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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통신] 혐오표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이유 -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공감의 목소리/공감통신

by 동-감 2015.07.09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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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혐오표현’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들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인터넷 반(反)다문화커뮤니티,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놀이로 삼는 일간베스트, 퀴어축제나 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등장한 반동성애시위대 등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 중 일부가 오프라인에 등장하여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했지만, 주된 쟁점은 그들의 행동이 ‘표현’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규제가 필요한지 여부였다. 그동안 자유주의나 범진보진영에서는 ‘표현 자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규제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터라 혐오표현에 대한 입장은 간단히 정리되기 어려워 보였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모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혐오표현을 규제할 정당성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충분한 논의가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논거와 사례는 제법 풍부하다. 무엇보다 국제적인 합의와 개별 국가의 사례는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잘 설명해준다. 유엔 인권기구나 유렵연합에서는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특히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가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을 여러 차례 확인한 바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성숙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혐오표현을 어떤 방식으로 규제할 것인가를 놓고 조금씩 다른 대책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국제사회가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혐오표현의 ‘중대한 해악’ 때문이다. 혐오표현의 피해자는 소수자다. 혐오표현은 단순히 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들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기회를 실질적으로 박탈한다. 노골적인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소수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컨대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혐오가 공공연하게 표출되는 교실에서 그 인종/민족 집단에 속한 학생들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또한 혐오표현은 특정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일 뿐만 아니라, 그 소수자가 속한 소수자집단 전체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예컨대 특정인에게 제한된 공간 내에서 가해진 혐오표현도 다른 소수자에게 그 해악이 전달된다. 자기가 직접 그런 얘기를 듣지 않았더라도, 혐오표현이 만연해 있는 분위기 자체가 문제가 된다. 게다가 혐오표현은 일회성 발언이 아니라 구조적인 차별적 편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폭발적인 파급력을 갖기 십상이다. 그래서 혐오표현의 해악은 흥분상태에서 내던진 욕설보다 훨씬 크다. 게다가 혐오표현이 물리력의 행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소수자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어도 괜찮은 사회에서는 그 소수자에게 린치를 가하는 것도 용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렇게 혐오에 기반한 폭력이 바로 ‘혐오범죄’(hate crime)이다. 적지 않은 국가에서는 한편으로 혐오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서, 그 전 단계에 해당하는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에게 ‘그런 표현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그런 얘기를 듣는 소수자에게 ‘참고 견뎌라’라고 하는 게 맞는지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다.

 

  물론 표현 자체는 자정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른바 ‘사상의 자유시장론’에 따르면, 나쁜 표현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도태된다. 그래서 나쁜 표현도 굳이 규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혐오표현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도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퇴출을 기대하기 전에 이미 너무 많은 해악을 야기한다는 것이 다. 인종혐오나 동성애혐오에 대한 여러 연구들은 혐오표현과 차별적 사회가 소수자들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 외상을 입히는지를 밝혀낸 바 있다. 혐오표현이 고용이나 서비스에서의 직접적인 차별, 심지어 물리적으로 폭력으로도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모든 문제를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일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도 시장의 적에 대해서는 불가피하게 공적 개입을 불사하는 것처럼, 소수자가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혐오는 제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혐오표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또 다른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몇몇 유럽국가들 처럼 형사처벌로 강경하게 대응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미국처럼 직장, 학교 등에서 자율적인 대책을 강구하거나 혐오가 구체적인 해악을 야기하는 경우 민사책임을 부과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도 혐오표현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자명하다. 어떤 공적 대책을 수립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겠지만, 혐오표현을 방치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글_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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