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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통신] 지금, 사막을 건너고 있습니다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공감의 목소리/공감통신

by 비회원 2015.09.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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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얼굴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 늦게까지 술 마시자고 앉혀두기 미안했어….” 아주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헤어지며 한 말입니다. 거하게 얻어먹고, 옛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나누었다고 생각했는데, 선배가 그럽니다. 피곤해 보이고, 어두워 보인다 합니다. 좀 지난 일인데, 잊히지 않습니다. 사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면 그날은 근래 들어 유달리 몸 상태가 좋았고 조금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마음 편한 자리였습니다. 내 얼굴이 그렇구나… 내 에너지가 맑지 못하구나, 하는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 운동하는 이에게는 ‘향기가 있어야 한다’는 평소 생각에 허를 찔린 느낌이라 할까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 내 표정은 무엇이었을까

 

  지난주 사회 운동하는 이들이 서로 간 영역을 넘어 만나는 활동가 네트워크 파티 ‘인디언 썸머’를 1박 2일 동안 했습니다. 다양한 공간에서 각각 의제로 활동하는 이들 백여 명이 함께 모였습니다. 노동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지역운동, 인권운동, 빈곤운동…. 쉽게 만날 것 같지만 의외로 만나지지 않는 이들을 한 곳에서 보는 좋은 자리였습니다. ‘지속 가능한 운동’에 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준비한 이들은 당연히 활동가들의 생계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 활동비나 기타 이러한 문제를 중심으로 발제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참여한 이들 관심사는 “운동에 전망은 있는가?” 였다 합니다. 당장 목전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도 물론 중요하지만 활동가들을 더욱 지치고 힘들게 하는 것은 ‘전망의 부재’였나 봅니다. 

 

  인권활동가 생활 실태조사가 있었습니다. 인권재단 [사람]에서 진행한 연구였습니다.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인권활동가들은 인간다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인권활동가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지 못했다. 헌신과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왔기 때문에 인권단체가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는지 인권활동가들이 어떻게 생계를 꾸려 가는 지, 생활하면서 어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앞으로 계속 인권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인권단체들은 대개 국가나 기업의 지원을 반대하고 있으므로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만 조직이 운영된다. 그리고 후원금 일부를 활동비로 받고 인권운동을 지속하기 때문에 인권단체 후원금에 따라 활동비는 매우 다르게 지급되고 있다. 쉼 없는 장시간 활동과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인권활동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인권운동의 토대를 더 힘들게 한다.”

 

▲ 9월 4일에 열린 '인디안 썸머'

 

  그래서 되돌아 본 것이지요. 무엇 때문에 그런 표정을 보여주게 된 것일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말입니다. ‘전망의 부재’가 괴로운 건지, ‘경제적 토대의 부재’가 괴롭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두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회운동 하는 이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부조리한 현실로 인해 종종 도전받습니다. 그런데 꼭 두 가지 이유만은 아니었습니다. 스물 무렵부터 사회운동 세례를 받았으니 족히 이십여 년을 달려왔습니다. ‘어이없게도’ 전망은 뒷전이었습니다. ‘희망은 좁은 길 끝에 있고,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생각해 왔습니다. ‘전망 없다’를 안주 삼았던 적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망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어떤 사건과 사람이었습니다. 앞을 볼 여유도 없이 ‘역사가 등 떠미는 데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전망이 눈앞에 화려한 이유로 등장한 것 같지 않습니다. 등 떠밀던 역사가 버거워졌나? 이것도 ‘어처구니없게도’ 진작부터 버거웠습니다. ‘나를 왜 자꾸 밀어, 이거 원.’ 이런 지 꽤 되었습니다. 


  ‘경제적 토대의 부재’가 괴롭히는지도 물어보았습니다. ‘원래부터 가난’해서 그것도 이유가 아닙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통장 잔고를 걱정해 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다.’ 깨달은 순간, 그냥 밥 먹고 옷 입고 살면 됩니다. 물론 감당하기 어려운 궁핍을 경험하지 않았으니 하는 말이겠지요. 다행히 부모님을 봉양하거나 집안에 아픈 이가 없습니다. 천만다행, 만만의 운이 좋은 경우지요. 부양의무가 개인과 가정에 전적으로 전가된 한국사회에서 이 정도면 참 행운입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결정적 수렁에 빠질 위험군이지만. 그건 그때 고민하면 되겠지, 할 정도로 무심한 게 장점이기도 합니다. 무대책이 대책인 상태입니다. 하여튼 이것도 굳은 얼굴의 이유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 지금 사막을 건너고 있습니다

 

