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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학점 인정과 GOP 참사, 우리는 누구에게 분노하는가.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4.06.2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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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으로, 깨어있는 사람으로 자처하는 이들조차 특정 주제에 관해서는 대화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군 복무와 관련된 담론이 주로 그렇지 않은가 싶다. 군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그러는 넌 군필이야?’, ‘어디 출신이야?’, ‘나 때는 말이야’의 삼단 콤보를 거쳐야 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이 사회의 다수는 군 복무로부터 받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이런 히스테릭한 반응은 결국 군 복무와 관련된 직, 간접적인 상처로부터 온다. 당연히 군 면제자, 공익근무자, 여성 등에게 군의 문제에 의견 개진의 기회는 사실상 없다. 심지어 일반적으로 편하다고 인식되는 부대나 보직 출신의 군필자들조차 군 문제에 관해서 발언하기는 매우 어렵다. 집단 트라우마의 환자들에게 이와 관련된 논의는 그것이 무엇이든 분노를 사는 것이다.
  군 가산점제, 군 호봉제, 국가 유공자 인정 등의 문제에서 결국은 이러한 트라우마가 논의를 주도한다. 국방부의 고민 없는 정책에도 이성적인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이번 군 복무 학점 인정제도에 관한 논의도 마찬가지의 흐름으로 보인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그래서 어떠한 효과가 있을 것인가? 이로 인해 누가 이득을 보는가? 왜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는가? 등에 대한 고민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군인들이 얼마나 희생하는데 이 정도도 못 해주냐.” 는 말에 이미 이 정책에 대한 반대는 수십만 장병들과 군필자들의 희생을 무시하는 처사가 되고, 그 희생에 비해 미미하기만 한 학점 인정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필자들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온다.
  이 글은 한 발 뒤로 물러서 이성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길 촉구한다. 당신의, 우리의 트라우마가 아무리 엄청나다 하더라도 이 문제를 이성적으로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분노와 트라우마의 근원인 군 복무 환경이 학점인정 따위의 대책으로 나아지지 않을 것임이 명백한데도 왜 국방부의 정책은 항상 ‘군 밖’을 향하는가? 또 군필자의 분노는 왜 국방부를 향하지 못하고 미필자를 향하는가? 우리는 이 논란의 근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대학교 교양과목 9학점 인정’에서 보이는 교육의 몰락.

  대한민국의 대학 진학률은 엄청나다. 대학교 학점 인정이 군에 징집된 청년들에 대한 보편적 혜택으로 보일 만큼 많은 사람이 대학을 거쳐 간다. 하지만 이 한 사건에서만 봐도 사람들이 대학 ‘교육’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처절하게 드러났다. ‘학점 인정’이 ‘혜택’으로 받아들여진다는 현상 자체에서 이미 대학교 수업을 그다음 단계(보통은 취업)를 위한 수단으로밖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학교 수업을 듣게 해 주는 것이 혜택이 아니라, 안 들어도 들은 것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혜택이 된다는 점은 자발적으로 대학과 수업을 선택하여 원하는 학문을 추구했어야 할 이 나라 대학생들이 얼마나 ‘억지로’ 지성의 전당에 참여하고 있었는지, 혹은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보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대학교 교양 수업 9학점을 면제해 주는 것이 혜택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대상조차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학교 수업은 그 자체로 학생들의 권리나 혜택이 아닌 것이다.
  군 복무의 현실과는 별개로 이 논의에서 나타난 교육이라는 가치의 무력화는 큰 문제이다. 애초에 대학교의 존재 이유가 졸업장이지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무언가가 아니었다는 점은 씁쓸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많은 자원을 투입하여 들어가는 대학이라는 곳이 결국은 ‘타이틀’을 위한 것일 뿐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이러한 현상을 느끼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동의까지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을 국가에서 당연시하는듯한 이번 논의는 여전히 충격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곧 대학교의 졸업 필수 학점을 30학점 정도로 대폭 줄여서 1년 안에 졸업하도록 하는 것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로 말할지도 모른다.


학점 인정, 공정한 혜택인가?

  굳이 뭐 대단한 통계자료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사병으로 입대한 청년들 중 꽤 많은 수가 대학 휴학 중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논의는 제하고, 국방부 논리대로 학점 인정이 사병들에게 혜택이라고 치자. 그러나 대학 재학생이었다는 이유로, 교양 필수 학점을 아직 다 이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렇지 않은 동료들과 다른 혜택을 받는 것은 공정한가? 이러한 선별적 혜택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이 혜택을 받지 못한 다른 사병들에게는 어떤 다른 혜택을 줄 수 있는가? 이 혜택이 공익근무자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인가? 감정적 논의를 배제하고, 논리적으로 이 법안을 바라보면, 애초부터 고민이 없었던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공정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느닷없고 일방적인 국방부의 시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실은 언제나 그래 왔다. 장병들의 생활 개선, 근무 환경 개선, 처우 개선에는 국방부의 노력과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군 밖’을 향한 외침에는 어떠한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입으로 떠들기만 해도 밖에서 다 해결될 일이다. 그 혜택이 정작 군 복무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알량한 시혜조차 불공정하게 분배된다고 해도 어쨌든 국방부는 사병들의 처우에 대한 중요한 개선을 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학점 인정이나 시험에서의 가산점과 같은 문제가 국방부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될 일인가? 왜 군 내부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병사들의 고통이 군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닌데, 혜택은 ‘군 밖에서 기다리는’ 모습인가?
  병사들 중 대학 휴학생의 비율이나, 교양학점 이수의 여부를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이 몇 가지 의문만으로도 국방부의 ‘학점인정’ 논리가 불공정하고 부적절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모두가 볼 수 있는 뻔히 보이는 길을 제쳐놓고 보이지 않는 쉬운 길을 가려는 국방부의 태도에서부터 기인하는 문제이다.



