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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를 위한 길 - 연극 '상처꽃' 이후의 이야기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4.06.1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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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31일, 두 달간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상연된 연극 ‘상처꽃-울릉도 1974’ 가 막을 내렸다. 문재인 씨, 이정희 씨 등의 정치인들과 함세웅 신부, 곽노현 전 교육감, 배우 권해효 씨 등 유명인들의 연이은 카메오 출연으로도 주목을 받은 이 연극은, ‘서사 치유 연극’을 표방하면서 시대의 피해자들을 치유하고자 했다.

▲ 연극 '상처꽃' 이 상연된 대학로 눈빛극장.

  울릉도 간첩단 사건은 유신 직후 벌어진 간첩단 조작 사건들의 시초였고, 뒤이은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의 비극을 시작하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연, 학연, 혈연으로 엮어 고문을 통해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이 사건은 ‘사상 최대 간첩단 일망타진’과 같이 대대적으로 홍보되었고, 당시 중앙정보부장 신직수는 “반 유신체제 운동이 일어난다면 6.25 때와 같은 일대 혼란기가 올 것”이라는 성명을 함께 발표했다. 

▲ 1974년 3월 15일 매일경제신문 1면에 실린 울릉도 간첩단 사건. 출처_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newslibrary.naver.com


  중앙정보부에 의해 구상된 울릉도 간첩단은 어부, 주부, 상인, 교수 등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유명 인사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의 인혁당, 민청학련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는 또한 오랫동안 이 사건의 재심이 이루어지지 못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10년 해산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에 의해 마지막으로 규명된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올해 2월까지 무려 40년 만에 19명의 피해자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이 사건으로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동안 옥살이를 했고, 수많은 피해자의 자식들이 방치된 뒤였고, 세 명은 이미 사형이 집행되었다. 뒤늦은 무죄 선고는 이 모든 사실을 조금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연극 상처꽃의 두 달간의 여정은 이러한 집단적인 반성과 치유의 과정이었다.

▲ 눈빛극장 건물 창에 붙어 있는 실제 사건 피해자들의 상담치유 모습.

 

  공감에서는 여러 번에 걸쳐 이 연극을 단체 관람했다.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직접 카메오로 출현하기도 했다. 연극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시작해 울음바다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특히 이 모든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연기자들이 모두 실제 사건의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관객들이 무대 위의 피해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남편, 그리고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붙들려 어린아이들만 두고 가야 하는 어머니. 함께 ‘타박네야’를 부르는 장면. “타박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 울고 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 물이 깊어서 못 간단다. 물 깊으면 헤엄치지. 산이 높아서 못 간단다. 산 높으면 기어가지.......” 그는 뒤늦게 남편의 사형 집행 소식을 듣고, 본인은 징역 10년을 받았다. 가장 가슴을 시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이 연극은 ‘타박네야’, ‘아름다운 것들’ 등의 노래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마치 뮤지컬처럼 인물들의 감정을 토로했다. 슬픔과 괴로움은 음악을 통해 표현되었으며, ‘치유연극’답게 함께 부르며 위로의 역할을 했다.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흐르게 한 이 인물의 실제 모델인 김영희 씨는 올해 2월, 4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 눈빛극장 복도에는 공감을 표하는 수많은 관람객들의 소감이 색색 메모지에 붙어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해산되었지만, 이들의 활동은 많은 부분이 미완성이다. 위원회는 활동 중에도 ‘할 일이 없어서 지난 일만 헤집는’, 혹은 ‘운동권 실직자 고용을 위한’ 위원회라는 낙인 속에 일했고, 십여 명의 위원들이 수만 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했다. 과거 사건에 문제를 발견해도 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재심 ‘권고’ 정도였다는 점도 큰 한계였다. 무엇보다 이 위원회는 애초에 4년간 활동 후 2년 연장까지만 가능하도록 입법되었다. 위원회의 설립 자체에 대한 강한 반발과 타협한 결과였기 때문에, 개운치 못한 마무리는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위원회의 활동은 불완전한 ‘조사’ 의 수준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고, 수십 년간 쌓인 상처를 6년 만에 다독이고 ‘화해’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 눈빛극장 입구에 붙어있는 '간첩 증거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의 글.

  과거사에 대한 책임과 치유는 일시적인 활동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 전후 보상재단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는 나치 패망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우리 언론은 일본의 과거사 망언이 나올 때마다 이 재단을 활발히 인용한다. 하지만 우리 자신은 과연 ‘과거사에 대한 반성’ 문제로부터 자유로운지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는 말은 상대방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울릉도 사건의 재심 무죄 선고 두 달 후, 일명 ‘유우성 간첩 증거 조작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정부의 인적 구성이나 행태가 묘하게 40년 전과 겹쳐 보이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세월호가 있었다.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반성하지 않는 인재의 반복으로 볼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듯, 우리도 독일처럼 스스로 기억하고, 책임지고, 미래를 논할 수 있을 것인가? 연극 ‘상처꽃’은 우리에게 물음을 안겨주고 막을 내렸다. 이와 같은 치유와 화해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글·사진_이한재(19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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