상반된다. 그러나 두 인물은 비슷하다. 자신의 삶이 어디쯤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가진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지만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지껄이는 정치인과 사회 지도층이라는 인간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생각하면 두 인물의 품위는 빛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운명의 축 위에 멈추지 않고 자신과 타인의 삶이 윤택해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아름답다. 오로지 자신만 사랑하기에 타인이나 공동체가 끼어 들 틈도 주지 않는 인간들의 세상이 쉽게 망하지 않는 이유도 그러한 사람들이 늘, 언제나, 어느 곳에나 존재하기 때문은 아니겠는가.

 

  누구라도 평범한 일상과 비범한 어떤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인권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그랬다. 평범한 택시운전사였던 아버지는 세계 일류 기업에 입사한 딸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후, 산재 인정 투쟁에 나섰고 11년 만에 승리했다. 왁자지껄 떠났던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의 부모들은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싸우고 있다. 그들 역시 깨알처럼 평범한 하루를 살아냈던 이웃이었다. 인권의 피해자들은 그렇게 평범하다. 그러나 닥칠 수 있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특별한 오늘을 살아낸다. 그들이 쏘아 올리는 위험 신호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불꽃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고애신으로 살아가더라도 하나의 선택처럼 선량하고 따뜻하며 평온한 일상을 선물 받아야 한다.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지 모른다. 어떤 결론 앞에서도 죽은 자식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인권은 복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깨어진 마음도 산산이 흩어지지 않고 더 큰 힘으로 모아질 수 있다. 고통 이후 치유자들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많은 기록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미세먼지가 고담시의 안개처럼 가라앉은 오늘은 러시안 룰렛 게임처럼 고통과 불행이 불특정 다수를 향하는 고도로 위험한 사회다. 100년 전처럼 총칼에 맞서 태극기를 흔들어야 하는 위협과 다른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하나고애신의 강인함과 고귀함,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본다. 고통 받는 타자들의 또는 자신의 아픔에 공명하는 세상의 의병들은 어느 세상에나 어느 곳에나 필요하기 때문에. ‘고애신의 마지막 대사처럼 동지들, 독립된 조국에서 씨유 어게인동지들,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에서 씨유 어게인어떤 평범하고 특별한 힘에 대한 기대를 가지며 고애신의 후손이 여기에 쓴다.

_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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