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여공들의 이야기,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의 이기인 시인을 만나다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공감이 2008.01.03 16:20

본문

여공들의 이야기,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의 이기인 시인을 만나다


녁 하늘이 진눈깨비를 잔뜩 머금고 있던 날이었다. 대학로의 한 조그만 서점에서 만난 이기인 시인은 사진 속의 모습보다 눈이 크고, 여유로워 보였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노동시인이라고 하기도 했고, ‘포스트-박노해’라고도 했다. 참여적인 문학을 하는 사람이니 그 또한 활동가의 느낌이 날 거라 생각했는데, 잘못 짚었던가. 그는 본질적으로 詩人이었다.

그는 인터뷰 기자로 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섭외 같은 거 해봐서 알아요. 간절하지 않으면 만날 일이 없는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한번 튕겨주기도 하고 말예요(웃음). 메일에 시집 얘기가 있어서 마음이 약해졌어요. 시를 좋아한다는 게 오늘 만남의 계기가 된 거죠.”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얘기다. 폭압적인 자본주의에 길들여지는 여직공(소녀)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그의 시집, 그 덕분에 종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와 비교되기도 한다.

시를 쓰면서도 ‘알쏭달쏭’한 방법론을 택한 그와의 인터뷰는 한마디로 ‘알쏭달쏭’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긴 의미들을 금방 알아채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인으로 사는 삶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감성이다. 민감하게 하고 모든 것을 살펴야 한다. 지금은 감각이 깨진 시대 같다. 예술가들 또한 돈 벌고, 밥 먹고, 국민연금도 내야 한다. 옛날엔 더 자유로웠을 텐데…  마치 소설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처럼 어떤 것에 대한 절대적인 감각을 끌어와서 시 한 줄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시인은 늘 민감하고, 늘 겸손하고, 늘 깨어있어야 한다.  간절한 사람은 시 한 줄 한 줄 사이에서 ‘사랑’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게 예술가는 중증환자를 치료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절하다. 마치 훈련병이 찢어진 신문 한 조각에 집착하는 것처럼


-이기인 시인에게 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다. 현실을 바꾸는 것의 도구인지, 시를 통해 현실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남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맞다. 활자화 된다는 것 자체가 의미하는 건 ‘널리 퍼뜨리고 싶다’는 뜻일 수 있다. 내 중심축이 ‘약자’쪽에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약자를 대변하는 최전선에 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예술은 더 큰 범위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거나 혹은 지배하거나, 둘다 위험하다. 그러나 이심전심으로 통했다는 것, 그것으로 두 사람의 역사가 시작된다. 예술은 그 ‘소통’을 기반으로 한다.


-시인의 현실 이해, 그 중에서도 노동자를 주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내 캐릭터인 것 같다. 본능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람에게 힘을 주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런 문제는 존재할 것 아닌가. 조선시대 이전에도 늘 약자는 있었고, 그들의 삶을 조망하고 껴안는 사람들이 있어왔으나 힘주어 얘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예술의 역할이 그들을 대변하고, 전방에 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와 삶은 그저 통합적이다.
  여공들을 다룬 데는 내 성장과정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인천엔 공장이 많았다. 철강회사도, 방직공장도 있었고, 냉장고 공장도 있었고… 그래서 외지에서 온 어린 여공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공순이’라고 불렀던 그 소녀들은 모두 회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그녀들을 통제하는 사람은 완장을 차고 있었다. 그건 멀리서도 여공의 신분이 노출되는 일이었다. 그것이 자기를 비관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과거를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다. 본 것을 규명하는 게 시는 아니다. 다만 그 요소를 담아오는 것이다.



-노동시인이라는 호칭에 대해......
나는 노동시인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본대로만 몰아가는 것 같다. 평론가들이 양극화 시키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도 있다. 시는 변한다.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 아닌가. 생활의 체험이 가라 앉거든 그것에 바탕하여 쓰는 것인데, 앞으로 노동현장만 보고 살 것도 아니고… “걔는 종로에 있어”라고 한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종로에 있으란 법은 아니다(웃음).


-소설가 조세희씨와 비교되기도 한다.
송구하다. 처음 다큐멘터리를 찍는 초짜 감독이 유명한 감독과 비교될 때 아마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큰 이름이라… 존경하고 좋아해서 그것이 더 큰 숙제가 된다. 그 분은 문학계 속에서 자기 역할을 갖고 있으면서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포지션화 했다. 열정과 에너지를 어디에 쏟아야 될지 정확하게 알았던 사람인 것 같다. ‘민중에 대한 방향성’을 갖췄다고나 할까. 그 분의 삶이 크게 보인다. 문학을 하지 않더라도 그와 같은 삶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시집을 낸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인식에 변화가 있었다면?
변한 것도 있을 것이다. 가난한 노동자라고 해서 모두가 슬프지는 않다. 공장 일이 모두다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롤러 블레이드를 타는 주유소 직원이 몸짓은 춤에 가깝다. 작은 임금을 받고서도 꿈을 키워가는 사람은 아름답게 보인다. 자기 인생을 책임지고 잘 연출해서 살고 있고, 그들이 외롭지만은 또한 슬프지만은 않다.
  시에 그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인식에 변화가 있었다면?부분이 담겨있는 경우도 있다.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에 온 여공이 교양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사글셋방에 살 때에 백과사전을 사 놓고 하나하나 읽고, 못난이 인형으로 자기 방을 꾸미며, 리본 커튼을 다는 것. 그다지 나약하지 않은 그들의 삶, 자기 세계가 있는 그들의 모습. 지금까지 조명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담아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요즘 시의 경향이 난해하고 현실초월적인데 반해, 이기인 시인의 시는 현실과 소통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학력이 유행인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대학원에 다니고 있지만(성균관대 국문학과), 요즘 시인들에는 학위 있는 사람도 많고, 시인들이 똑똑해져서 그런지 시가 어려워졌고, 차용하는 얘기들이 많아서 시에 각주가 많이 달린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백석, 이영 등도 다 그 당시엔 엘리트고 학자였다. 좋은 인재들을 정치적 격랑 속에서 빼앗겨 온 역사가 있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훌륭한 사람이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문학으로 오고 이렇게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 아닌가. 문학에 비단 현실이해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철학적 나아가 우주적 상상력이 담긴다는 건 좋은 일이다.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도 그렇고.


-공감에 한 마디
  현장에 있는 사람과 하는 것과는 다른, 생경한 인터뷰라 당혹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거리에서 들어볼 수 없는 얘기(시)를 하며 더 이 자리가 아름다워졌던 것 같다. 이런 뉴스레터를 통해서도, 약자들의 얘기가 자극적으로만이 아니라 삶처럼 와 닿는 따뜻한 방식으로 전해졌으면 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좋은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

 

 



취재 : 이다해, 곽경란 인턴
사진 : 이다해 인턴
글: 곽경란 인턴

※ 공 SNS 에서 공감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공 블로그 구독하시고, 아래의 '추천','좋아요'도 눌러주시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