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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다시 불러내다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수는 없습니다』(조영래)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일상

by 비회원 2009.04.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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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물아홉 가을에 사법시험 공부를 생각했고, 서른아홉 가을에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다시’라는 말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책이 내 책상에 배달되어 오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을 읽었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 술자리에서, 조영래 변호사가 생전에 썼던 신문 칼럼들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스치듯이 했고, “제가 보내줄게요”라는 후배의 대답에 뒤이어, 이 책은 내개 배달되었다. 책 표지를 보고는 기억해 냈다. 법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던 대학생 때, 별 성의 없이 읽었던 책이라는 것을.

사시 공부를 결심하면서 내 머리에 ‘조영래’라는 이름이 스쳐갔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스물아홉에 나를 움직인 것은 김광석이었다. “서른 즈음에”, “일어나”를 노래하는 김광석은 내 무기력한 삶을 움직일 힘이었다.


2.
변호사로서 5년을 보낸 내가, 8년의 변호사를 끝으로 세상을 떠난 조영래의 글과 삶을 읽는다. 그리고 스물아홉 나의 김광석처럼, 이 우연한 만남이 ‘마흔 즈음’의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는 짐작을 얻는다.


3.
그는 어느 칼럼의 제목을 이렇게 썼다. “80년대에 우리는 ‘민주’를 잃었고 ‘민주화’를 얻었다.” 그 제목처럼, 오늘의 우리는 ‘조영래’를 잃고, ‘인권’을 얻었다. 조영래로 상징되는 시대정신이 분투한 ‘민주화’의 기반 위에서, 인권의 경계를 부단히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오늘의 노력들이 살아 있는 것이다. 

조영래 변호사가 작고한 1990년, 미국에서 연수를 하던 그는 ‘낙태의 자유’, “동성애 사람들의 인권”이라는 문제를 접하고,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내가 고루해서 그런지, 어쨌든 이런 문제로 열을 내어가며 평생을 바친다는 것은 나로서는 내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소.”, “차차 시간을 두고 내 생각을 재검토하고 새로 정리를 해보아야 할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가 마지막 섰던 자리에, 변변치 못한 내가, 오늘의 우리가 서있다. 조영래 변호사가 아직 세상에 있다면, 환갑을 넘긴 나이일지라도 당신께서 분명히 서 있을 그 자리에.


4.
한 사람에 대한 최대한의 애정이 극진한 추모사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글은 권인숙의 추모사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선 왠지 웃음이 헤퍼졌”고, “빈소의 사흘이 돌아가고만 싶은 날들로 기억된다”는 추모사에는 변호사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 나절을 접견실에 머물면서 의뢰인과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변론을 하면서는 눈물 때문에 목이 메이는 변호사. 나의 5년으로는 감당조차 되지 않는, 그런 삶의 깊이가 무섭다. 그런데도 추모사는 이어진다. “생각이 앞서 있음을 가파르게 표현하지 않고 서서히 설득해 들어가며”, “상대방의 진의를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이해하는 그 진지함”으로 “대화를 하고 나면 세상일이 제자리를 찾으며 정리가 되곤 했다.”

세상은 그가 말보다 글을 더 잘 쓰는 변호사였다고 평가하지만, 그는 글보다 말이 더 깊었고, 삶이 더 넓었던 그런 사람이라고 권인숙은 쓰고 있다.


5.
조영래 변호사가 신문이나 잡지에 쓴 글들에는 “낙관할 것인가, 비관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외 없이 그 대답은 낙관이다. 언제나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이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을 이야기한 그람시의 낙관이 아니라, 그는 세상에 대하여 이성으로도, 의지로도 진정 낙관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작고하기 1년 전 백련사에서 쓴 일기에서는 불혹을 넘긴 당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내 인생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지친 것일까? 상해버렸나. 알 수 없으되 무언가 잃어가고 있는 것”

세상에 대한 낙관과 자신에 대한 회의에서 묘한 대조가 느껴지지만, 그건 하나의 뿌리를 같이하는 것. 나를 회의하고 또 지울 수 있기에 세상의 사람들을 믿고, 그런 세상을 믿기에 죽음까지도 태산같이 당당할 수 있는 것. 죽음까지도 덮는 그 낙관의 깊이가 또한 무섭다.


6.
조영래 변호사가 작고하기 전, 무정부주의자로 유명한 중국 소설가 바진(巴金, 파금)에 심취했다는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들은 적이 있다. 무정부주의, 바진! 세상에 대한 깊은 신뢰와 자신에 대한 도저한 회의, ‘변호사/조영래’라는 내게는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조합과도 잘 어울려 보인다.

중문학을 전공(?)한 나도 아직 바진의 소설을 읽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는 또 이 책처럼 우연히, 바진의 소설도 내 손에 들려질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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