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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실무수습기] 공감에서의 2주 - 김서영(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공감이 하는 일/로스쿨 실무수습

by 공감이 2016. 8. 30.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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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로스쿨 실무수습 후기

 

나는 네가 될 수 있을까

 

오늘 광주 트라우마 센터에서 하는 치유의 인문학 강의를 듣고 왔다.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나는 네가 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하는 강연이었다. 시작 전에 곰곰이 저 질문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네가 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네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네 옆에 있고 싶다. 이것이 내가 내린 답이었다.

 

공감에서 실무수습을 했던 2주가 생각났다. 실무수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정말 벅찼다. 함께 했던 시간과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나는 너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내일 다시 출근해 너의 다른 이야기를 듣고, 다른 너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리트 끝나면, 로스쿨에 들어가면, 세월호를 지워버리고 공부했던 부채를 꼭 갚아야지.' 결심하고, 나는 잊었다.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공감에서의 2주도 잊혀지고, 잊혀지는 것조차 사라지고 있다. 안 돼. 기억하자. 기록하자. 공감에서 2주는 오랜만에 나로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잊혀지지 말아라. 사라지지 마라. 잊혀져 가는 것들을 적는다. 쓴다. 잡다.

 

우리는 혼자가 되었다

 

노동인권 세미나의 시작은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고치다가 사망한 19살 청년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곧 지하철 스크린 도어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일을 누가 하였는지에 관한 이야기, 버스 정류장을 청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 관한 이야기, 배달하는 청소년들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주제 속에 노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다음 날은 아동인권 세미나를 들었다. 그동안 아동인권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바로 아동이었고, 아이였을 때의 시간을 고스란히 지금까지 품고 있었는데도 나는 아이였던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잊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시기에 자신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얼마나 힘든 존재였는지도 잊었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는 내게 자주, 타인의 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하고, 하게 될 것은 노동이 아닌 것처럼. 나는 아이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너와 나 사이에 벽 하나. 나와 지나온 나 사이에도 벽 하나. 나와 내가 될 나 사이에도 벽 하나가 있었다. 벽과 벽 사이에 나와 네가 있었고, 우리는 혼자가 되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반복되다

 

공감 로스쿨 실무수습생 '이주여성인권센터' 단체 방문▲ '이주여성인권센터' 단체 방문

 

동묘역에 있는 '이주여성인권센터'에 방문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헐', 조금 더 듣다가 또다시 '헐', 계속 '헐'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고통에 한 번 놀랐고, 이주여성이기 때문에 겪었던 문제에 두 번 놀랐다. 문제의 전 세계적인 규모에 마지막으로 또 놀랐다. 여성과 이주와 국제가 엉킨 실타래처럼 얽혀있었다.

 

공감 로스쿨 실무수습생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단체 방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단체 방문

 

다음으로 방문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는 관련 소송들이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그 소송으로 인해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장애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도록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위해 너를 소외시키고 많은 것들을 누려왔는데, 너는 나를 소외시키지 않고 싸웠다니.

 

공감 로스쿨 실무수습생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단체 방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단체 방문

 

마지막 방문은 삼성 반도체 산업으로 인한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올림'이었다. 반올림은 피해자들에 대한 정당하고 합리적인 배상을 삼성에 요구하며 강남역 8번 출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300일이 넘도록 농성 중이었다. 직업병으로 사망한 76명을 추모하기 위해 놓인 솟대와 다육식물이 인상 깊었다.

 

공감 로스쿨 실무수습생들 강남역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300일 넘게 농성중인 반올림 농성장  방문▲ 강남역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300일 넘게 농성중인 반올림 농성장

 

임자운 변호사로부터 삼성 반도체 관련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 문제는 지금 내가 과제로 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유사한 것 같았다. 유해한 화학물질을 제대로 된 실험 없이 사용했던 점과 죽음으로써 질병의 인과관계가 밝혀진 점, 밝혀지는데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 마지막으로 그 죽음의 가장 큰 가해자인 기업이 제대로 된 책임은커녕 자신들의 잘못을 회피하거나 무마시키려고 했다는 점이다.

 

공감 로스쿨 실무수습생들 강남역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300일 넘게 농성중인 반올림 농성장  방문▲ 반올림 임자운 변호사와 로스쿨 실무수습생들

 

2007년에 제기된 삼성 반도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었다면 2011년의 옥시레킷벤키저, 애경,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기업들도 회피나 무마가 아닌 신속한 사과와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았을까. 재난이 되풀이되고, 사건 사고가 되풀이되고,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 같다. 