바로 보이는 길을 말한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자. 병사들의 처우 개선에 무엇이 필요할까. 가장 쉽고 뻔한 대답은 ‘월급이나 올려줘라.’ 이다. 남성, 여성, 군필자, 미필자에 무관하게 모두가 가장 쉽게 대답할 내용이다. 그리고 실제로 군인들의 봉급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26일 밝힌 국방부의 내년 국방예산안(기획재정부에 제출된 것으로, 결정된 사안이 아니다.)에 따르면 상병 월급은 올해보다 2만 200원 오른 15만 4800원이다. 그렇다. 몇 퍼센트 인상이라는 말이 공허해 보일 정도의 월급이다. 이쯤 되면 비슷한 징병제를 취하고 있는 대만이나 이스라엘 등의 사례를 거론하는 것조차 시간 낭비이다. 월급의 대폭 인상이 병사들의 생활 개선에 가장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그 시행의 구체적 방법으로 단순하게는 국방비 증가나 국방세 징수 등의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지만, 이런 구체적 방법론을 말하기 이전에 국방부에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이 ‘뻔히 보이는 길’은 정말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국방 예산이 쓰여야 할 이보다 더 급한 사안이 어디에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각종 군납 비리나 부실한 급식까지 언급하지 않겠다. 내가 있었던 부대에서는 ‘체력단련장’이라는 이름으로 골프장을 만들고 있었다. 당연히 사병들이 사용할 수 없는 이 골프장을 짓는 예산에만 수백억의 예산이 책정되었다. 이미 이러한 군용 골프장은 전국에 수십 개가 운영되고 있다. 사실상 봉급으로서의 의미가 없는 사병의 월급, 우리 모두에게 보이는 사실이다. 과연 이것을 국방예산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인가, 그렇다면 이 희생은 현재 국방부 구성원 전체가 분담하고 있는가, 이미 누구든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 한 훈련소의 입대행사 모습.



그래서, 왜 언제나 본질에서 빗겨가는가.

  사실 사병의 월급 문제는 누구에게나 보이는 문제일 뿐,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눈에 뻔히 드러나는 문제조차 해결의 의지가 없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지만, 군대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앞에서 말한 트라우마, 우리가 모두 안고 있는 이 트라우마는 돈을 못 받고 일한 억울함에서 오는가? 아마 대부분에게 아닐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자유의 박탈상태, 숨 막히는 병영생활, 비정상적 위계질서 등에 있다. 한국 군대의 이러한 전근대적 상태는 국방을 위한 불가피한 요소인가? 이 이야기도 길다. 군 학점 인정제를 이야기 하는 데에 이 고민까지 여기 불러들이지 않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학점 인정보다 급한 국방부의 고민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사병 월급과 함께 이 문제는 한국 군대의 사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제이다. 그러나 왜 국방부는 이러한 눈에 보이는 뻔한 길을 놔두고 기상천외한 길을 선택하는가? 백번 양보해 학점 인정이 사병들에게 혜택이 될 뿐 아니라 공정한 혜택이기까지 하더라도, 국방부가 휘하의 수십만 장병들이 지금 당장 겪는 고통에는 외면하고 ‘전역 후’에야 받을 수 있는 혜택에 집중하는 행태에 대해 누군가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



GOP 총기난사 사건, 국방부의 자세.

  국방부가 기상천외한 헛발질을 하는 동안, 정례행사처럼 군 내 참사가 발생했다. 사망자 가족들조차 임 병장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밝힐 정도로 이 사건에는 소위 ‘관심 병사’에 대한 처우에서부터 군내 왕따 문제까지 다양한 병영 내 구조적인 문제가 개입되어 있었다. 이 문제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국방부를 탓하기보다 왕따의 가해자, 혹은 총기 난사의 가해자라는 프레임에 갇혀 서로를 탓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혹은 모든 군대 문제에 가해자를 특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혹은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국방부는 자신의 문제, 떠맡은 수십만 청년들의 고통을 바라보아야 한다. 군 밖을 향한 이와 같은 공허한 외침에 청년들은 편 가르기를 할 것이 아니라 연대해야 한다. 국방부를 향해야 할 분노가 나와 같은 약자에게 표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눈에 보이는 길, 누구나 생각하는 길부터 먼저 생각해주길, 모두에게 바란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글_이한재(19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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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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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29 23:27
    조금 다른 얘긴데, 군 복무 보상을 학점인정의 방식으로 해버리면 대학 교육이 의무교육이 아닌 이상 배제되는 인원이 필연적으로 생긴다는 게 참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이전 군 가산점 문제도 그렇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