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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서울인권영화제 "나 여기 있어요" 에 다녀와서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4. 6. 1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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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서울인권영화제 페이스북


2014년 5월 22일부터 25일,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제19회 서울인권영화제가 열렸다. 공감 19기 자원활동가들이 그곳에 다녀왔다. 그 중 4명의 후기를 전한다.


첫 번째는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자원활동을 한 적이 있고, 벌써 여러 해째 참여하고 있는 권준희 자원활동가의 후기이다. 그에게서 그와 서울인권영화제와의 첫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내게 용산은 '도심테러'였다. 2009년 1월 갓 대학 합격 통보를 받은 나는 스스로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냥 놀았다. 꾸준히 보아오던 신문이나 뉴스를 멀리 미뤄뒀고, 논술과 면접을 준비하며 사회가 어떻고 저떻고 떠들었던 말과 글들에 대한 책임도 미뤄졌다. 보수일간지의 1면을 훑고는 '왜 아직까지 도심 한가운데서 화염병을 던지나?'라 생각했다. '폭도'들의 죽음은 내게 스쳐 지나가는 활자에 불과했다.


 봄이 되어 나는 대학에 들어섰고, 어떠한 학문과 실천을 꿈꾼다며 자기소개를 하곤 했다. 새내기로서 많은 사람들의 호의와 환대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다.  그러던 학기 말의 어느 날, 지방에서 올라온 내게 영화제라는 것을 같이 가자는 사람들의 제안은 매력적으로 들렸다. 서울에선 영화'제'라는 것도 하는구나라는 놀라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청계광장은 실로 아름다웠다. 영화라는 것이 꼭 영화관이 아니라, 거리에서도 열릴 수 있구나라는 놀라움. 그리고, 개막작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출처_ DAUM 영화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영화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용산의 철거민들이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나의 근본적인 세계관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고용된 용역은 철저히 사람들을 괴롭혔고, 국민을 보호한다던 경찰은 뒷짐만 졌다. 내가 알던 국가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사람들은 무리한 진압에 목숨을 잃었다. 수사 기록은 공개되지 않았고, 희생자들은 순식간에 부검 당했다. 책이나 신문에서 보지 못하던, 날 것 그대로의 현장을 나는 그 영화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 것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충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이 정도인데, 그날 남일당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였을까. 용산을 '도심테러'로 기억했던, 지난 6개월에 가까운 시간들이 한없이 죄스러웠다. 사회 변화를 이야기하던 내가 부끄러웠고, 대학에 대한 동경 속에 실천을 꿈꾼다던 내가 도대체 그동안 뭘 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후의 영화 GV와 영화제 소개를 통해, 내게 그저 아름답게 비치던 청계광장이 당국의 영화제 불허에 맞서 얻어낸 공간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영화를 그저 편하게 앉아 볼 수 있었는데, 이를 얻기까지 또 다른 노력들이 자리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책에서 배웠던 내용들이 현실에서는 다를 수 있음을, 그리고 변화들을 일구어내기까지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함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그날 저녁의 강렬한 기억은 이후 내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친 하나의 변곡점으로 남아있다. 내가 받았던 강렬한 충격을 떠올리며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리하여 인권영화제의 자원활동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금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을 바꿀 수는 있다고, 세계관에 균열을 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러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 믿음은 강렬하다. 그리고 이 믿음 속에 나는 매년 인권 영화제를 몰랐던 사람들과 함께 인권 영화제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



 올해 열린 제19회 서울인권영화제의 슬로건은 "나 여기 있어요"였다. 밀양, 4대강, 삼성반도체, 기지촌 등등. 어느덧 우리에게서 잊혀가는 이야기들을 통해 희미해져 가는 존재의 그림자를 관객들이 마주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마음일 테다.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를 찾는 것을 바라보며, 괜스레 뿌듯했다. 하지만 올해는 인권영화제를 다루는 언론이 하나도 없었고, 빚이 많이 쌓여 매년 가을에 열리던 정기 상영회도 불투명하다고 한다. 폐막식에서 영화제를 준비한 자원활동가들은 하나같이 티셔츠를 사달라고, 해설책자를 사달라고, 후원해달라고 이야기했다. 2008년 정권이 바뀌면서, 지원이 끊기고 영화관 대관조차 쉽지 않은 상황 속에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해가 갈수록 그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상임활동가 일숙은 내년에는 20주년을 맞아 자원활동가들의 밤을 준비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내년에 웃으며 건배하는 순간을 상상한다.


