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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라는 말부터 버리자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일상

by 비회원 2007. 12. 1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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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변]

'불법체류자'라는 말부터 버리자




 

언어는 감수성의 중심 무대다. 언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자, 사물과 존재에 이르는 길이다. 언어는 때로 ‘존재의 진실'을 가리기도 하고, 때로는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도 한다. 언어는 우리의 의식이요 무의식이고, 전략이고 실천이며, 무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근로자'와 ‘노동자'라는 규정 사이에는 ‘찐한' 의식/무의식의 싸움이 들어있고, 서로 다른 이해와 감수성이 녹아있다. 동일한 대상을 지칭하는 ‘근로자'와 ‘노동자'라는 말은, 어쩌면 서로 다른 인식과 실천을 내용으로 하는 서로 다른 존재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어가 존재의 진실을 가리는 대표적인 예로는 ‘산업연수생'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산업연수생'은 더 이상 ‘노예'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이방인에게 노예의 자리를 할당하는 방식이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는, ‘연수생'이라는 말로서 별 죄의식 없이 타인에게 ‘노예‘의 삶을 강제할 수 있었다.

‘연수생'이라는 언어의 전략 없이는 이 제도가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최근 여수에서는 '보호소'라고 부르는 ‘감금'시설에서, 무고한 생명들이 쇠창살에 갇힌 채 ‘문을 열라'고 외치며 죽어갔다. 보호 없는 곳을 ‘보호소'라고 부르며, 적법절차의 통제를 쉽게 비켜갈 수 있었다. ‘연수생', ‘보호소'라는 말로서 가리고 있는 현실의 폭력성을 보려는 근본적인 노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 우리의 인식과 실천은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는 ‘외국인근로자'와 ‘이주노동자'라는 규정 사이에 놓여있는 차이만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실천한다. ‘불법체류자'와 ‘미등록이주노동자'라는 규정도 마찬가지다. ‘불법체류자'라는 규정은 메마른 법의 언어, 행정의 언어다. ‘체류'가 ‘불법'이므로 그 ‘불법'은 행정적인 처분의 대상일 뿐이다. 사람 자체가 불법/합법의 대상일 수 없으나, ‘사람'을 ‘체류'의 관점으로 한정함으로써 건전지 ‘폐기처분' 하듯 간단히 ‘행정처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통해 구체적인 ‘사람'을 지워버리는 것, 그것이 ‘불법체류자'라는 규정이 수행하는 행정의 전략이다. ‘불법체류자'라는 규정 하에서 우리는, 다 쓴 건전지를 폐기처분하는 수준 이상의 인식과 실천을 얻기 어렵다.

반면 ‘미등록이주노동자'라는 규정을 통해 우리는 다른 인식과 실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노동'하는 육체의 건강함과 고단함을 생각할 수 있고,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외국인'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이주'해서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미등록'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그들에게 더해지는 곤궁한 처지를 되살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존재 자체를 간단히 ‘불법'으로 규정하는 위험에서 빠져 나와,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사람'과 만날 수 있다.

체류'는 ‘불법'이지만 ‘사람'이 불법일 수는 없기에, 그들이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한, 노동에는 정당한 대가가 주어져야 하고, 아플 때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법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자녀들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외로울 때 함께할 친구와 노래가 필요하다. 그들도 우리처럼 ‘빵과 장미' 모두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피해를 신고하러 간 경찰에 잡혀서 출입국관리소로 인계되고, 체불된 임금을 받기 위해서는 이 나라를 떠날 각오를 해야하며, 단속이 무서워 쉬는 날에도 움직일 수 없다.

‘미등록'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왜곡되는 그들의 삶의 조건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일례로, 미국 LA주의 한국영사관은 ‘불법체류자'인 재외국민의 불이익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재외국민 신분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영사관 신분증은 LA 경찰을 포함한 모든 공공기관에서 인정되고, 전기·수도·전화신청·아파트 임대 계약·은행계좌 개설에까지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고 한다. ‘불법체류자'라는 규정으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문제의식이다. 영사관이 그들을 ‘국민'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조치들이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는 다른 조건들을 보지 않은 채 정의를 그 자체로 판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인간인 우리도 눈을 감자. 행정공무원의 안경을 쓰고 체류의 불법 여부를 보려 하지 말고, 살아 숨 쉬는 인간을 그대로 만나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불법체류자'라는 언어부터 던져버려야 한다.


글_정정훈 변호사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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