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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목소리 - 김수영 변호사와 함께 한 공익일반 작은 세미나 후기

공감이 하는 일/공익법 교육·중개

by 비회원 2014.11.0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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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과 우리사회에 대한 고찰

제1조 [목적] 이 법은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집회 및 시위의 권리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0월 2일 목요일, 김수영변호사님의 작은 세미나가 열렸다. 작은 세미나의 주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것이었다. 세미나에서 김수영변호사는 집회 및 시위와 관련된 법률조항들, 판결문들, 그리고 포괄적인 현대의 시각과 현실을 개괄하고 분석했다. 위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집시법) 제1조만을 보면 집시법은 조항의 문구대로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 간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여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작은 세미나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집시법의 목적과 현실 간의 괴리감이 너무나도 컸다는 것이다. 이 괴리감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가 있는 ‘조화’라는 단어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세미나에서 분석한 최근 판결문들을 통해 공권력의 과거 행적에 대하여 살펴 볼 수가 있었다. 집회 및 시위에 공모공동정범의 적용, 집회 및 시위의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그리고 청각적으로 차단하여 표현의 자유를 무력하게 하는 경찰차벽의 사용, 전경대원들의 조합원들을 방패로 둘러싸여 이동을 제한하는 고착관리를 은근슬쩍 ‘체포’의 용도로써의 사용 등, 이 것들은 공공의 안녕질서를 지키고자 했다고 할 수 있을지 언정 결코 집회 및 시위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했다고 볼 수 없다. 다시 말해, 현실은 두 가치 간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하기보다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희생시켜 질서유지라는 가치를 지나치게 추구하고자 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예컨대, 즉시강제에 관한 법률 규정으로써 범죄의 예방과 제지에 대한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에 따라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 관계인에게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가 인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을 긴급한 경우에 한하여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명시 돼 있다. 하지만 작은 세미나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많은 경우에 경찰은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긴급’을 요한다는 명목 하에 표현의 자유를 제지하는 사건이 빈번하다는 것이었다. 법과 현실의 괴리감을 보여주는 가슴 아픈 모습이다. 



  그렇다면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이라는 가치와 공공의 안녕질서라는 가치 간의 적절한 조화란 무엇일까? 이 두 가치 간의 관계가 무엇이길래 조화가 가능하며 또한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것일까? 이 질문을 대답하기에 앞서 이 두 가치간의 관계의 조화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그리고 위에 언급한 여러 다른 판결문들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인 공권력(경찰)에 대하여 먼저 살펴 보도록 하겠다. 



  작은 세미나를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공권력 역할의 중요성이었다. 그 이유는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 (표현의 자유의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의 보장의 조화를 저울질하여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요 주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사례들을 통해 볼 수 있듯이 경찰은 법률 조항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그들의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행정부의 지배를 받는 기관으로서 경찰은 집회 및 시위가 행정부에 반하는 경우 중립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워 정치적으로 편향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우리사회의 과제는 공권력이 두 개의 중요한 가치들 간의 조화를 중립적으로 저울질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를 제거할 수 있도록 현 법률 조항들에 대한 구체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개선을 위해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우리사회의 인식변화의 필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집회 혹은 시위라는 단어는 현대인들의 인식 속에 ‘반정부,’ ‘혼란,’ ‘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시각과 결부되어 자리 잡은 것 같다. 또한, 우리사회는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이라는 가치와 공공의 안녕질서라는 가치 간의 관계를 배중률의 관계, 다시 말해 집회 및 시위의 보장은 자동적으로 공공의 질서를 위해 할 것이라는 잘못된 방식으로 우리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은 것 같다.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공권력의 남용이 우리사회 다수의 인식 속에 살며시 ‘용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집회 및 시위가 민주주의뿐만이 아닌 사회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하여 오랜 역사 속에 자리잡은 서양 선진국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와 같은 시각 차이를 낳게 한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을 통해 양성된 반공이데올로기의 영향, 개발독재과정에서의 권위주의적 통치풍토, 그리고 아직까지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현실, 이들이 모두 자유로운 논쟁을 허용, 발전해 나가는 서양사회의 정치문화와는 달리 현상유지만을 고집하는 우리사회의 정치문화가 왜곡된 형태로 뿌리내리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유를 들고서 현시점을 정당화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를 받아 들인 이상 서양과 우리는 시작점만 달랐을 뿐이지, 지향 하는 이상은 같아야 한다고 본다. 



  국가가 개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개인이 국가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당연히 개인이 우선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헌법 정신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한 인간의 생명이고, 그만큼 소중한 것이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기본권이다. 따라서, 그들의 기본권이 제한 되기 위해서는 이의 전제조건이 많아야 하고, 또한 까다로워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우리 모두의 기본권이다. 남에게 큰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당연히 허용되어야만 하고 법 안에도 이를 보장하고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집회 또는 시위의 경우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될 우려가 있는 경우, 그리고 절박한 사태일 경우에만 그 행위가 제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작은 세미나가 마칠 즈음, 앞서 언급한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졌다. 집회 및 시위의 권리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라는 두 가치 간의 ‘조화’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이를 이룰 수 있을까? 두 가치 간의 조화는 이 두 가치 간의 관계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 두 가치 간의 관계는 단순히 이분법적인 체계에서 바라보아서는 안되며, 존립이 가능한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두 개의 가치가 모두 보장 받을 수 있도록 공권력이 공정하게 균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고, 공권력의 감시자로서 시민들은 공권력이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견인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덤 하우스 2014 세계자유상황보고서에서 발췌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세계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는 매년 국가들의 자유의 정도를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를 평가하여 연간보고서 (Freedom in the World)를 작성한다. Freedom in the World 2014의 지표에서 프리덤하우스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 수준을 34개 OECD국가 중 그리스와 함께 31위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34개 국가들 중 31위. 민주주의로의 갈 길은 아직 멀다. 하지만, 문제가 되었던 경찰차벽의 사용이나 경찰의 무분별한 체포 및 구금에 대해 법적 공방 끝에 위헌판결이 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나라의 표현의 자유의 범위가 천천히나마 조금씩 확대되어 나가고 있다는 작은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작은 희망의 소리는 후기 작성을 마무리하고 있는 내 조그만 방 안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글 _ 안항린 (공감 20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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