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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_ 염형국 변호사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변

by 동-감 2019. 2. 1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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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고 싶은

 

  어려서는 인싸가 되고 싶었다. 친구들이 모두 나랑 놀아주고, 반에서도 인기 많은 아이이고 싶었다. 초등학교(실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동생 셋이랑 놀았다. 놀이터에서 흙을 파기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집에서 소꿉놀이도 하고 화투도 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까지도 (‘인싸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아싸느낌 없이 지냈다. 고등학교에 가니 분위기가 확 바뀌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수업을 좇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공부하기가 싫었고 학교를 억지로 다녔다. 그렇게 아싸가 되어갔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늘 주눅 들어 있었고, 아무도 내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래서 슬펐다.

 

  누구나 꿈꾸는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나 막연한 꿈이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선 1학년부터 고시공부를 하는 분위기였다. 이 또한 적응이 안 되었다. 대학의 낭만이라고는 1도 찾기 어려운 재미없는 대학생활이었고, 과에서 아싸중의 아싸로 지냈다. 마음이 늘 추웠고, 따뜻한 온기가 그리웠다. 가기 싫은 군대도 미루다 미루다 대학을 졸업하고 억지로 갔다. 카투사로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는데 나이 어린 선임 병들에게 치이고, 영어도 못해 미군들에게 치이는 괴로운 군 생활을 보냈다.

 

  병장을 달고 그래도 군 생활이 편해질 무렵 군 제대 이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가 본격적으로 고민(과 걱정)이 되었다. 고등학교 이후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모두 좌절되었는데 과연 앞으로의 인생에서 그런 좌절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했다. 그럼에도 군 제대 이후에는 스스로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군대를 마치면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었다.

 

2.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하다 대학 때 그래도 해봤던 게 법 공부라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사시를 쳐서 패스하면 법조인이 되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시험성적이나 시험통과가 목표가 아닌 내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공부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를 그때서야 했던 것 같다. 지루하고 어렵기만 했던 법공부가 재밌어졌다.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들려오는 강사님들의 가르침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재밌어서 공부를 하니 공부가 잘 되었고, 틈틈이 산에도 오르면서 나름 (혼자) 즐거운 수험생활을 보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이란 곳에 들어갔다. 암기공부에는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모여 마치 고등학교처럼, 혹은 군대처럼 군기가 팍 들어 생활했다. 연수원에서 판결문 토씨 하나까지 외워서 쓰는 시험에는 영 관심도 소질도 없었다. 일찌감치 목표를 변호사로 잡고 어떤 변호사가 되면 좋을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돈 잘 버는 변호사 혹은 대기업을 변호하는 변호사는 하고 싶지 않았다. 구멍가게 사무실을 열어 버틸 자신도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은 사회적 약자들을 옹호하고 국가권력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변호사 일이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대단한 결심을 했거나 많은 걸 포기하고 공감에 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포기한 것도 별로 없고 대단한 결심을 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단 자신감이 들어서 이 일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3. ‘해야 하는

 

  공감에서의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의 공통분모가 가장 큰 일들이었다. 즐거웠고, 뿌듯하고, 할수록 책임감이 느껴졌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 꾸려지는가? 결국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3가지가 어우러져 우리의 삶을 구성한다. 3가지가 없는 삶은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도망할 수 없기에, 인생에는 다시 시작이 없기에 자기 삶을 받아들이고 책임져야 한다.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 행복할까? 일단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없다. 하고픈 일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족구성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또 해야 한다. 내가 할 일은 하고 싶은 일 중에 할 수 있는 일을 늘려가는 것이다. 또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다만 해야 하는 것 때문에 하고 싶고 할 수 있음에도 이를 먼 미래의 일로만 여기고 유예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제일 행복할 때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는 일(혹은 놀이)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꼈을 때이다.

 

  앞으로도 난 내가 하고 싶은 일 중에 할 수 있는 일을 늘려나갈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두렵다고 힘들다고 피하지 않고 가급적 대면하고 최대한 해볼 것이다. 그래야 내가 더 행복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를 통해 우리 사회가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4. ‘인싸’ v. '아싸

 

  이제는 딱히 인싸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미 나 스스로 인싸로 여기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인싸가 되고 안 되고가 인생에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는 점이다. 내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에 늘 날 괴롭혔던 그놈의 인싸에서 해방된 것이다. 살면서 중요한 것은 인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향기를 내고, 다른 누구누구와 같은 삶이 아닌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도를 닦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결국 를 계속 발견해나가고, 틀에 갇힌 를 깨어 나가며,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의 모습을 향해 가는 길, 그 머나먼 여정일 것이다. 그 여정에서 인싸아싸가 무슨 의미가 있으리오. 타인과는 따로 또 함께 하는 것일 뿐...

 

_ 염형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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