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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마주하기 - 2016 공감 여름 인권법 캠프 참가기_박영선

공감이 하는 일/공감 인권법 캠프

by 공감이 2016. 8. 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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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는 지난 겨울에 이어 두 번째 참가였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진행되었던 겨울캠프와는 달리, 여름엔 캠프 장소로 걸어가는 길목에서부터 매미 소리와 선선한 여름 바람이 불어왔다. 그때부터 마음이 무척 설레었다.

 

처음엔 조를 배정받고, 조별로 자리에 앉아 공감에 대한 소개와 캠프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이후부터의 프로그램은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오신 선생님들이 진행하셨는데,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갈 수 있어서 내겐 이 시간이 가장 재미있었다. 아직은 서먹했던 조원과 함께한 자유고양이라는 손뼉치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 고양이는 왜 자유로운가 하니, 야옹이 아니라 멍-하고 짖기 때문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멍! 하는 소리와 함께 80번이 넘는 손뼉을 쳤는데, 정말이지 부끄러우면서도 그 부끄러움에 상응하는 만큼의 마음을 상대에게 열 수 있었던 것 같다.

 

참여마당 프로그램 참여중인 참가자들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참여마당 프로그램 참여중인 참가자들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이후에는, 조별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책/여행지 등에 대해 서로에게 소개했고, 조원들 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공통점을 찾아 정지장면으로 표현하는 시간도 가졌다. 기억에 남는 팀은 손을 잡고 원이 된 사람들 안에 한 사람이 홀로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한 팀이었다. 나는 그 팀이 ‘외롭다’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팀이 내건 정답은 ‘뜨거운 심장이 뛴다’였다!

 

이렇게 첫 만남의 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인권과 차별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키워드는 ‘당연함’ 그리고 ‘사소함’이었다. 이를테면. 회사에서 커피를 대접하는 직원이 항상 여성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우리는 이런 익숙한 일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낱 활동가 (그리고 나중에 정희진 님 역시) 차별을 공기에 비유했는데, 이유는 그것이 너무 당연한 것으로서 모든 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차별의 대상이 되는 존재들을 위해 그 질식할 듯한 공기에 계속해서 숨구멍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참여마당 프로그램 참여중인 참가자들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참여마당 프로그램 참여중인 참가자들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뒤이어, 캠프 참가자들이 직접 참여한 상황극과 스펙트럼 토론이 이어졌다. 상황극에서 다루었던 주제 중엔 다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옷 매장 직원이 안전문제를 이유로 휠체어 탄 친구의 입장을 거부했을 때, 비장애인 친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처음에는 직원이 보이는 차별적 태도가 가장 두드러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비장애인 친구와 장애인 친구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 우리는 장애인을 향한 배려가 종종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그렇기에 이러한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나는 최근 보았던 연극을 떠올렸다. 상황극에서와 비슷한 상황을 일상적으로 겪는 그 연극의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활보(활동보조인)를 향한 애증이 그녀 삶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였다.

 

참여마당 프로그램 참여중인 참가자들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참여마당 프로그램 참여중인 참가자들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참여마당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내게 특별한 울림을 주었던 말이 있는데, 바로 ‘모욕받은 정체성’이다. 한낱 활동가는 소수성이란 다수/소수의 문제가 아닌 힘의 문제이며, 그 힘의 크기는 기준으로부터의 거리로서 정해진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소수자란 일상적으로 부당한 질문을 받는 사람이며, 자신의 모욕받은 정체성이 다른 모든 정체성을 압도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주제마당 '장애인권' 강연중인 염형국 변호사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주제마당 '장애인권' 강연중인 염형국 변호사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뒤이어 이어진 장애인권 주제마당에서 염형국 변호사는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나는 이 모욕받은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사실 이것은 내가 요즘 종종 하고 있던 고민이기도 했다. 도대체 단 한 번도 자신의 정체성이 모욕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연대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자신의 옳음에 대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그 존재만으로도 소수인 자에게 위압되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들과의 소통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여태껏 나는 그들의 태도에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그저 그들과 나 사이에 견고한 벽을 쌓아올리기를 택해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러한 태도를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 혼자는 편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운 좋게도 그만한 벽을 쌓아올릴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자원이 없는 사람들의 처지에서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일상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폭력이 될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이것이 아마 내가 이번 캠프에서 느꼈던 첫 번째 부끄러움인 것 같다.