* 영화제 후원에 관한 내용은 http://hrffseoul.org/ko/donate 에서 볼 수 있다. 계좌번호는 (국민)746301-00-001515 서울인권영화제, (농협)301-0121-9390-21 서울인권영화제.




다음은 개막작이기도 한 <발렌타인 로드>를 감상한 최서연 자원활동가의 후기이다. 




 햇살이 밝았던 5월의 토요일 오후, 동료 공감 자원활동가의 추천으로 서울인권영화제에 참석하게 되었다. 마로니에 공원은 거리공연을 보는 사람들, 자유롭게 앉아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기분 좋게 북적였다. 그곳에 마련된 지하 상영관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무책임함과 무관심 속에 소리 없이 사라져간 한 남자아이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되었다. 


출처_ NAVER 영화 "발렌타인 로드"


 서울인권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한 <발렌타인 로드>는 2008년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실제 살인사건에 관한 영화다. 의미 있는 세부내용들이 많지만, 핵심적인 줄거리만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래리라는 열네 살의 소년이 게이로 커밍아웃을 한다.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래리는 같은 학년 남학생인 브랜든에게 고백을 한다. 브랜든의 친구들은 브랜든을 놀렸고, 다음날 브랜든은 수업시간에 래리의 머리에 두 발의 총을 쏜다. 래리는 결국 발렌타인데이에 사망하고, 발렌타인 로드에 잠들게 된다. 래리의 사망 후 브랜든의 재판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는데, 이를 둘러싸고 상반된 여론이 형성된다. 한편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해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브랜든에 대해 종신형을 주장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래리의 커밍아웃이 브랜든을 얼마나 불편하고 무섭게 만들었는지를 강조하며 선처를 호소한다. 결국 브랜든은 20년 형을 선고받게 된다.


 영화는 하나의 답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내심 영화가 래리를 옹호해주길 바랐던 나로서는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이 영화를 보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 속 사람들의 모습이 연기가 아닌 실제 우리네 모습이였기에, 무섭기까지 했다. 어쩌면 영화는 관객들에게 찝찝해하라고, 두려워하라고, 분노하라고, 제발 세상을 바꾸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불관용하고 우리가 그 불관용을 묵인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관용적인 사람이 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래리와 브랜든은 모두 피해자이다. 브랜든의 잘잘못을 따지겠다고 법정에 앉아있는 배심원, 변호사, 검사, 판사,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사와 그 보도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다 가해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브랜든은 나와 다른 것을 타자화시키기 좋아하는 이 사회가 낳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존재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다만 브랜든이 조금 더 불우하고, 어리고, 충동적이고, 과격했을 뿐이다.

 

출처_ 서울인권영화제 아카이브


 래리의 죽음 이후 사람들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일보다는 브랜든의 형량을 결정하는 일에 혈안이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소수자 혐오 범죄들이 끊임없이 반복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남자가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죽임을 당할 정당한 이유가 되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얼마 전 표준국어사전의 ‘사랑’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남녀’ 간의 감정으로 개정한 우리나라는 과연 희망이 있는 사회인지 자문해볼 일이다. 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중2인 남동생을 불러 말했다. 남자도 남자를 좋아할 수 있고, 여자도 여자를 좋아할 수 있는 거라고.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다음은 폐막작인 <탐욕의 제국> 을 함께 한 이한재 자원활동가의 글이다.




 인권 영화제의 폐막식 자리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장대비는 영화제 주최 측에는 걱정스러운 소식이었겠지만, 천막 아래 모여 보는 영화는 운치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빗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그리고 폐막작 <탐욕의 제국>이 끝나도록 하늘은 쏟아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출처_ 네이버 영화 "탐욕의 제국"


 가족을 잃은, 장애를 얻은 슬픔. 책임질 사람은 관심조차 없다는 답답함. 반도체 공장의 철저한 비인간성. 나레이션도 배경음악도 없는 이 다큐멘터리에 깔리는 음향은 다름 아닌 반도체 공장의 라인 돌아가는 소리다. 이들에겐 일상이었을 이 소리, 끝없는 기계음. 백혈병을, 암을, 뇌종양을 얻은 이들은 그래도 해맑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얼굴과 온몸을 하얀 방진복으로 가려야 했던 이들은 그래도 예쁜 모자를 찾아 쓰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이들을 거대한 벽과 싸우게 한 것은 누구인가. 저 거대한 벽이 아니라 가족을 잃고 장애를 얻은 이들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인가.

