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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 염형국 변호사와 함께 한 장애인 인권 세미나 후기

공감이 하는 일/공익법 교육·중개

by 비회원 2014. 10. 2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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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중학교 때, 장애인 복지관에 가서 두 달 동안 주말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중학생인 나보다 어린 친구들부터 머리가 하얗게 다 쇠신 노인 분들까지 모두가 함께 사는 공간이었다. 매번 갈 때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햇볕을 쐰 적이 없고 복지관에서는 주로 텔레비전을 틀어주거나 잠을 재우곤 하였다. 창문과 출입문은 모두 쇠사슬로 굳게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왜 그들이 시설 속에 갇혀 세상과 분리되어야 하는지 아무런 의구심조차 들지 않았다. 그들은 당연히 시설 안에서 지내야 안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주말에만 잠깐 선행 하러 왔다가 다시 밖의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사람이라고 구분 지었다. 십년 전에 만난 그분들에 대한 기억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번 장애 인권 세미나를 들으면서 그분들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왜 그분들이 그곳에 분리되어 살아야 하는지, 또 장애인과 나를 왜 자꾸 구분지려 하는지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1) 정신병원 강제입원


  정신병원 강제입원 에서의 ‘강제’란 인신구속과 치료를 동반한다. 사실 인신구속은 헌법상 보장된 적법절차의 원리(법관이 발부한 영장 필요)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데, 형법상 이 조항은 잘 지켜지는 반면 정신질환자에게는 이 원리가 무시되는 상황이다. 정신병원은 굉장히 독특한 공간으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정신보건법 24조(보호자 2인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의 조항이 많이 허술한 점에서 나온다. 특히 대부분의 강제입원은 보호자에 의해 진행되고 정신과 전문의가 그 정신병원(대부분 사립병원)의 의사인 점을 볼 때 이 조항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에 대해 깊이 고려해 보지 않은 조항이라 할 수 있다. 법적인 문제 뿐 아니라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또한 문제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영화 같은 대중매체에서는 정신질환자들은 ‘미친놈’으로 항상 위험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로 비춰진다. 하지만 예를 들어, 정신질환자중 많은 수를 차지하는 우울증 환자의 경우, 스스로 혼자 있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꺼려한다. 이러한 사회적 편견은 강제입원을 남용하게 하여 이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려 한다.



 2) 장애인 차별금지법과 에이즈 환자


  에이즈 환자는 장애인일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향한 차별은 누가 보호해 줄 수 있을까? 장애인 복지법은 급수에 따라 등록된 장애인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로 시행령, 시행규칙에 따른다. 따라서 에이즈 환자는 장애인 복지법 에서의 장애인이 될 수 없다. 반면에, 장애인 차별금지법은 타인이 장애인에게 차별을 하면 안 되게 하는 제도로서 장애인의 범주가 다르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 2조는 장애인을 ‘ 신체상·정신상의 손상 또는 기능 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로 정의한다. 따라서 에이즈 환자 역시 장기간에 걸쳐 사회적· 일상적 차별과 제약으로 부터 자유롭지 않은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장애인의 범주에 속한다(‘공감’에서는 지난 2014년 7월, 요양병원들의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입원 거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금지된 차별행위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안을 제출하였다). 이러한 에이즈 환자에 대한 차별대우는 그들의, 아니 우리들의 에이즈에 대한 편견으로 부터 나온다. 사실 에이즈는 전염성이 낮고 수혈이나 성관계가 아니면 전파되기 힘들다. 또한 한국에서 의료과정 중 에이즈 환자로부터 HIV가 전염된 경우는 단 한건도 없었다. 사회의 막연한 편견이 에이즈 환자들을 더욱 음지로 몰아넣고, 적극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아 심각한 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3) 염전노예사건


  몇 년전, 신의도에서 있었던 염전 섬 노예사건은 큰 이슈가 되었다. 신의도는 섬전체가 배 없이 나가지 못하는 감금 시설과 마찬가지이다. 지적장애인들은 소개업자를 통해 인신매매 수준으로 업주들에게 넘겨져 여성은 주로 성매매로, 남성은 어업이나 염전업에 임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임금 없이 의식주만 제공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 염전노예 업주들에 관련한 최근 판결에서는 염전노동 무임금에 의식주를 제공하는 행위는 ‘관행’이었다며 업주들의 감형 이유가 되었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법원에서 조차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이는 장애인 노동에 있어, 법원에서조차 사용자와 근로자는 상하관계라는 것을 미리 전제해 두었다는 것으로 보여 진다. 





▲ 한 방송에서 소개된 염전 노예 사건



나가며


  내가 중학교 때 만났던 장애인 분들은 비장애인과 같은 ‘사람’이다. 누구나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들도 밖에 나가서 자신만의 취미도 즐기고, 노동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한다. 장애를 가졌다고 하여 그들의 욕구를 거세하는 것은 폭력이다. 장애인분들의 약 70%는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졌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구분 짓는다. 같이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이지만 그들은 사회의 ‘위험’으로 치부되어 사회의 ‘안전’을 위해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복지이다. 복지 판단은 공급자(국가)가 아닌 바로 수요자, 즉 실제로 복지를 제공받는 장애인들이 해야 하고, 국가는 공급자로서 그들의 의사·욕구를 파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물어봐야한다. 


글_이가연(공감 20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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