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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는 말이 없다 - 세월호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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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사진 출처_http://sgjlove.egloos.com/viewer/10998071

 

그들을 만나기까지


  세월호 생존자 174명. 처음에는 그들의 존재에 관심이 없었다. 생존자도 피해자일 것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그들은 살았으니까. 가끔 기사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사에서도 생존자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사고를 목격하고 경험한 증인으로서 사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은 기사에 등장했다. 사고가 난 뒤 며칠 후에야 제주와 인천을 오가는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세월호에 자주 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에게 화물차는 밥벌이 수단인데. 그제야 그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는 두 달이 넘게 걸렸다. 만나고 싶었지만, 인적사항이나 연락처를 알 길이 없었다. 화물연대 등을 통해서 어렵게 그들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렇게 6월 마지막 주에 기선, 은정, 현모와 함께 제주와 서울에서 17명의 화물차 운전기사들을 만났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면 우리는 오늘 저녁에 또 술 마셔야 해요.”


  사고 당시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그들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다들 울먹거렸다. 성인 남성의 우는 모습을 그렇게 많이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다들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다시는 배를 탈 수 없을 것 같다고, 화물차도 몰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겨내야겠다고 생각해서 배도 한 번 타봤는데 다시 못 할 일이라는 것을 확인했노라고 했다. 사람들을 만나기도 무섭고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다고 했다.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꿈에 자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하지만 약으로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였다. 규칙적으로 약을 챙겨 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약을 먹으면 몽롱해져서 안 먹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술이 그들에게는 유일한 탈출구가 된 건 아닐까.


  “내가 다친 건 괜찮아요. 내가 좀 더 애썼으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힘들어요.”, “옆 칸에 들어가서 한 사람만 더 구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못한 게 한 맺히고 가슴이 메이고…” 세월호 4층 선미에는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묵는 방이 따로 있다. 대부분의 화물차 운전기사는 이 방에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보다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사람인 이상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그들을 힘들게 했다.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학생들과 함께 있거나 학생들을 목격했던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고통은 더욱 커 보였다. “바닥이 아주 미끄러웠어요. 그래서 제 몸에 호스를 감고 아이들한테 소방 호스를 던져 끌어냈는데… 쉽지 않았어요.” 김형오(가명) 씨는 아이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팔을 무리하게 쓴 나머지 근육 파열 등의 중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다. 화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화물차 운전기사도 있다. 최재영 씨는 동료 기사 정인수(가명) 씨와 식당에 있었다. 라면을 먹기 위해 온수통 앞에 섰을 때 갑자기 배가 기울었다. 그 순간 그들은 근처에 있던 학생들에게 뜨거운 물이 쏟아질까 봐 쓰러지는 온수통을 붙잡았다. 그러다가 결국 본인들이 뜨거운 물을 뒤집어썼다. 화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최재영 씨는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한 여학생에게 건네주고 바다를 헤엄쳐 나와 구명정을 끌고 다시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마지막으로 본 학생 세 명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린다고 한다. “아저씨,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듣고도 지키지 못한 것이 그에게는 평생의 고통이 될 것이다. 

 

▲ 아이들을 구조하려다가 화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화물차 운전기사


“당장 할부금 196만 원을 내야 하는데 막막해요”


  트라우마와 부상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당장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유일한 생계 수단이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사고 피해자로서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3개월 동안 4인 가구 기준으로 1,080,000원의 긴급복지지원금을 받았고, 부상을 당한 화물기사에게는 생활안정자금이 한 번 지급되었다. 또한, 고용노동부가 주는 특별 휴직·휴업 지원금도 있다. 그러나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간에는 지원 내용에 차이가 있다. 예컨대 유가족에게는 가구당 1명의 담당 공무원이 배치되어 있지만, 생존자에게는 그런 조처하지 않았다. 부상자 가족에게 지급되는 생활안정자금은 희생자 유가족에게 지급되는 금액의 절반 수준이다. 지원 대상에는 세월호 피해자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화물차 운전기사의 경우 어떤 때에는 피해자에 포함되고 어떤 때에는 피해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렇듯 지원 내용이나 요건이 천차만별인 데다가 지원 내용마다 근거 법령도 다르고 담당 기관도 다르다 보니,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정부에서 먼저 알려 주기 전까지는 본인이 어떤 지원을 받는지 알 길이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받는지 질문을 하니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말은 저마다 달랐다. 그러나 공통으로 한 말이 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자신들이 언제까지 어떤 항목으로 지원을 받는지 그들은 잘 모르는 것이다. 참고로 정부는 유가족에게는 배포한 지원 안내 책자를 화물차 운전기사들에게는 배포하지 않았다. 


