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공감 자원활동후기] 공감의 눈으로 별자리를 읽다

본문

 

 

 

 

 

#1. <공감>과의 만남

 

  아무래도 달팽이를 밟은 것 같았습니다.

 

  1년여 전, 충남의 한 보건지소에서 근무를 하던 시절이었어요. 저녁 8시만 되어도 하늘의 별이 반짝이던, 별보기를 방해하는 빛이라곤 드문드문 흐르는 자동차의 전조등이 전부인 그런 시골이었습니다. 그 날 저는 조용한 보건지소를 생각 없이 거닐다가 ‘바스락’하는 소리를 들었고, 발을 들어 확인해보니 제 발 밑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렸습니다. 처음엔 ‘달팽이가 아닐 거야’, ‘그리고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 ‘무언가’가 미워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나를 찾아와서 나를 이리도 찜찜하게 만드는지... 진료실 창문으로 하늘을 보며 빨리 먹구름이 검은 비를 토해내어 저의 불편함과 그 ‘무언가’를 씻어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하루였습니다.

 

  그 날의 달팽이처럼, 저를 찾아오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진료하는 일은 ‘초짜’ 한의사인 저에겐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뼈 마디마디에 켜켜이 쌓인 고된 노동의 흔적을 지우기엔 저의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3년간의 공중보건의 생활 동안 제 어깨 위의 짐이 점점 무거워져갈 때 즈음, ‘나 같은 사람은 의료인으로서 자격미달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고민 끝에 진로를 변경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고, 그 해 겨울 <공감>의 ‘겨울 인권법 캠프’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가 <공감>을 만나게 된 계기는 ‘공익’과 ‘인권’이라는 숭고한 가치의 실현이라기보다는 저를 찾아왔던 그 날의 ‘무언가’와 아픈 할머니·할아버지들을 보며 느꼈던 부담감, 불편함, 죄책감 등을 씻고 싶었던 개인적인 바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권법 캠프를 참가하면서 막연하게 관심이 있었던, 왠지 멋있어 보였던 ‘인권변호사’의 길이 실제로는 어떠한지 조금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 빈곤과 복지의 문제, 사법부 오욕의 역사 등 캠프 기간의 소중한 배움들을 더 깊고 넓게 하고 싶은 욕심에 <공감>의 19기 자원활동가로 지원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합격하여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 동안 <공감>의 구성원분들 그리고 20명의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2. ‘아직 변제되지 못한 과거의 요구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오히려 아직 변제(辨濟)되지 못한 과거의 요구들, 지나간 세대들의 희생과 패배와 절망을 현재에 정치적으로 변제∙이행∙성취해야 한다는 과제와 그 과제를 이룰 힘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 기억의 정치학> p383~384, 최성만 지음 / 도서출판 길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 동안 염형국 변호사님을 도와 여러 사안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변호사님을 따라 외부행사에 참석하고, 월례포럼을 준비하고, 작은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3월에는 얼마 전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첫 번째 시정판결을 받은 매우 의미 있는 소송과 관련한 자료를 조사했고, 4월에는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한 문서들을 정리했습니다. 5월에는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제도의 폐해와 사회복귀에 있어서의 어려움 혹은 가능성에 관한 월례 포럼을 준비했고, 6월에는 염전지역 장애인 인권침해 조사결과 보고 및 대책마련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7월에는 AIDS 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현실의 제도적 문제들에 관한 자료들을 조사했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나 기억에 남는 업무는 형제복지원사건 관련 문서들을 작업한 일입니다. 제가 맡은 일은 형제복지원 입퇴원 명부와 사망자 명부를 엑셀로 옮기는 작업이었습니다. 단순 반복 작업이라 조금씩 지쳐갈 때 즈음, 사망자 명부에 있던 ‘성별 : 여, 나이 : 1세 추정, 사망원인 : 영양실조, 매장형태 : 가매장’을 읽고서, 이 짧은 한 줄에 담겨있는 당시의 비극이 머리에 그려져 한동안 침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슬픔 속에 스러져간 생명들이 영원히 편히 잠들지 못할 것 같다는, 죽은 자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과 그러한 비극은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사명감에 힘을 내어 작업을 마무리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염형국 변호사님을 비롯한 <공감>의 변호사님들과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멋있게만 느껴졌던 ‘공익·인권 변호사’의 삶이 ‘아직 변제되지 못한 과거의 요구들’에 응답해야하는 결코 녹록하지 않은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삶이 즐거움과 보람으로 가득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후기를 쓰며 자원 활동 기간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2014년의 대한민국에는 참으로 많은 비극이, 슬픔이,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 비극들을 몸으로 껴안으려 노력하셨던 <공감>의 구성원분들을 보면서 잊었던 그 날의 ‘달팽이’가 떠올랐습니다.

