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국제 기준에 비추어 본 한국의 장애인권 -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강화를 위한 토론회에 다녀와서

본문

 

  지난 11월 7일,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강화를 위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회는 2009년 장애인권리협약이 국내에 발효된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한국정부 심의에 대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 견해의 의미와 향후과제 그리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 강화를 위한 국내법제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국가인권위원회 담당자와 관련 활동단체 인사들, 장애 당사자 및 일반 시민이 참여하여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 세션은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이석구 소장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이석구 소장은 최종 견해 중 세 가지를 특히 강조했는데 장애의 개념을 의료적 모델을 통해 정의하고 있는 현재의 장애판정 및 등급 제도를 재검토하여 개인의 특성이나 상황 및 욕구에 부합하도록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였다. 다음은 국내적 구제절차 속에서 차별구제를 받지 못했을 경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개인이 직접 권리구제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의정서의 비준을 한국정부가 계속해서 미루고 있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권리협약의 모니터링을 담당하고 있으나 예산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독립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사항을 언급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법과 협약이 배치되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협약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내용을 논의하고 검토하는 기구가 필요함을 덧붙였다. 이어 패널 3인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한국장애인재단 서인환 사무총장은 이번 심의과정에 있어서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이 미진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국가인권위원회가 최종 견해를 이행하는데 있어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반면 민간보고서연대는 재정문제 및 구체적 자료 접근의 어려움 등 힘든 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연대 및 활동하여 한국 정부심의에 많은 영향을 끼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민간보고서연대가 최종 견해의 이행을 감시하는 모니터링연대로 발전하여 이 역할 또한 잘 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연세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김종배교수는 재활공학 및 보조기술 전문가로서 의견을 제시했다. 먼저 성년후견인제와 같은 의사결정 대리인 제도에 관해 대리인이 장애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혹은 그에 반하여 법적 권한행사를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것에 대한 한 가지 방안으로 보완대체의사소통보조기구의 보급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하여 이러한 보조기구가 건강보험의 장애인보장구 지급품목에 속해있지 않아 제대로 된 보급이 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환경제어장치나 스마트폰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는 것이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서는 일부 활동보조서비스를 대체할 수도 있음을 언급하며 장애인보조기구의 공적 급여 확대가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을 절감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도 있음을 언급하였다. 마지막으로장애인권리협약의 번역본 및 해설집, 최종견해의 문서 속 용어들이 어려워 일반 장애인과 국민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실제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다음으로 한국척수장애인협회의 이찬우 사무총장은 최종견해의 홍보에 전력을 기해야 하며,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을 지향해야 함을 언급하였다. 또한 여타 토론자들과 같이 모니터링 체계의 구축과 당사자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가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른 국내법제 개선방안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시작했다. 염 변호사는 장애인권리협약의 세부 조항들과 관련된 문제점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개선방안을 제안하였다.

 

  특히 염 변호사는 현재의 정신보건법상 비자의 입원제도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위배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자발적 입원 원칙이 확인돼야 하고 부득이한 비자의 입원 또는 응급입원에 있어서도 헌법상 적법절차가 지켜지도록 정신보건법을 개정해야 함을 주장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11조를 개정해 모든 공공시설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은 일정 유예기간을 거쳐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리고 상법 제 732조가 정신적 장애인의 보험가입을 제약한다는 최종 견해에 따라 상법 732조를 폐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한 보험가입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해야하며, 장애인권리협약 제 25조 e항에 대한 유보를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가 저임금 근로에 종사하는 장애인의 소득을 보전하는 한 방책으로 보충급여제를 도입해 최저임금법상 적용에서 배제되고 있는 장애인들의 급여를 보장해야 하며, 일반 노동시장으로의 진입 준비를 목표로 하지 않는 보호작업장의 운영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제를 마무리하며 염 변호사는 정부가 협약 및 관련 정책의 이행을 평가하고 장애인들이 직면하는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통계를 수집하고 배포해야 하며, 이러한 통계에 대해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보다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장애인정책을 개발해야 함을 덧붙였다.

 

  이어서 발제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법무법인 지향의 이은우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상의 권리구제가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며,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관련하여 집단소송의 도입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의 배융호 사무총장은 "장애등급제는 개선되어야 할 과제가 아닌 폐지되어야 하는 문제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4조(문화, 예술 활동의 차별금지)에 관광, 레저, 여행에 있어서의 차별금지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장애인의 관광이나 여행에 있어 차별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특히 그의 발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교육이나 이해교육을 넘어 인권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이었다. 언제까지 인식만 개선하고, 이해만 할 것인가? 인식개선과 이해를 넘어 장애인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고 장애인에 대한 모든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외치는 배 사무총장의 말은 그 스스로가 장애 당사자이기에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애인이 과연 비장애인이 이해해야만하는, 즉 이해당해야만 하는 사람인 것일까? 그냥 지나칠 뻔했던 문제이지만 장애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크게 느껴질 수 있는 문제였음을 그의 말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 토론자였던 한국농아인협회 김현철 기획과장의 발표 중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청각장애를 가진 지인과 자갈길을 걷던 중 지인이 자갈 밟는 소리는 어떤지 묻는 바람에 고민에 빠졌다던 그의 경험담이었다. 이어서 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갈 밟는 소리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고 더 나아가 파도 소리는 어떻다고 전달해야 하는지. 흔히 파도 소리로 표현하는 철썩철썩이라는 단어만을 가지고 파도 소리를 온전히 전달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이러한 일화를 통해 그는 비장애인 또한 온전히 들을 수 없는 존재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며 장애인 당사자의 어려움을 온전히 듣고, 느끼고 전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 때문에 장애관련 논의에 있어 장애 당사자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토론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힘쓰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어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일반 시민과 장애 당사자들 중 어느 정도가 이런 행사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그 전에 장애인권리협약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홍보 그 자체만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홍보를 통해 시민들이 장애인권 문제에 대해 인식함으로써 오는 변화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한국정부 심의에 대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 견해를 통해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각성하여 더 이상은 보여주기 위한, 구색을 맞추기 위한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닌 장애 당사자에게서 들려오는 실제적인 어려움들을 해결할 진정한 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본다.

 

글_주선하(공감 20기 자원활동가)

 

※ 공감의 기부회원이 되어주세요!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