참가자들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참가자들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그리고 저녁에 이어진 정희진 님의 강연에서는, 내가 가졌던 '나만 편하자'라는 나약한 태도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정희진 님은 여성들이 그들을 향한 성차별에 대응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새로운 언어’로 말하기라고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기존의 지배적 남성의 언어로 말하려 하기에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이러한 새로운 언어에 담겨야 할 것은 여성 '자신의 현실’인 것이다. 나의 현실로 이야기할 때, 나는 '지적으로 그리고 우아하게' 나를 향한 차별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이 새로운 언어의 전제로 충분한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던 것 같다. 글을 쓰면서 강연과 꼭 어울리는 노래 한 곡이 떠오르는데, 가수 김목인의 '새로운 언어'다. 평소 그 노래를 들으며 우리가 정말 이런 언어로 얘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참가자들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참가자들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글이 길어지니 이제 마지막 날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둘째 날 내가 뵈었던 두 분은 권석천 논설위원과 황필규 변호사였다. 두 분의 강연을 관통하던 주제는 ‘부끄러움’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캠프가 끝나고 한참 뒤의 일이다. 부끄러운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자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고민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황필규 변호사는 무엇-을 하는가에 너무 잠식되어 종종 어떻게- 에 대한 질문을 잊곤 하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항상 그 둘 모두에 대한 태도를 잘못 설정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이야기를 메르스 사태를 통해 풀어내었다.

 

주제마당 '재난' 강연중인 황필규 변호사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주제마당 '재난' 강연중인 황필규 변호사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권석천 님의 고민 역시 앞선 황필규 변호사의 것과 결을 같이 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기자로 일해온 그는 인권감수성을 잃어버린 기자들이 ‘기레기’로 전락해버리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고, 자신도 그런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고 고백했다. 보도의 타이밍이 적절치 못했던 가습기 살균제 문제, 그리고 최근 고 김관홍 잠수사에 대해 적었던 글로 인해 느낀 죄책감에 대해 말했다. 25명을 구한 잠수사라는 사실적 타이틀 너머, 그러한 수치 속에 담기지 못하는 크기의 진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권석천 님은 자꾸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나는 그러한 그의 모습에서 외려 위안을 받았다. 타인의 고통을 글에 담아내는 일이 가진 재현의 한계와 윤리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 권석천 님처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했고, 그 고민을 수행함에 있어 그의 엄한 자기검증에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강연중인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강연중인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캠프가 끝나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캠프에서 보고 들었던 것은 정말 온통 부끄러운 문제들이었는데 왜 나는 부끄럽지 않았을까. 그곳에서 난 그냥 마냥 즐겁기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후폭풍이 찾아왔다. 이젠 어딜 가나 예전보다 자주 부끄럽다.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사라져버린다는 인권감수성이 캠프를 통해 좀 더 예민해진 까닭인 것 같다. 또한, 나는 나를 어떻게 잘 소개할 수 있을까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낱 활동가는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는데, 내가 거쳐온 특정한 공간에 의존하지 않고 나를 소개하는 일이 몹시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혹시 캠프에 참가하려는 분들이 내 글을 읽으신다면, 캠프 전 미리 연습을 해두셔도 좋을 것 같다. 수많은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는 공감 캠프에서는 자신을 잘 소개해주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참가자▲ 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참가자

 

그리고 딱딱한 글이 아쉬우니 딱 세 마디만 덧붙이자면, (생뚱맞지만) 모두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고! 항상 서로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그럼 힘들 때 기댈 수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글_박영선(2016 여름 공감인권법캠프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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