 

 

#3. 초대

 

실체가 없고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암 같은 상처를 가지고, 아집이라는 앵무새 우리 속에 갇혀 제멋대로 구는 폭군들이여, 어서 오라.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화통에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 변명에 도취하는 사람들, 궁극적으로는 결코 자신을 무죄 방면할 수 없는 비밀 판사들, 마지막에는 희극적인 오해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는 순교자들이여, 어서 오라. 사랑의 거머리와 햄스터, 추위에 떠는 추방자들, 아무도 생일을 기억해주지 않는 나병 환자들, 앞에서 껴안으면 등이 벌써 외로워지는 사람들, 반짝이는 새 동전이 생기면 항상 까치한테 도둑맞는 사람들아······

<방문객> p244, 콘라드 죄르지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오라. 우리 가운데 어느 한쪽이 이야기하면 다른 한쪽은 귀를 기울일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함께 있을 것이다.

- 같은 책 p247

 

  그 날 제가 외면했던 ‘무언가’는 어쩌면 달팽이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진정 외면했던 것은, 그리고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저의 ‘무심함’과 ‘무책임’, 그리고 저의 ‘무지’와 ‘편견’ 그리고 ‘무관심’에는 그림자처럼 타인의 불행이 따라 붙는다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제 삶이 <공감> 전과 <공감> 후가 같을 수 없는, 그리고 같아서는 안 되는 이유는 자원 활동 기간 동안 타인에 대한 ‘책임’과 ‘관심’, ‘이해’와 ‘공감’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후기를 쓰며 마시는 콜라를 보면 신옥미 실장님이 생각나듯, <공감>은 소소한 일상의 순간순간 저를 찾아올 것입니다. '남자친구 있어요?', '여자친구 있어요?'라는 질문 보다는 '사귀는 사람 있어요?'라고 물을 것이고,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들을 보면서 취약노동과 김수영 변호사님을 생각할 것이고, 노란 리본을 보면 ‘세월호’를 부등켜 안으셨던 황필규 변호사님이 생각날 것이고, 아마도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할 것이며, '거울뉴런'을 공부하다 문득 <공감>이 생각날 것이고, 안국역을 지나칠 때면 사무실의 '훈향'이 그리울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액자를 볼 때마다, 많이 힘들었던 지난 5개월 동안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염형국 변호사님이 생각날 것이고, 벗어날 수 없는 매력의 우리 염팀-기석이, 다혜, 서연이-과 19기 자원활동가들-준희, 다흰이, 명호, 범준이, 병인이, 옥향이, 정우, 주연이, 효빈이, 선희, 진호, 유미 누나, 경민이, 지현씨, 한재, 지수-이 떠올라 미소 지을 것입니다.

 

 

#4. 인권은 (별자리 읽기)다.

 

  2014 ‘여름 인권법 캠프’를 준비하던 기석이, 다혜, 서연이와 담소를 나누다 지난 ‘겨울 인권법 캠프’ 때 ‘인권은 ( )다’에 채워 넣었던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당시에 저는 ‘인권은 (별자리 읽기)다’ 라고 적었습니다. 문득 발터 벤야민의 ‘성좌개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2박 3일 간의 캠프 기간 동안 <공감>의 변호사님들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쓴 것인데요, 자원 활동 기간이 끝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꽤나 멋진 답을 쓴 것 같습니다.

 

  과거의 인류가 하늘에 퍼져 있는 별들을 읽을 때, 마음대로 읽은 것이 아니라 고요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별들을 응시하며 별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읽으려 했듯,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공감>의 구성원분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인들의 언어가 아닌 그 분들의 언어로 대화하고자 노력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주체가 휘두르는 폭력이 아닌 부드러운 친근함으로 다가가는 <공감>의 구성원분들을 보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많이 감동했던 지난 5개월이었습니다.

 

  별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빛이 여전히 우리를 비추듯, 19기 자원활동가로서의 공식 활동이 끝난 뒤에도 <공감>의 따스한 빛이 저를 비출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따스한 빛을 등대삼아 ‘앞에서 껴안으면 등이 벌써 외로워지는 사람들’을 제 삶 속으로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_ 김민국 (공감 19기 자원활동가)

 

 


※ 공감 SNS 에서 공감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