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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봄 산행] 봄맞이 산행을 다녀와서. (9기 인턴 채혜미)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09. 6. 3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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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이라구요? 제 자취방 바로 뒷산인데...그런데 무슨 산행인데요?”


   그 무렵 나는 참으로 바빴다. 의욕에 차서 벌여놓은 일들이 버겁게 느껴지며 괜시리 마음이 허하기도 할 그 무렵, 아이러니컬하게도 바깥 세상은 온갖 꽃들이 제 몸을 뚫고 나와 눈이 부셨다. 그러던 어느 날ㅡ 아마도 봄비치고는 세차게 비가 퍼붓던 어느 금요일 , 여느 때처럼 원서동 공감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 사람들이 공감 봄맞이 산행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바로 그 다음날이 산행인데, 비가 와도 계획대로 등산을 하냐고 권회 국장님께 질문하는 누군가의 말이 내 귀에 스쳤던 것이다.


  산통을 깨는 나의 이러한 우문이 나온 까닭은, 그 무렵 일상에 쫓기며 인터넷과 소원하게 지냈던 탓이었다. 공감 까페도 일 시작한 지 한달이 지나서야 뒤늦게 가입을 했고, 그리하여 공감 다음 까페에 올라온 공지들을 거의 읽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바로 전 날 이렇듯 우연한 기회에 산행에 대해 알게 되어, 나는 공감 봄맞이 산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 30분, 우리는 관악산 입구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나는 그날 오전에 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아르바이트가 있었기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정시에 합류할 원대한 포부를 품고 있었던 차였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사가 늘 그러하듯이, 다음 날 나는 늦잠을 잤고, 이미 집합시간은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산행을 포기하기에는 예상과 달리 비 개인 하늘이, 그리고 관악산의 초록 잎들이 너무 예뻤다. 그리하여 나는 염 변호사님께 연락을 취하여 먼저 출발하시라고 말씀드리고, 혼자서 뒤따라서 가기로 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나의 밥줄인 아르바이트를 혜성 같은 속도로 마쳤다. 그리고 마치 태권 브이처럼, 대변신을 시작했다. 지난 겨울여행 때 한창 입었다가 봄이 되어 옷장 깊숙이 넣어 놓았던 등산복을 다시 꺼내 입고 거울 앞에 서니, 그야 말로 관악산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산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산이 지금의 나에게 갖는 의미는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아주 어릴 적에는 어쩐 일인지 산이 마치 거인의 거대한 무덤같이 느껴져 , 산을 마주보고 있노라면 늘 겸허해지고 쓸쓸해졌다. 그리고 조금 더 자라서 겨울 산행의 묘미ㅡ 얼굴에 스치는 겨울 산의 칼바람, 등산화에 아이젠을 장착하고 미끄러운 눈을 사각사각 밟아가며 정상을 향하는 기분 ㅡ를 알아갈 무렵에는, 정상까지 올라야 한다는 오기 때문인지, 산을 오른다는 것이 마치 자기 자신과의 싸움 같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산이 내게 주는 의미가 다르다. 산은 이제 더 이상 거인의 무덤처럼 슬픈 곳이거나, 정복의 대상 혹은 인간의 강인한 정신력을 시험하는 곳이 아니다. 그저 지치고 힘들 때 나를 반겨주는 곳일 뿐인 것이다. 매주 주말이면 관악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까닭은 아마도 그런 것일 것이다. 산을 오르는 데에는 돈이 들지도 않고, 다른 사람과 경쟁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다른 등산객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어느 지점이 습기가 차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조언도 하면서, 자기 페이스에 맞게 각자의 방식으로 산을 느끼고 자신의 몸과 마음상태를 느끼면 되는 것이니까. 1등에게 상을 주는 스포츠도 아니니 빨리 오를 필요도 없고, 어차피 내려올 산이니 굳이 정상까지 아득바득 올라갈 필요도 없는 것이니까.

 

   이 날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마도 저만치 앞서 가고 있을 공감 식구들의 뒤를 따라 연주암 가는 등산로를 성큼성큼 밟아 나가다 보니 어느덧 산 중턱에 와 있었다. 경로가 엇갈려 ‘앞서 가신 다른 분들을 만나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바심이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것 같아 ‘인연이 되면 만나고, 인연이 되지 않으면 못 만나겠지. 인연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가자’라고 마음을 먹었더니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렇게 생각하며 묵묵히 산을 타는데, 저ㅡ 멀리서  많고 많은 등산객들 중에 익숙한 얼굴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홀로 늦게 출발하는 나를 걱정하셔서 휴대폰으로 계속 연락을 취하여 경로를 일러주시던 염 변호사님의 반가운 얼굴! 혹여나 내가 못보고 지나칠까봐 재빨리 내 이름을 크게 부르실 때야 비로소 드디어 만났구나, 하는 반가움이 밀려왔다. 멀리서 손짓을 하며 내가 인사를 하니, 모두들 반갑게 맞아 주셨다. 다들 정시에 왔는데 혼자서 늦게 출발한 내가 이렇게 분에 넘치는 환영을 받으니, 최달옹 인턴은 “이럴 줄 알면 나도 늦게 올 걸” 이라며 재치있는 농담을 빼놓지 않았다.

 

   점심을 간략히 먹은 후, 권회 국장님이 준비해오신 보물찾기 놀이를 했다.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해보는 보물찾기라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다. 더욱 좋았던 것은 보물이 인원수대로 숨겨져 있어서, 결국에는 모두가 보물을 찾게 된다는 것이었다. 보물을 하나 이상 찾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기도 하였는데, 아마도 이는 공감의 산행이기에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닌가 싶었다.


 

    보물찾기를 마친 후에는 날이 흐려져 우리는 정상을 눈앞에 두고 하산을 결정했다. 올라오자마자 하산을 하는 나로서는 조금 아쉽기도 하였지만, 뭐 애초에 관악산 정복이 목적은 아니었기에, 산행 중간에 경로가 엇갈리지 않고 공감 식구들을 만난 것만으로 충분했다. 게다가 하산 이후에는 등산보다 더 즐거운 뒷풀이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공감의 식구로서의 첫 산행은 끝이 났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일상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는 건 변함이 없다. 하지만 아마도 앞으로의 나는, 아니 산행을 함께 한 우리 모두는, 그 날의 기억을 가슴에 안고 각자의 일상에서 한  티스푼의 대범함과 세 티스푼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본다. 그 날의 산이 우리에게 보여준 바로 그 대범함과, 그 여유를 말이다. 


공감 9기 인턴 채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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