  최근 그런 생각 자주 했습니다. ‘나는 지금 사막을 건너고 있어.’라고 말입니다. ‘사막을 건널 때는 최대한 몸의 에너지를 아껴야 해. 쓰러지면 안 되고, 누군가에게 폐가 되어서도 안 돼. 내가 넘어지면 다른 사람도 넘어지는 거야….’ 가까운 이들에게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긴 2015년이라 그렇기도 했습니다. 동료가 지병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못 해준 미련이 많이 남더군요. 이별 몇 개를 치르며 안간힘 쓰며 버티기로 작정했습니다. 작년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좀 쉬어야겠다.” 작정했을 때 참사가 터졌지요. 머물 수 없었으니 등 떠미는 데로 한 해를 살았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지옥에서 살아 나온 사람들을 만나며 많이 울었습니다. 유가족 엄마 한 분이 “너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하나라도 찾으면 좋겠다….” 중얼거리는 말씀 들었던 이후 불면증을 앓기도 했습니다. 인권활동가로 살면서 가장 기막힌 일은, 피해자들 마음이 전이되는 순간이지요. 그래요, 이후로 많이 아팠던 것 같습니다. 그이들이 느끼는 분노와 상실감, 막막함과 공포를 함께 겪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우리 사회의 전망 없음이, 정말 문제였을지 모르겠군요. 그런데 역시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사회의 야만은 정권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나은 정권이었다는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힘들었습니다. 구제 금융사태 때 안전망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던 사람들, 경찰 폭력에 사망한 노동자, 미군에게 땅을 빼앗긴 농민들…. 조금 나은 정권이라 생각했기에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싶어 괴로웠습니다. 정치권력이 대의해 주지 않는 권리의 사각지대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죽어가거나 쫓겨났습니다. 지나치게 사악한 체제를 만난 이후, 우리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삶이 이토록 힘든 것은 이명박 때문이야, 박근혜 때문이야.” 어느 순간 ‘기승전 박근혜’로 이어지는 분위기가 많은 이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반대편에는 기묘한 체제를 옹호하는 철벽같은 지지자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 한국사회는 분명, 양 극단으로 쪼개졌습니다. 상식과 합리와 그렇지 않은 반대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그 지지자들 면면을 보면, 계급 이해를 지키려는 소수보다 새누리당 계급과 동질성 없는 빈곤계층과 노년 계층이 참 많습니다. 가난할수록 보수적이라는 통계가 한국사회는 철저히 지켜지는 중입니다. 그래서 왠지 이해도 됩니다. 얼마나 삶이 그들을 괴롭혔으면 말입니까. 박근혜 당선 때 너무나 마음이 상하여, 이런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친구의 말처럼 노인들의 현재에는 핵발전소도 없고, 쌍용도 없으며, 강정도 없다. 민주주의나 국정원이나 국가보안법도 없다. 그들의 젊은 날은 지금보다 더 힘겨웠을 것이나 돌아온 것은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을 비집고 들어올 타인은 없었다.” <한겨레21 노땡큐 / 941호> 정말 이해하고 싶어, 끙끙 앓으며 썼습니다. 


# 사막이 아닌 길을 걷고 싶습니다

 

  왜 이렇게 긴 글을 왜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지요? 글 쓰며 궁금하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내가 건너는 것은 사막이 아니야.”라는 위로 말입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입니다. 전망이든, 희망이든 그런 것이 목적인 삶은 결단코 전망도, 희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는 삶이 목적이고 지금 서 있는 곳이 희망의 근거여야 됩니다. 그러기에 내가 건너는 것이 사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분명 생각했으니까요. 내가 있는 곳에서 민주주의를 살고, 반자본주의를 실천하는 삶이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목적한 땅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는 지쳐 있었던 것이지요. ‘여기가 사막이니, 어서 건널 도리밖에 없다.’ 생각했습니다. 주변에 그런 동료를 많이 봅니다. 가까운 곳에 사회 운동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회운동과 무관한 친구나 가족들도 그렇습니다. 목적한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현재를 양보합니다. 버티며 살아갑니다. 정신 승리로 상황을 극복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어쩌면 정말 비관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우리 살아생전에 좋은 세상은 없습니다. 그러니 현재를 충만한 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막인데, 왜 사막이 아니냐” 하실 거죠? 맞습니다. 사막 맞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것을 보니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념에서 벗어나면 좀 더 명료한 답을 쓸 기회도 있겠지요. 그런데 직관적으로 대답합니다. 희망과 같이 걸어야 사막 아닌 길로 갈 수 있다. 그것만은 분명합니다. 희망은 어디 있느냐고요? 그것도 같이 찾아보지요. 


  어떤 사건이나 주제의 글을 쓰려다,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어떤 고통에 놓여있으며 우리가 그 손을 잡아야 한다. 주로 쓰는 글이 그렇습니다.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걷는 사막이 긴가, 봅니다. 스스로 치유 받고 싶어서 썼습니다. 좋은 글을 쓰지 못해 죄송합니다. 좋은 글이란 가장 솔직한 글이라는 신념을 반영했으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마음에 상처 입은, 깊은 병에 시달리는 활동가 동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건너는 사막 곁에 저도 서 있습니다.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도움이 될 때가 있더군요. 괜찮습니다. 토닥토닥. 모두 좋아질 것이라 무턱대고 믿어봅시다. 민주주의나 희망이나 그런 것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가져 봅시다. 그러자면 사실 ‘적’은 없을지 모릅니다. 웃으며 사는 이들의 단단한 마음을 이겨낼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도 넉넉한 사람으로 보이길 원합니다. “저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행복할 거다.” 믿음 가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래야 정말 원하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후진 세상을 바꾸어야 이 어려운 일을 감당하는 이유도 있겠지요. 어떤 인권활동가의 꿈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산인권센터(http://www.rights.or.kr/74)가 어렵습니다. 세상을 한 뼘은 괜찮게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활동가들을 격려해 주세요. 인권운동을 응원해주세요. 광고였습니다. 그럼, 이만.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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