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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과 물대포를 넘어서> 10월 월례포럼 후기

공감이 하는 일/공익법 교육·중개

by 비회원 2016. 10. 3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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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시위야?”


명동에 살다 보면, 광화문에서 벌어지는 집회나 시위 때문에 교통체증에 시달릴 때가 많다.  특히 대규모집회가 있는 날에는 종로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노선 자체를 바꾸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약속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올라탄 버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꿀 때는 짜증이 극에 달한다. 이렇게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는 집회나 시위는 대체 왜 필요한 걸까?  공감에서는 위와 같은 의문을 풀고 보다 바람직한 집회․시위 방법을 알아보기 위하여, 10월 월례포럼 연사로 박주민 의원을 초청하였다.




집회와 시위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못한 자들의 유일한 희망


박주민 의원은, 민주주의란 선거로 대표를 뽑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대표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비판이 필요한데, 감시와 비판의 방법 중 가장 유의미하고 유효한 수단이 바로 집회와 시위라고 명쾌하게 정리한다. 나아가 재력이나 능력이 필요한 출판, 언론과 달리 집회와 시위는 참여자들에게 어떠한 조건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헌법재판소도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단순한 기본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제도’라고 인정하고 있다.



29일 오후 청계광장에서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의혹에 항의하며 모인 시민들 (출처: 한겨레신문)



불법집회와 해산명령


문제는 이와 같이 중요한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이 도입되었으나, 도리어 집시법이 집회 및 시위에 대한 다양한 내용의 규제를 규정하며 집회와 시위를 억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가령 국회나 법원 근처 등에서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집회장소의 제한(집시법 제11조), 일정 소음수준 이상의 확성기 사용을 제한하는 집회방법의 제한(집시법 제14조)이 그것이다. 나아가 집시법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가 금지된다는 추상적인 금지조항을 둠으로써(집시법 제5조 제1항 제2호) 경찰로 하여금 자의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여지까지 주고 있다.


그렇다면 집시법에 위반되는 불법집회나 시위는 반드시 해산하여야 할까? 실제로 경찰은 집회나 시위가 집시법에 위반된다고 판단될 경우 집시법 제20조에 근거하여 집회나 시위의 해산을 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일정한 경우 집회의 자유가 사전 금지 또는 제한된다 하더라도 이는 다른 중요한 법익의 보호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정당화되는 것이며, 특히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원칙적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될 수 있고, 집회의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 예컨대 시위 참가자수의 제한, 시위 대상과의 거리 제한, 시위 방법, 시기, 소요시간의 제한 등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후에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사전 금지 또는 제한된 집회라 하더라도 실제 이루어진 집회가 당초 신고 내용과 달리 평화롭게 개최되거나 집회 규모를 축소하여 이루어지는 등 타인의 법익 침해나 기타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에 대하여 사전 금지 또는 제한을 위반하여 집회를 한 점을 들어 처벌하는 것 이외에 더 나아가 이에 대한 해산을 명하고 이에 불응하였다 하여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며(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09도13846 판결), 단순한 집시법 위반사실만으로는 경찰이 해산을 명할 수 없고 ‘타인의 법익 침해나 기타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여야만 비로소 해산을 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따라서 참가한 집회나 시위가 집시법을 위반하였다고 하더라도, 평화롭게 진행되었다면 해산명령에 따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작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물대포를 사용하는 경찰.




차벽, 물대포, 그리고 채증


한편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보면, 때로는 작정하고 집회, 시위 참여자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집회와 시위는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의 행사로서 공권력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반대로 집회와 시위 현장에 ‘차벽’을 치거나 참여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함부로 ‘채증’을 하기도 한다.


일단 현행 법령상 차벽과 물대포의 사용 자체가 위법한 것은 아니다. 다만 헌법재판소 결정례나 경찰 내규 등으로 차벽과 물대포의 사용 요건이나 사용 방법이 제한되고 있는데, 그러한 제한이 적절한 수준인지는 별론으로, 현장에서 이러한 요건과 제한이 제대로 준수조차 되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최근 있었던 백남기 농민 사건이 바로 그러한 부분에서 비롯된 비극의 예시일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이 차벽이나 물대포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집회와 시위를 진압할 경우, 참가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경찰은 조직적으로 훈련을 받은 공권력이어서 현장에서 이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고, 무력으로 대응할 경우 오히려 황색언론에 의하여 해당 집회․시위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명분이 곡해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우에는 경찰에 대하여 합리적인 문제제기를 하되, 과잉진압에 대한 사진을 남겨두고 증인과 증거를 최대한 확보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경찰의 채증 역시 집회 및 시위현장에서 무분별하게 행하여지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누구든지 자기의 얼굴 기타 모습을 함부로 촬영당하지 않을 자유를 가지나 이러한 자유도 국가권력의 행사로부터 무제한으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고 국가의 안전보장ㆍ질서유지ㆍ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상당한 제한이 따르는 것이고,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함에 있어 현재 범행이 행하여지고 있거나 행하여진 직후이고, 증거보전의 필요성 및 긴급성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상당한 방법에 의하여 촬영을 한 경우라면 위 촬영이 영장 없이 이루어졌다 하여 이를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며(대법원 1999. 9. 3. 선고 99도2317 판결) ‘현재 범행이 행하여지고 있거나 행하여진 직후’에만 채증이 가능하다고 판시하였다. 즉, 집회와 시위가 개시되기 이전이거나 집회와 시위가 범행과 무관하게 평화로운 방법으로 진행되는 경우의 채증은 위법하므로, 현장에서 이와 같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이루어지는 채증도 지적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경찰의 소환이 있을 경우 민감한 대응이 필요


한편 집회나 시위가 종료된 이후 경찰이 문자, 전화, 통지서 등을 통하여 집회․시위 참가자를 소환하는 경우가 있다. 현행 법령상 미신고집회에 단순 참가만 하였더라도 일반교통방해죄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따라서 경찰의 소환을 무시한다면, 소환 불응을 사유로 체포 영장이 발부되어 체포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므로, 경찰 소환단계부터 적극적인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만일 소환에 불응할 수밖에 없는 경우, 불응한 사유에 대한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 안전하다.






우리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를 위하여


최근 대법원 양형 기준표가 집회나 시위에서 복면을 착용한 참여자를 가중처벌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 이는 과거 복면착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법안이 발의되

었으나 통과되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민주주의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는 듯하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머릿수 싸움이고, 따라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에게 가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여기서 약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집회와 시위이다. 그런데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의 심화, 금수저논쟁 등을 살펴보면, 이제 우리사회는 머지않아 구성원의 대부분이 약자이자 을(乙)의 지위에 놓이게 될 것 같다. 따라서 앞서 본 집회와 시위가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내용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집회와 시위에 대한 억압은 곧 우리들의 목구멍과 숨구멍을 틀어막는 것에 다름 아니며, 타는 목마름으로 숨죽여 외치던 민주주의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사회가 불안하고 시국이 뒤숭숭할 때, 권력에 배신당하고 민주주의가 기만당할 때, 그로써 우리의 삶이 짓밟힐 때, 아무도 우리 대신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없다. 누구도 방관자를 옹호해 줄 수는 없으며, 우리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것은 우리여야 한다. 때문에 집회와 시위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집회와 시위에 대한 인식 및 제도개선을 통하여, 우리 민주주의가 보다 성숙한 단계로 발돋움하기를 희망한다.



글 _ 공감 24기 자원활동가 정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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