  “(다른 기사가) 지원되는 거 알고 있느냐고 말해 줘서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귀동냥으로 얻은 정보를 가지고서 관할 기관을 찾아가면 담당 공무원마저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안전행정부에 문의하면 해양수산부에 문의하라고 하고, 해양수산부에 문의하면 지자체에 문의하라는 답을 듣기도 했다. 지원을 받을 때마다 요청하는 서류를 챙기는 것도 일이다. 관할마다 일일이 따로 연락하는 과정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당시 상황과 자신의 현재 고통을 그때마다 설명해야만 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몸도 아프고 사람들 만나기도 힘든데 이것 떼어 와라, 저것 떼어 와라. 그래서 챙겨서 가면 다른 데 가 보라고 하니 속이 타죠.”, “이거라도 해 주니 고맙게 생각해라. 그런 것 아니겠어요.”, “이건 우리더러 구걸하라는 건지…” 정부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는 가뜩이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들의 자존감마저 무너뜨렸다. 입원한 화물차 운전기사의 경우에는 감정의 골이 더욱 깊다. 화상을 입은 최재영 씨의 경우 약 6,000만 원의 치료비가 발생했다. 병원 원무과에서는 그중 800만 원을 본인 부담으로 내라는 통보를 했다. 해운조합에 문의하고 항의해서 일단은 내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지만, 앞으로 1년 넘게 재활치료를 해야 하는데 또 어떻게 싸워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병원도 해운조합도 안행부도 해수부도 서로 떠넘기기만 하고 직접 묻고 따지지 않으면 되는 게 없어요.”, “큰아들이 곧 제대하는데 복학하지 않고 바로 돈을 벌겠다고 해요. 먹고 살아야 하는데 방법이 없으니까.” 현재 그의 아내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간병을 위해 병원에서 살다시피 한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그의 딸은 집에 혼자 남겨진 상황이다. 대부분의 화물차 운전기사가 한집안의 가장인데 사고로 인해 가족 모두가 고통을 짊어지게 되었다. 가족을 위해서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낸 화물차 운전기사도 있었다.  


  생계도 생계지만 차량 할부금도 문제다. 화물차 운전기사는 보통 금융기관을 통해 할부로 차를 구입하는데 화물차 값만 1억 원이 넘다 보니 몇 년에 걸쳐 매월 20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할부금으로 납입해야 한다. “할부금이 없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인데 저는 이제 (차 산 지) 1년 되었고, 누구는 5개월 되었고, 누구는 2개월 된 차고…” 금융기관에 따라서는 할부금 납입을 몇 개월 유예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금융기관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금융기관은 1년을 유예해 주었지만 어떤 금융기관은 3개월을 유예해 주었다. 복불복인 셈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의식해서인지 ‘세월호 피해 생계형 화물차량 운전자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내용이 추가 대출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것도 화물차 구입이 대출 조건이다. “화물차 타기 힘든 사람한테 화물차를 구입하라니…”, “빚쟁이한테 너 돈 빌려 줄 테니까 다시 빚을 지라고 하는 건 대책이 아니죠. 빚쟁이를 양산하겠다는 것이지.”

 

▲ 생계형 화물차량 운전자에게 추가 대출을 받으라 하는 정부의 사후 대책. 원본사진 출처_교통신문(http://www.gyotongn.com/news/articleView.html?idxno=54407)

 


“어떻게 우리가 말을 해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들이 그렇게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지 몰랐다. 따져 물었다. 왜 지금까지 말을 안 했냐고. 안타까운 마음에서도 그랬지만 한편으로는 항의의 뜻도 있었다. 유가족들은 계속 힘들게 싸우고 있는데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항의의 뜻 말이다. “어떻게 우리가 말을 해요. 산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느냐고요.”, “유족들이 저렇게 힘들게 있는데 아직은 우리가 말할 입장이 아니지요.” “말을 못 꺼내겠어요. 시기상조인 것 같고.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죠.” 그들은 말을 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답답하다고 했다. 억울하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말을 할 수도 없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들어 주는 이가 없었다. “지역 국회의원한테 전화를 했는데 통화는 못 하고 다시 연락해주겠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연락이 없어요.” “누가 우리에게 관심이나 있겠어요." "아무래도 다 흩어져 있다 보니 모이기도 힘들어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유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유가족들한테 힘이 되어 같이 싸우고 싶었어요. 그분들을 위로하고 그러면서 저도 위로 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없어요.” 위로하며 위로 받고 싶었지만 용기도 기회도 없었다. 혼자 알아내고 혼자 싸우고 혼자 견뎌야 하는 외로움이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이제 곧 지원이 중단될 것이다. 할부금도 납입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화물차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보험금도 받기 어렵다. 그렇다면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소송을 해서 손해배상을 받아야 하는데 회사는 문을 닫았다. 정부는 일찌감치 이런 발표를 했다. “세월호 사고로 피해를 입은 화물차 운전자들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경제적 손실을 보전받아야 한다.” 그러면서 정부는 유병언이 가진 재산 전부를 가압류했다. 정부가 유병언의 재산을 가압류했으니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소송에서 이겨도 받아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더 이상의 상처는 없기를 바란다. 더 이상의 죽음은 없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고 나니 몹시 불안하다. 그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겠노라’는 우리의 약속에 그들과 나란히 서고 싶다.


글_윤지영 변호사

* 이 글은 한겨레 21에 실렸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2014.07.28 제1021호] [표지이야기] 잊혀진 사람들

① 따로 묵는 방이 선미에 있어 쉽게 탈출한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트라우마’…

은행 대출 남은 화물차 잃었는데 정부 지원책이란 게 “화물차 구입 대출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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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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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28 17:15 신고
    잘 보고 가요. 오늘도 상쾌한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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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29 07:01
    모두 힘내세요.산자나 죽은자나 . 슬픈일입니다 다신 이런일 재발되지 않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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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7.31 14:33
    이런 글을 보면 세월호 관련 시위, 집회가 얼마나 순수하지 못한 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렇게 전재산을 잃은 사람들은 죄인처럼 살아야하고, 모든 것은 학생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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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0 02:07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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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5 19:27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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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11 10:45
    화물차 할부값이 얼만데 저렇게 허무하게 바다로 가라앉아버리고 생계도 이제 없어져버렸으니 화물차기사분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의 마음이 아프고 울분이 터질정도입니다. .. 정말 이게 나라가 맞는지 ...화물차 기사분들이 얼른 맘과 몸이 회복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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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11 10:47
    학생들 뿐만아니라 일반인 피해자들 화물차 피해자들 모두 구제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