 지난 5월 말, 삼성 측이 백혈병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다시 협상 테이블에 나서면서 이 문제는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황유미씨의 사망 이후 7년 만이며, 서울행정법원의 산재 인정 후 3년 만이었다. 이와 같은 전향적인 태도 변화의 이면에는 이건희 씨의 건강문제가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이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에 신고된 피해자만 160여 명이고, 그중 약 60명은 이미 사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장애를 앓고, 고통을 겪는 동안 무관심했던 삼성이, 이제 회장의 병세로 인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이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에 무감각했던 그들이, 단순히 회장의 병세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변화했기를 바란다. 이 사과가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과 노력의 결실이었기를 바란다. 아직 본 협상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앞으로 이들이 얼마나 더 먼 길을 헤쳐나가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삼성의 전향적 태도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기를 빈다.



<탐욕의 제국>을 함께 본 오경민 자원활동가의 글을 끝으로 후기를 마친다.




 서울인권영화제에 다녀왔다. 조금씩 내리던 비가 폐막식이 시작할 때쯤엔 쏟아지기 시작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신나는 섬’이라는 밴드의 축하공연 뒤 상임활동가분의 말씀이 이어졌다. 올해 19회를 맞은 인권영화제는 사정이 아주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실내 상영을 하지 못한지 이미 여러 회째이고, 정기 후원 역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국가기관이나 기업 후원 없이, 관객의 기부금과 정기후원자의 후원금만으로 운영하겠다는 마음이 멋있으면서도 위태로워 보였다. 그 뒤로 자원활동가들이 영화제를 마무리하는 소감을 말했다. 몇 년씩 활동하신 분들이 많은 걸 보니, ‘이 영화제, 그만큼 애착이 가는, 소중한 마음들이 모인 행사구나.’ 싶었다. 폐막 선언 뒤, 마지막 영화가 시작되었다.

출처_ 네이버 영화 "탐욕의 제국"


 <탐욕의 제국>은 ‘삼성반도체 공장의 숨겨진 진실을 다룬 영화이다. 핸드폰, 자동차, 노트북…, “삼성” 하면 떠오르는 것들. 삼성증권, 삼성화재, 삼성출판사 등 삼성에는 웬만한 업종을 다 갖다 붙일 수 있다. 그렇게 큰 조직이면서도 노조 하나 없었고, 내부고발자가 극히 드문 곳. 영화에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사람’이 아니라 기계, 혹은 기계조차도 되지 못하고 그 안의 부품과 같이 취급됐던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고, 걷지 못하게 되고, 말을 할 수 없게 되고, 생명을 잃기까지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그건 너희의 탓’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황상기씨는 딸을 잃었다. 그는 딸이 입사하기 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면 병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땐 귀담아듣지 않았다. 자신의 일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우려보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이라는 삼성에 취직한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은 백혈병을 얻었다. 그리고 끝내 죽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윤정 씨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의 시신을 실은 차가 삼성 본사 앞을 지나가려 하자 삼성은 도로를 막았다.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는 삼성에서 고용한 변호사들이 나와 변론을 했다. 근로자의 편에 서야 할 ‘근로’복지공단은 삼성과 한 편이었다. 그야말로 ‘삼성공화국’의 모습이 스크린에 담겨있었다.

 사람들은 운전할 수 있던 나를 잃고, 말을 똑 부러지게 하던 나를 잃고, 걷고 뛰줄 알던 아내를 잃고, 엘리베이터에서부터 휘파람을 불며 집에 들어서던 남편을 잃고, 평범하던 삶을 잃었다. 처음에는 운치 있게 느껴지던 빗소리가 나는 무서워졌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 비를 따라 어디론가 가만히 떠밀려가고 있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걷지 못하게 된 혜경 씨가 삼성 건물 앞에서 이건희 회장을 향해 “마이크 소리 안 들려?”라고 소리친다. 나는 그때야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출처_ 네이버 영화 "탐욕의 제국"


  이전에는 ‘삼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이 주제를 피하고만 싶었다. <또 하나의 약속>이나 <탐욕의 제국>이 개봉했을 때 관심 있게 알아보고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창피했고, 그 마음에 점점 더 외면하게 됐다. 그러나 내 일이 아니라고, 부끄럽다고 외면하면 부끄러운 일은 점점 많아지고, 우리는 점점 더 부끄러운 사회가 된다. 이번 서울인권영화제 캐치프레이즈인 “나 여기 있어요”는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바로 나, 그리고 우리에게 하는 말이다. 더는 외면하지 말자. 그들은 있다, 그것도 여기에.





글_권준희, 최서연, 이한재, 오경민(19기 자원활동가)

사진_이한재, 오경민(19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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