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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인권법캠프 후기]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얽힌 타래

공감이 하는 일/공감 인권법 캠프

by 비회원 2014. 7. 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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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년 전 그때도 장맛비가 내렸다. 우산을 쓴 채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던 나는, 담배에 불을 붙여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병원 건물을 올려다보며 담배연기를 자욱하게 뿜어내는 한 사람을 보았다. 휠체어를 탄 그의 네 발자국 뒤에서, 그가 뿜어내는 담배연기 속에서, 나는 그의 짙은 한숨을 본 것 같았다. 담배를 필터 끝까지 다 태운 그는 나와 함께 있던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다친 다리에 대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비슷한 말을 했다. “아니, 그러니까 이게 잘 안 나사요, 다리 살 빠진 거 보이요?, 왼쪽 다리는 멀쩡한데 오른쪽 다리 이래가지고…” 반복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러려니 했다. ‘진짜 다리 살 많이 빠졌다. 오른쪽 다리로는 힘 못 쓸 거 같은데...’하며 그의 치료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거기까지였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을 동안 나는 할아버지와 그의 대화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그러고는 담배를 하나 더 꺼내 피우는 그를 뒤로한 채 환히 불 켜진 병동으로 발길을 향했다.

 

2. 
  강연자였던 엄기호 활동가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말했다. 언어로는 전달할 수 없는, 마음속에서 꺼내놓을 수 없는 고통과 억하심정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때 사람들은 반복을 통해서 조금씩 그들이 지닌 가슴의 답답함의 농도가 옅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의 강연을 듣고 있는데 문득 1년 전 병원 앞 흡연구역에서 보았던 휠체어 탄 사람이 떠올랐다. 그가 왜 자꾸만 비슷한 말을 했는지,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그제서야 흐릿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저 그의 언어적 습관이라 여긴 채 지금까지 기억 속에 묻어 놓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의 반복이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담배 한 개비가 품은 연기로는 가슴속에 담고 있는 한숨을 모두 토해낼 수 없었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 위한 그 나름의 방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꽤나 퍽퍽해왔다. 나는 그날 휠체어 탄 그의 담배연기를, 맡기 싫어하는 담배연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의 답답함을 보았다하면서도 그의 심정을 함께 겪지 않았다. 피했다. 그는 그저 모르는, 병원의 환자였을 따름이었다. 눈앞에 마주한 사람의 고통도 마주하지 않는 마당에, 과연 내가 도처에 흩어져 있는 들리지 않는 고통의 아우성과 보이지 않는 아픔의 눈물에 대해서 관계 지어 말할 수 있을지, 받아 안을 수 있을지에 대해 강연을 들으며 계속 생각했지만, 정작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져갔다. 거리를 두고 구경만 하고 있는 방관자에서 이제는 들으려 하지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는 무감각한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 스스로 눈멀고, 귀먹은 사람이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속이 복잡했다. 공감과 연대, 함께 하기에 대한 말하기의 가벼움과 그에 비해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나의 손과 발, 심지어 마음에 대해서 스스로도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나의 무거운 마음이 당위에 버금가는, 어쩌면 집착과 비슷한 감정에서 오는 반응은 아닌가싶어 오히려 주저했다. 조심스러웠다.

 

 


  엄기호 활동가는 위와 같은 순간에 고통을 직면한 사람들에 공감하고 그들과 함께 고통을 겪을 수 있는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역설했다. 그는 ‘고통’과 ‘고난’을 분리 설명하며 범주화된 공통의 고난으로는 각 개인 주체의 고통을 풀어내기 어렵다고 했다. 흔히 법률가나 인권활동가들이 개인의 고통을 ‘고난’으로 범주화하여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상태라 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설사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범주화된 언어로 그들의 고통을 ‘고난화’하여 풀어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객체와 대상으로 전락한 고통이기에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했다. 강연자 역시 말과 말 사이의 행간과 맥락 속에 감추어진 고통을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말했는데,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어려움 자체를 인식하는 것에서 오는 고통, 즉 눈앞에 있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고통을 통해 타인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조금씩 희석될 수 있다고 했다. 고통을 겪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대면한 자의 얼굴에는 고통이 함께 묻어날 수 있으며, 대면한 그들이 나눠 지닌 고통을 무게만큼 풀리지 않는 아픔의 실이 녹아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3. 

   주차된 차의 차창을 통해 비치는, 그가 뿜어낸 잿빛의 담배연기는 짙은 어스름의 색과 대비되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마치 무겁게 짓눌린 답답함이 연기처럼 가볍게 사라지기를 바라는 듯 그는 깊게 그리고 길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돌아서서 빗속으로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바라보았다. 머쓱하게 서있다 발을 옮겼다. 그가 다시 가까워 왔다.

 

 

  강연자의 말이 공허하게 흩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1년 전 내가 가던 발길을 돌려 담배를 피던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들리지 않는 고통에 말 걸기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남의 사정, 나와 관계없는 일들, 짧은 시간 소비되고 마는 수많은 뉴스거리가 아니라 하나씩 얽인 타래를 풀어 가야할 나, 너 그리고 우리의 문제를 떠올려 본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의 질문에 소비되지 말고, 계속 그 질문을, 의문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해 본다. 당장의 현안에 대한 해답이 뚜렷하지 않다하여 가던 길을 멈추지 말기를, 주변이 여전히 어둡다고 하여 다시 잠들지 않기를 바래본다. 미로의 출구 앞에 서있을지 모르니, 해 뜨기 직전의 새벽일 수 있으니, 그렇게 말해 본다.

 

글_김대진(캠프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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