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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인권법캠프 후기] 인권과 연대감 - 이소희

공감이 하는 일/공감 인권법 캠프

by 동-감 2015. 2. 2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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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안에서 한 집단의 인권을 옹호하는 일은 종종 다른 집단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본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우리나라로 도망쳐 온 난민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은 사회 내에서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난민들을 왜 보호하는 것이냐(난민은 외국인 노동자와 다름에도 불구하고)’라거나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세금도 내지 않은 외국인들을 우리나라 정부가 지원해줘야 하느냐’라는 반발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장애인이나 여성에 대한 고용할당제 등의 보호정책은 종종 병역을 마친 남성들을 위한 군 가산점 제도 등의 정책과 비교되고 논란의 대상이 되며, 아동 보육, 실업자, 저소득층, 청년층, 노인층 등 다양한 계층 중 어디에 더 많은 복지 예산을 투입해야 할지를 두고도 갈등이 발생한다.

 

  이러한 집단 간의 갈등이 발생하는 까닭은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한정된 자원을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또는 국민이라는 측면에서 평등한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관한 기준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사람들마다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의 대립 내지는 갈등에서 더 나아가 집단 상호간의 ‘증오’ 내지는 ‘혐오’로까지 발전하는 이유는 사회적 신뢰의 부재, 연대감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신뢰 내지는 이에 기반한 연대감이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나는 연대감이 개인의 권리인 인권의 밑바탕에 놓인 근본, 즉 인간의 존엄에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근대의 혁명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로서의 인권 개념이 부각되고 발전되었던 까닭은 기존의 왕을 중심으로 하는 신분제 사회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기존 사회에서 왕의 종속물에 불과했던 민중이라는 집단을 해체해서 각자에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평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권, 생명권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개인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인권을 향유하므로 한 개인의 인권은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인권과의 관계에서 그 범위가 정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인권의 기반이 되는 인간의 존엄 역시 인간이 인간이기에 가지는 정체성과 고유한 가치를 전제로 하므로 사회와 완전히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간을 상정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사회적 신뢰에 기반한 연대감이란 인간이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향유해야 할 사회적 가치이며 동시에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

 

  김동춘 교수님의 강연은 이러한 사회적 신뢰가 우리나라의 100여년 간의 정치사 속에서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상실됨으로써 무너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신뢰가 없기에 사회 구성원들 간에 타협이 어려워져서 사람들이 갈수록 소송에 의존하게 되고,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자기가 포함된 이 사회에서의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균등하게 향상되리란 신뢰가 없기에 탈세하게 되어 복지국가로 발전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강연의 핵심 주제는 사회적 연대감을 향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중적인 보수주의를 취하게 되고, 사회의 소수자를 혐오하게 되며, 이 배경에는 사회를 분열시킴으로써 정치적인 이익을 누리려는 권력 및 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김동춘 교수님은 사회적 연대감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뿌리 뽑힌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셨다. 고향을 잃은 서북청년단, 그들만의 국가를 갖지 못했던 과거의 유대인, 그밖에 실직이나 차별, 사회 구조적 불평등으로 사회적 연대감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 가정 및 사회로부터 소외된 일베 등 소위 ‘뿌리 뽑힌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행복을 향유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분노와 증오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극우주의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를 분열시켜 지배하려고 하며, 이러한 ‘뿌리 뽑힌 사람들’의 분노를 민족주의나 인종주의, 불안과 같은 발화성이 큰 주제들로 선동함으로써 한 사회 집단의 분노를 다른 사회 집단, 특히 소수 집단에 돌리도록 조장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고통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비슷한 사회 구조의 피해자, 특히 그중에서도 소수이고 더욱더 약자인 집단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차별, 불평등과 같은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고 사회 구성원들 모두의 힘을 모아 해결하려는 노력은 외면하게 된다. 예를 들어 A 집단과 B 집단이 모두 어떤 사건의 피해자인데 A 집단이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자 B 집단은 B 집단 자신이 배상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A 집단 출신들이 집권했기 때문에 배상을 받는다며 A 집단에 대해 증오를 돌리는 선택을 하는 경우와 같다. 김동춘 교수님은 이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및 외국의 역사적 사례들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해주셨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고 해결하려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뿌리 뽑힌 사람들’이 겪는 분노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이들은 사회적인 연대감 및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회복하기 어렵다. 사회의 다수의 집단들이 이렇게 연대감을 상실한 사람들일 경우 사회 전체의 연대감은 계속해서 무너질 수밖에 없으며 사람들은 연대감을 느낄 수 없기에 상호 협력하려는 노력을 더더욱 포기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되며 사회의 다수가 협력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

 

  김동춘 교수님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감 및 타인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타인에 대해 공감할 수 없고, 타인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면 연대감을 형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대방은 적, 경쟁자로 인식되기 쉽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 공감하고 인정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우리 자신의 문제이고, 우리가 나서서 시작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김동춘 교수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그동안 인권에 대해 여러 가지를 보고 들으면서 생겼던 시야가 더욱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인권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보호받지 못하는 ‘나와 다른’ 어떤 계층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이후에는 인권 문제가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어떤 핍박받는 소수의 집단을 보호해주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가진 ‘인권’의 범위를 고민하고, 이러한 인권이 균등하게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나의 인권도 보호받지 못할 수 있으므로 다 같이 나서서 모두의 인권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강연을 통해서 인권의 핵심에 있는 인간의 존엄, 그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감에 대해 새로이 눈을 뜨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인권이 무시되면 나의 인권 또한 보장되기 어렵기 때문에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내가 인간의 존엄을 누리며, 나의 인권을 향유하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연대감이 필요하며 이러한 사회적인 연대를 통해 개인이나 일부 집단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처하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바꾸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지 않을 때 이 사회는 ‘추상적인 국민 모두’의 것인 동시에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러면 개인은 이 사회의 종속물의 위치에 남을 뿐이며 법에 의해 권한이 부여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사회가 구성되고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연대한다면 이 사회는 ‘구체적인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우리 모두’의 것인 동시에 우리가 책임지는 우리의 사회가 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 제도하에서의 투표를 넘어선 국민들의 역할, 연대감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설득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공익변호사로서의 진로를 꿈꾸면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어떤 사람들,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인권 문제가 사회적인 연대라는 큰 틀 속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면 앞으로 공익변호사로서 내가 대변해야 할 이익은 말 그대로 ‘공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로서, 인권 활동가로서 물론 나는 당해 사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법률적 문제를 겪고 있는 특정한 계층, 특정한 사람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동시에 그 계층, 그 사람들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대방도 설득할 수 있는 공익적인 논리를 항상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가령 난민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일자리를 빼앗긴다며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에 대해 난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우리가 연대함으로써 어떻게 우리들 모두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설득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김동춘 교수님의 말씀대로 이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으면 우리라도 먼저 시작해야 하는, 우리의 일이다.

 

  감사합니다.

 

글_이소희(캠프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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