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무죄”
민간잠수사 공우영은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작년 여름 동료 민간잠수사 이광욱의 사망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다. 1년 6개월 가까이 1심 재판이 진행되었고 최근 판결 선고가 났다. ‘피고인은 무죄’, 이 뻔한 결과를 얻기 위해 공우영 씨는 목포지원까지 십 수차례 다녀야 했다. 여기에 들어간 시간과 비용, 무엇보다 정신적 고통은 무죄 판결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검찰은 정반대의 결정을 했다. 고 이광욱 씨의 유족과 416연대 등은 이광욱 씨의 사망에 대해 해경에 책임을 물으며 해경을 고발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고발을 각하했다. 각하에 대해 항고를 하였으나 최근 서울고검 역시 항고를 기각했다. 이 과정에서 고발인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고 이광욱 씨의 죽음은 어떻게 위로받아야 하나. 여전히 유족들은 고인의 사망 원인에 의문을 품고 있고, 철저한 수사를 바라고 있는데 말이다. 1년 넘게 고 이광욱 씨의 유족들과 민간잠수사 양쪽을 지원하고 지켜봐 왔다. 그런데 검찰은 ‘정부에 책임 없다’는 결론을 먼저 내리고 이에 맞춰 수사한 것 같다. 힘없는 사람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들어 싸움을 부추기면서 책임의 주체인 해경은 뒤로 숨어버린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단원고 기간제 교사 두 분의 유족과 함께 교육부 담당 국장을 면담했다. 정규직 교사들은 모두 순직을 인정받았으나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은 기간제라는 이유로 순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담당 국장은 기간제교사는 교육공무원이 아니라면서 유족들에게 “산재로 하는 것이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담당자들은 관련 없는 소송을 들먹이면서 그 소송에서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것도 소송 결과를 바로 그때 가서 들어줄지 말지 입장을 표명하겠단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로 나는 세월호 참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처음 세월호 참사 문제에 관여하게 된 것은 세월호에 탑승한 화물차 기사들 때문이었다. 단원고 학생들의 사망에 가슴만 아파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세월호에는 생존했지만, 생계유지수단을 잃어버린 화물차 기사들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래서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화물차 기사를 비롯한 진도어민, 이주민, 생존자, 세월호 아르바이트생 등 잘 드러나지 않는 피해자들을 지원했다. 잠시나마 일반인 희생자에 대한 법률 지원도 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전체 피해자들의 인권실태보고서 작업에 참여하였고 지금은 세월호 집회 주최자로 기소된 김혜진, 박래군의 집시법 위반 등 형사사건에서 변호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관여해 오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먼저 정부는 말 바꾸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올해 7월 국회에서 “기간제교사는 공무원이고 교사로서의 모든 권한과 자격이 있는데 그 처우는 아직 미비한 점이 있다. 순직은 반드시 관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민간잠수사들에 대해서도 처음에 해경은 무엇이든 다 지원하겠다고 이야기했단다. 그러나 현재 이들이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데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된 김혜진, 박래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작년에는 아무런 말이 없다가 이제서야 작년 7월 24일 세월호 100일 추모 집회를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무엇보다 작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께는 말씀을 드리겠지만 특별법은 필요하다 그렇게 봅니다. 특검도 해야 된다. 근본부터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지 (중략)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상 규명에 있어서 유족 여러분들이 여한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것, 거기에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라고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소관 기관들이 마치 폭탄 돌리기라도 하듯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시간만 끌다가 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 과정이 피해자들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된다.
정부가 이렇게 대놓고 말 바꾸기를 하는 데에는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 처음에는 모든 언론이 세월호 참사에 동감하면서 다시는 이런 재난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참사의 원인을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몇몇 언론을 제외하고는 피로감과 일상으로의 복귀를 이야기하면서 피해자들을 훼방꾼이나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아갔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는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생각해 보면 매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돈 앞에서 생명과 안전이 무너지고, 정부든 기업이든 언론이든 그 순간에는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말하다가도 어느 순간 기억에서는 사라진다. 반복해서 재난이 일어나고 반복해서 엉터리 대응만 이루어진다.
세월호는 그렇게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족들이 지금도 거리에서 싸우는 이유는 다시는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안전한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을 담아 4.16. 인권선언을 만들었다. 1년 가까이 4.16. 인권선언을 준비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셀 수 없이 많이 풀뿌리 토론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인권선언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인권선언을 만들기 위해 했던 회의만 20번은 족히 될 것이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까지도 열띤 논의를 거쳐 만들었다. 검증 작업도 여러 번 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준비한 그 결과물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세계인권선언이나 기미독립선언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시민이 안전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받는 사회에서 사는 데에 4.16. 인권선언이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이 다짐을 담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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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윤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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