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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기 힘든 현실과의 조우 - 황필규 변호사와 함께한 국제인권 작은세미나 후기

공감이 하는 일/공익법 교육·중개

by 비회원 2014.10.2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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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20, 유투브에 올라온 뉴스타파 스페셜<자백이야기-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진실>를 통해 처음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중앙합동신문센터란 탈북자들이 국내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조사받는 곳으로, 최대 6개월까지 머물며 조사를 받은 뒤 하나원으로 보내져 3개월의 과정을 거쳐야만 사회에 편입되어질 수 있다. 하나원에 대한 정보는 자원봉사자 등을 통해 들어왔지만, 문제는 이 합동신문센터는 과연 무얼 위해 존재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이 없을 뿐더러, 알 길 조차 막혀있다. 그저 '임시 보호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가 합동수사센터의 법률적 근거의 전부라는 점과, 상황에 따라 '추가로 임시보호할 수 있음'이라는 근거 아래에 합법적인 추가 구금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우리가 알고 있듯,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피고 유우성씨 동생 유 양은 170일이 넘는 '행정절차에 필요한 정상적 수용'이라는 이름 아래, 변호인 접견권 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불법감금되었다. 이후 사건이 공론화되자 지난 7월 28일, '탈북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사각지대가 없어지도록 한다'는 현 국정원장에 의지에 따라 '중앙합동신문센터'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명칭이 바뀌었다. 또 이번 10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첫 인권보호관으로 '이선희 변호사'를 임명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 현재 전국 두 곳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다. 2009년 국내에 최초로 도입된 베이비박스는 금방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지만 아주 잠시였을 뿐, 그 새 사람들은 버려지는 아이의 존재에 대해 잊고 말았다. 이러는 사이에 전국에서 한 해 3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베이비 박스를 통해 이 사회로 편입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흔히 들려오는 어른들의 잠정적인 결론은 '요새 어린 놈들이 우리 때와 다르게 점점 무책임해지고, 발랑 까진 것이 문제'라며 비혼모들을 비난하곤 한다. 덩달아, 또래 역시 '그래. 네가 문제야. 어쩐지 수상하더라.'라고 말함으로써 아무도 아이를 버려야만 하는 비혼모의 사연을 들어주고자 하지 않는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이 비혼모 여성의 편은 없다. '무책임한 오늘날 한국여성 혹은 이래서 입양특례법이 문제다.' 라는 지식인들의 칼럼만 허공에 나뒹굴 뿐이다. 그들 모두 오늘 당장 힘겹게 존재하는 아이와 엄마를 그저 자기의 논리적 증거로서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전부이다. '사회 통념적인 시선에서의 올바른 한국 여성의 자세와 역할' 혹은 '입양특례법 재개정 실현'과 같은 허공 속 말들 말고, 당장 그들의 삶을 지켜주기 위한 비혼모 및 그 자녀를 위한 복지체계에 대해 고민하고, 시선을 나눠줄 사람은 없는 것일까. 비혼모 자녀를 위한 시설이 아니라, 비혼모 자녀 양육을 위한 예산지원은 불가능한 것일까. 왜 우리사회는 아직도 구시대적인 법과 시설에만 의존하는 전근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비혼모와 그 아이들에게 당장 필요한건 거대 담론과 초대형 규모의 시설 확장 이전에, 당장 오늘 하루 김치와 밥을 살 돈, 아이를 지키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 4월 16일, 대한민국이 무너졌다. 전원 구출이라는 기적적인 오보도 잠시, 수백명의 학생 그리고 일반 탑승객들이 아직 세월호 안에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간, 매일 가는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다 티비를 보고서는 답답한 마음에 화가 나서 책상을 쳤고, 맥주잔 하나가 깨졌다. 그리고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주인아저씨께 몇번 인사드리고는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눈물이 계속 났지만, 별개로 끝까지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하늘은 무심했다. 내 기억으로 16일부터 19일까지 4월답지 않은 바람과 비가 계속 오락가락하며 내렸다. 이렇게 무기력하고 음울했던 적은 몇 없었다. 나 말고도 다들 같았을 것이다.

 

 

 황변호사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언론을 통해 사고를 처음 접하고, 급히 휴가를 내어 진도로 향했다. 사건 직후, 당장 변호사의 신분으로서 도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도착한 그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정부측과의 만남에 있어 의사전달을 돕거나, 아니면 제안안 검토만이라도 도와준다고 진심을 다했으나 경황이 없는 유가족들은 대부분 넋이 나가 있거나 혹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끌어 그조차 '쁘락치'로 오인하고 불신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는 그저 진도 실내 체육관에서 해경 상황실 관계자가 말하는 중계 아닌 중계 "사망자 OO명, 실종자 OO명..." 얘기만을 들으며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그러다 가끔 정부 고위 관계자가 들리면, 유가족이 매달려 '구조인원을 제발 늘려주세요. 제발 우리아이 사진 한번만 봐주세요. 우리 아이 아직 바다에 있어요.' 하며 경호원 사이에 외쳐대는 어머니의 절규만을 마주할 뿐이였다. 이후, 사건이 장기화되자 대한변협 등을 뛰며 테스크포스팀을 꾸리고, 진도 체육관에 들려 예민해진 학부모들끼리 싸우는 것을 말리기도 하며 크고 작은 일과 관계없이 적극 도왔다. 날이 지날 수록 보고되는 사망자 수가 늘어갈 때마다, 진도 체육관은 텅 비어만 갔고 몇 안남은 유족들끼리 모여 실낯같은 희망을 쥐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오늘 10월 14일, 세월호 참사 182일째. 정치관계자들 사이에서 특혜법은 논란이 되었고, 수사는 이미 방향을 잃고 있다. 결국 혼란속에 지금까지 아무도, 아무것도 확연히 아는 것이 없다. 또 아무도 유가족의 얼굴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불과 182일만에 누구나 '지겹다. 그만하라'고 신경질부리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도 진상규명을 위한 집회는 계속 되고 있다. 아이들을 향한 슬픔과 무책임함에 대한 분노와 절규는 계속 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글 _ 변재원 (공감 20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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