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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 우리는 진실이 필요하다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변

by 동-감 2014.09.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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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가 왜 죽었는지 모릅니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한 번 듣고서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7월 1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4.16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에서 단원고 2학년 4반 고 최성호 군의 아버지 최경덕 씨가 한 말이다.

 

  “4월 16일, 아이들이 물에 갇혔을 때 저는 제가 가면 아이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물가에 갔을 때 그렇게 차가운 물을 만져 보고 그리고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힘이 빠졌습니다. 3일이 지나도 떠오르는 시체만 건져 올리는 해경을 보고 힘이 빠졌습니다. 4일째 아침 차가운 물에 손을 또 넣어봤습니다. ‘내 자식이 죽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지금 88일이라고 하시는데, 아들이 보고 싶어서 아들놈 입던 옷 입고 나왔습니다. 아들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가지고. …… 보고 싶습니다. 한 번만 딱 만져 보면 좋겠는데……. 전국으로 (특별법 제정 청원) 서명을 받으러 다니면서 제가 많이 울었습니다. 순천에서, 부산에서, 울산에 가서도 울었고. 잘 우는 아빠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때문에 웁니다. 내 새끼가 죽은 지 88일이 지났는데 이 병신 같은 아빠는 내 새끼가 왜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내 새끼가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이 병신 같은 아빠들은, 엄마들은, 힘이 없어서 국민들의 힘을 빌려서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려달라고 서명 받으러 다닙니다. 누구의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고, 내 새끼는 죽었는데, 책임자는 없습니다. ……”

 

  전국 각지로 특별법 제정 청원 서명을 받으러 다니느라 그을린 낯빛의 아비는 아들의 회색 티셔츠를 입고 나와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끝내 절규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고개를 떨구고 함께 울었다. 절망과 비통, 울분, 아이를 잃은 이유를 알 수 없어 ‘병신 같다’는 무력감은 비단 이 아버지만의 것은 아니다.

 

  참사 발생 후 진도 앞바다에서 뱃머리만을 남기고 기울어진 채 잠겨가는 세월호를 보면서 느꼈던 가장 강력한 감정은 무력감이었을 것이다. 최첨단의 기술과 장비를 갖고 있는 시대에 수천만의 국민이 동시에 실시간으로 현장을 지켜보면서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고 그저 중계를 보고만 있어야 했다는 무력감. 그런데 그 감정은 5개월이 지난 현재 다른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최초의 무력감이 배 안에서 살아있을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연유했다면, 현재는 이렇게 장시간이 흘렀음에도, 48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입법청원에 서명하면서(9월 2일 기준) 염원함에도, 여전히 참사의 진상 규명 시작은커녕 그를 위한 최소한의 수단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 이야기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줄여 부르는 법안의 정식 명칭은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대한변호사협회에 의뢰하여 초안을 만들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위원회의 의견을 합하여 만든 단일안이다.

 

 

참사는 두 번에 걸쳐 일어났다

 

  4.16 참사는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건은 두 번에 걸쳐 일어났다. 한 번은 배가 침몰하면서, 한 번은 침몰한 배에서 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면서. 세월호 특별법은 이런 뜻을 반영하여 ‘4.16참사’를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여 승선자의 다수가 사망, 부상 및 후유장해, 실종 당한 사고를 비롯하여 구조, 수색 과정 전반에 걸쳐 발생한 모든 사건’(법안 제2조 제1호) 이라고 정의하였다. 침몰 이후의 구조와 수색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을 아우르고 있다.

 

 

진실규명을 위한 필요최소한의 수단

 

  법의 핵심은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4.16 참사 특별위원회’이다. 위원회가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의혹 해소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에 대한 모든 조사와 수사, '참사 발생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된 제도와 관행'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고(법안 제3조), 이를 위해서 조사, 동행명령, 청문회, 상임위원에게 독립적인 검사의 지위와 권한 부여, 위원회에 공소제기를 결정할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

 

  기존의 수사와 재판, 국회의 국정조사 등이 가능하고 일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특별위원회라는 특별한 기구를 만드는 것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미 행해진 국정조사에서 요청한 자료 중 대통령과 청와대가 공개한 자료는 요청된 것의 5% 미만에 불과하다. 과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강제력 없는 조사권한으로 인해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을 수 없었고, 그 성과를 모두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피해자와 관계자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수준의 진실을 밝혀낸 경험이 우리에게 있었는지 돌아볼 수밖에 없다.

 

  한편, 진상 규명을 위한 민간단체 차원의 조사나 기록을 남기는 작업들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에 의한 진상 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적인 것이 가장 중요하고 공적인 것만이 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공적인 확인은 공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형사책임이든, 민사책임이든, 정치적인 책임이든.

 

 

진실, 진정한 분노와 치유의 출발점

 

  ‘나는 꿈이 있는데.’ 참사 이후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말이다. 광화문을 지나며 수없이 들어 따라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된 이 말은 김동혁 군의 생전 마지막 음성이었다. 동혁 군이 침몰 후 배 안에서 직접 촬영한 이 영상은 선실 주변을 소개하는 리포트 같았다, 최신 랩송의 뮤직비디오 같았다, 울먹임으로 바뀌다 끊겨 버린다.

 

  “내가 왜 수학여행을 와서,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살고 싶은데, 나 울 것 같은데, 나 무섭다고, 욕도 나오는데, 어른들한테 보여줄 거라 욕도 못하고, 진짜 무섭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나 살고 싶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참사 이후 시민들이 가장 많이 다짐한 그 말 그대로, 우리는 김동혁 군에게 꿈이 있었다는 사실, 죽음을 앞두고 무서워했으나 씩씩했다는 사실, 우리가 구조하지 못함으로써 그 꿈을 좌절시켰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담담하려 했던 목소리에 깔려 있던 두려움을 고통스럽게 상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희생자들의 생전 모습, 생전의 꿈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라는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사실, 우리가 배 안의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 모두를 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이 여기에서 그치고 만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허망할 것인가. 정작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우리는 아직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 한국사회의 역량으로 최대한 답해야 하는 것, 곧 참사의 총체적 진실이다. 진실이 밝혀지는 때, 그때 비로소 길 잃었던 우리의 분노는 정확한 대상을 찾을 것이고 ‘진짜’ 분노가 시작될 것이다. 진짜 분노 이후에만 가능할 진정한 치유 또한 거기서 시작될 것이다. 그 치유는 2014년 도피하지 않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낼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진실이 필요하다.

 

글 _ 차혜령 변호사

 

 

*세월호특별법의 주요 내용 

(클릭하시면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위원회의 특별법 관련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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