 

 

“사안에 관심이 있나요. 사람에 관심이 있나요.”

 

나는 황필규 변호사의 지도 아래 가습기 살균제 관련 옥시레킷벤키저 본사에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자료 조사를 맡았다. 금요일이 되니까 집중이 잘 안 됐다.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에 관한 동영상을 보며 잠깐 머리를 식힐 생각이었다. 영상을 보면서, 깨달았다. 내가 이 사건에 대해 자료 조사를 하면서,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침 국제인권 세미나에서 황필규 변호사가 한 말이 있었다. “사안에 관심이 있나요. 사람에 관심이 있나요.” 인권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들으면서도 내가 무엇을 잊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국제인권 세미나 중인 황필규 변호사와 로스쿨 실무수습생들▲ 국제인권 세미나 중인 황필규 변호사와 로스쿨 실무수습생들

 

피해자의 절절한 목소리를 들으니, 곧 아이를 출산하는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언니, 가습기 살균제 안 쓰지? 언니, 옥시 제품 쓰는 거 있어? 언니, 인체에 무해하다고, 안전하다고 쓰여 있는 거, 그런 거 하나도 믿지 마. 그 제품을 많은 사람이 쓰고 있다고, 제일 잘 팔린다고 해도, 믿지 마. 언니, 엄마, 내 친구 현정이, 연수,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셀 수 없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꼭 사람이 살해하는 것만이 살인인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살인이란 제품이 사람을 살해하는 것이고 인체에 유해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면서 나 몰라라 하는 기업이야말로 살인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런 사회에 살고 있었는데도,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법리와 지식에 얽매여 그 밖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현행법상의 흡입독성실험 검사 의무가 없었다는 이유가, 자꾸 살인의 면죄부가 되었다.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이지, 죄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죄는 버젓이 아주 합법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자행되고 있었는데도 합법이라는 명목하에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잊고 있었다.

 

이 과제를 하면서부터 물티슈를 사용하면서 화학물질 성분 표시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한다. 가만 보니 화학물질이 안 들어간 데가 없다. 버스 타는데 머리 위로 에어컨 바람이 불어온다. 저번에 보니까 에어컨 필터에도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 아무도 모르게 아주 일상적으로 화학물질에 노출되고 있었다. 편리와 효율을 얻는 대신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 기분이다.

 

맥주 한 잔, 물 한잔

 

실무수습이 끝났다. 과제를 더 안 해도 된다. 맥주 한잔. 이제야 사람들이 제대로 보인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에요. 어떻게 이곳에 왔어요. 맥주 한잔에 용기 하나. 우리는 어떠한 선택과 경험으로 이곳에 이렇게 함께 있나요. 물 한잔. 오랫동안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맥주 한잔은 솔직해지기 위한 것. 물 한잔은 우리를 위한 것.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시간을 위한 것.

 

공감에서 2주간 실무수습을 마치며 로스쿨 실무수습생 수료식▲ 공감에서 2주간 실무수습을 마치며..

 

마지막 날 뒤풀이에서의 대화가 정말 좋았다. 나의 언어가 너의 입을 통해 나올 때 감사했다. 그 말을 당신이 해줘서. 나와 같은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어서. 혼자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았다. 변호사님.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러 갔는데, 아주 보통의 사람을 보았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러 갔는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대단함이란 아주 보통의 일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인권이란 따뜻하고 좋은 마음이었다. 바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2주 후면 끝"이라는 것 앞에서 지나가는 순간들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 순간에 만났던 사람들. 진심을 발견하면, 순간은 곧 영원이 되었다. 나는 내 일에 에너지를 썼고, 더 이상 나랑 싸우지 않았다. 사회와 싸우고, 실체와 싸우고, 성찰 없는 악과 싸웠다. 외부와 싸우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명쾌했고, 나를 미워하지 않게 했다. 나랑 싸울 때와 다르게 외부와 싸울 때 좋은 점은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싸움이 외롭지 않다. 싸움은 연대가 된다. 

 

공감에서 2주는 나로 존재할 수 있었던 관계 속에서 너의 이야기를 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내가 될 수 있었다. 하고 싶고 일이 생겼다. 꿈꾸고 싶은 내일이 생겼다. 감사하다.

김서영_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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