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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의한 배제와 감금, 학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라 - "형제복지원 국민법정-끝나지 않는 악몽을 고발합니다" 방청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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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9일, 건국대학교 법학관 모의법정에서 사법연수원 인권법학회 44기가 9개월간 준비한 형제복지원 국민법정이 열렸다. 부끄럽게도 공감 자원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비마저 내리던 월요일 오후 2시, 모의법정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하고 있었다. 약 100여 명의 관객, 20명의 피해생존자, 국민 배심원 8명, 사법연수원 44기 인권법학회원 20여 명, 촬영팀 10명 등 150명 내외의 사람들이 찾아주었다.

 

  국민법정 검사, 이하정 시보(사법연수원 제44기 인권법학회)의 국민법정 소개 후 재판부 입장과 공판 심리가 이어졌다. 형제복지원 국민법정은 인터넷을 통해 모집된 배심원들이 평결하는 국민참여재판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50명이 넘는 인원이 국민배심원에 신청했다. 국민법정은 당시 형제복지원 원장이었던 박인근(국민법정에서는 '박인권'으로 가명을 사용하였다),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을 피고인으로 세우고,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었던 피해자 및 당시 형제복지원을 수사했던 검사, 부산시장 등을 증인으로 신청하여 그들의 증언을 통해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파헤쳤다. 수화통역사 두 명이 번갈아 처음부터 끝까지 수화통역을 했다. 법정의 전후좌우 측면에 SBS, WBC 등에서 취재 나온 방송국 카메라가 배치되었고 예닐곱 시간에 걸쳐 촬영되었다.

 

 

 

  검사의 사건 소개에 따르면, 1986년 12월 울산지청 검사에 의해 형제복지원 부랑인 강제노역이 밝혀졌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역대 군사정권이 거리의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의 법령(내무부 훈령 410호)을 만들자, 민영 형제복지원이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의 복지원 건물에 무연고자를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며 협박, 폭행, 강간, 상해, 심지어 살해와 암매장까지 한 비극적인 인권침해 사건이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공식 사망자 수만 513명에 달하고 일부 시신은 300~500만 원에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원장 박인근은 매년 20억 원의 국고 지원을 받는 한편, 원생들을 무상으로 노역시키고 부실한 식사를 제공하여 막대한 금액을 착복하였다. 복지원의 수용자는 최대 3,146명에 이르렀고 박인근은 1984년,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정부 당국의 수용 정책과 시설 운영자들의 경제적 타산이 빚어낸 끔찍한 인권 유린 사건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결국 국가에 의한 폭력이자 국가 범죄라는 것이다.

 

  모의법정이었지만 피해 생존자 세 명이 재판부와 증인으로 참여해 더욱 의미 있는 자리였던 것 같다.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첫 번째, 두 번째 증인들이 실제 피해 생존자들이었는데, 소년시절 잡혀 들어가 극악무도한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던 이 분들이 숨지 않고 이렇게 용기 내어 지난 날 당신들과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만행을, 어쩌면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에 자행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중차대한 범죄를 고발해준 것에 격려와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처참한 증언을 들으면서 동시대에 이런 일이 국가권력의 묵인 하에 버젓이 일어났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피해 생존자들은 증언을 하는 동안 떨리는 음성으로 말씀을 잘 잇지 못하기도 하였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써낸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는 증언 중 얼굴이 붉어졌고 울먹이다 방청석으로 돌아와 휴지로 눈가를 닦았다.

 

  휴정시간에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서명 운동에 동참했다. 국회 앞 1인 시위(11:30~13:30) 접수도 함께 받고 있었는데, 시민들이 동참하는 릴레이 시위가 된다면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에게도 큰 위로가 되고 분명 힘이 될 것이다. 이날 마흔 명 정도 되는 시민들이 서명했다고 하는데, 온라인 서명도 진행되고 있으니 [내무부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등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진선미의원 대표발의)] 제정을 위한 서명 운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분들은 부디 힘을 보태주세요! 제~~발~! ^^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서명 운동 참여하기

 

박인권 피고인 신문 중 한 피해자가 격분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전두환 피고인 신문 때는 또 다른 피해자가 “부랑인도 인권 있어!”라고 외치며 문을 세게 치고 나갔다. 연출이 아니라, 모의법정임을 알고 있음에도, 한 번도 어루만져진 적 없는 상처가 또 건드려져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이었으리라.

 

  검찰 최종 논고에서 피고인 전두환에게 22년 6월을, 피고인 박인권에게는 무기징역을 구형하자 처음으로 법정 내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피해자들의 박수였다. 방청석에서도 박수가 나왔다. 한 시간 가까이 배심원단이 평의평결을 한 끝에 판결선고가 나왔다. 피고인 박인권은 배심원단 만장일치로 유죄, 피고인 전두환은 만장일치는 아니나 배심원 대부분 유죄였다. 재판부는 모든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고 피고인 박인권에게는 무기징역이, 피고인 전두환에게는 22년 6월 형이 내려졌다.

 

 

 

  선고가 끝난 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실종자, 유가족) 모임 공동대표 한종선 씨의 선창으로, 피해생존자들과 법정에 자리한 모든 이들이 함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자! 살아가자! 살아가자!” 삼창하였다. 피해생존자들의 웃음 띈 얼굴과 희망찬 구호에 법정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기운이 함께 실리는 듯 했다. 이어 사법연수원 제44기 인권법학회장 김종휘 씨는 본인이 부산 출신임에도 형제복지원 사건을 몰랐다, 그런 무관심에 시민들의 책임이 있다며 피해자 진상 규명을 함께 요구하자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 단체사진 촬영 때, 피해생존자들이 자리한 맨 뒷줄은 양 손을 마주잡고 모두 함께 파이팅을 외쳤다. 맞잡은 손의 열기가, 우리들의 힘찬 외침이, 우리 곁을 지키는 더 많은 시민들과의 연대로 전해지길 진심으로 바라 본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아무리 심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도 그냥 지나가는 것이 된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어떠한 법률에도 근거함이 없이 오직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최고 권력과 공무원 조직과 결탁한 민간 시설이 합작으로 벌였던 중차대한 사건이다.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그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방법, 그리고 향후 대책 등이 ‘매우 중대하고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모두 아픈 기억을 딛고 한걸음 더 나아가길 소망한다.

 

형제복지원 국민법정 이하정 시보와 공감 19기, 20기 자원활동가들

 

글 _ 장지원 (공감 20기 자원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1조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으므로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제3조

모든 사람은 생명을 가질 권리, 자유를 누릴 권리, 자기 몸의 안전을 지킬 권리가 있다.

 

제5조

어느 누구도 고문 또는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대우 또는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제9조

어느 누구도 함부로 체포 또는 구금되거나 해외로 추방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

제29조 제1항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

 

형제복지원 국민법정 페이스북 페이지

 

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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