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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몸담을 세상 - 윤지영 변호사와 함께한 노동인권 세미나

공감이 하는 일/공익법 교육·중개

by 비회원 2014.05.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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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대학교 노동자 파업 당시 농성장에 붙은 각종 메시지들. / 출처_성미산 대책위원회 블로그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던 2010년, 학교는 봄부터 파업과 시위로 시끄러웠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대학 교정이라는 곳이 항상 무언가로 소란스러운 곳이라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이 모습이 거북스러웠다. 당시 전국의 대학가는 오랜 시간 곪아온 학내 관리·미화노동하청 문제로 인해 들끓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대학이 그러하듯,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관리·미화 노동을 하청업체에 일임하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유지한 채 주기적으로 담당 업체의 이름만 바뀌고 있었다.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용역회사의 천막 습격, 대학의 무관심, 이중 계약과 약속 파기의 씁쓸한 소식을 계속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본 적이 없었던 나의 스무 살, ‘노동문제’와의 첫 대면이었다.

 

  지난 18일, 공감 회의실에 모인 자원 활동가들과 윤지영 변호사는 한 노동자의 ‘근로계약서’를 읽어보는 것으로 세미나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등으로 몇 번 일을 한 적이 있던 나를 포함해서, 많은 활동가들이 근로계약서라는 문건을 처음 읽어보았다.

 

▲ 근로계약서를 읽고 있는 자원활동가들

 

  근로계약서의 내용은 80여만 원밖에 안 되는 포괄임금(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매월 일정액의 시간 외 근로수당을 지급하거나 기본임금에 수당을 포함해 지급하는 임금 산정 방식)도 충격이었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노동관계법령을 근거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혹은 ‘본 사업장 간의 위·수탁 계약이 종료 또는 해지되는 경우 본 계약은 자동으로 해지된다.’ 와 같은 교묘한 조항들이 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윤 변호사님에 의하면 이와 같은 계약서는 ‘특별히 나쁜’ 계약서가 아니라 하나의 표준적인 형태로 자리 잡은 계약서라고 한다. 심지어 실제 이 사건의 당사자, 계약서상의 ‘을’은, 계약된 근무시간보다 매일 2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일해야 했고, 2011년 여름 침수된 아파트 지하실에서 감전사했다. 관리회사는 채용 시에 작성한 ‘불의의 사고를 당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는 문서를 근거로 무책임을 주장했다. 세미나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자연스레 무거워졌다.

 ▲ 노동자 안전·보건에 무관심한 정부를 비판한 만평 / 출처_ 노동자 안전과 보건문제는 과보호?_민주노총 기관지 480호

  내가 대학 새내기 때 경험했던 대학교 노동자들의 파업 물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이름만 계속 바뀌는 용역회사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고, 이는 퇴직금과 임금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간접고용의 특성상 예상할 수 없는 시점에 갑자기 해고될 수도 있다. 관리나 미화 업무는 중간에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매우 긴데, 이 시간은 업무 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노조를 만들어 대항하려 했던 홍대 미화노동자들이 전원 해고되어 힘든 싸움을 해야 했던 것처럼, 이들은 노조를 만들어 대항하기도 어렵다. 정말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이들이지만, 세미나에서 사례들을 이야기할수록 이들만 최악의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수의 ‘능력도 없고 운도 없는’ 이들이 겪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평소보다 무거웠던 세미나 분위기.

  예전에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당연히 회사에서 뽑았다. 이제는 인력업체에서 회사 직원을 대신 뽑고, 인력업체에 속한 채로 회사에서 일한다. 간접적으로 고용된 근로자는 명목상의 중간 업체만 바뀌어도 쉽게 해고될 수 있고, 이에 대해 항의할 수 없다. 내 손에 들어오는 임금은 중간 단계를 거치면서 당연히 줄어든다. 노조 가입을 이유로, 혹은 출산이나 육아를 이유로 해고하더라도 단순 ‘계약 갱신 불가’로 처리할 수 있다. 간접 고용이나 기간제 고용이 아니라면 아예 ‘개인사업자’, 다르게 말해 ‘프리랜서’ 가 될지도 모른다.

 

  형식적으로만 개인사업자이고, 실제로는 근로자로 일하는 ‘특수고용’은 이미 보편적인 행태이다. 이미 배달, 용역 등에서 특수고용은 보편적인 모습이 되었고 이 영역은 더 확대되는 추세이다.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안 되는 분야, 이를테면 가스검침원들도 개인사업자에 속한다는 판결도 있었다. 이들은 회사에서 관리 감독을 받고, 사실상 근로자와 같은 환경에서 근무하더라도 법적으로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최저임금제 등 근로자로서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제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은 능력 없는, 운 없는 소수에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모두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의 모습이다.

▲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민주노총의 홍보물 / 출처_민주노총 블로그


  돈을 받지 못한 ‘개인 사업자’ 인 배달 청소년들, 불공정한 계약과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이들을 대변했던 공감의 변론들은 많은 경우 법정에서 이기지 못했다. 심지어 몇 년에 걸친 싸움 끝에 이기더라도, 기업의 불법 행위는 과태료의 사유가 될 뿐 더 이상의 강제를 받지 않았다.

 

  독일의 한 신학자는 유명한 시 <아무도 남지 않았다>에서 말했다. 나치가 공산당을, 유대인을, 노조원을, 가톨릭교도를 죽일 때 자신은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침묵했다고, 그리고 나치가 자신에게 찾아왔을 때 나서 줄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더라고. 이미 노동문제는 우리 주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당신은 관리직이어서, 공무원이어서, 학생이어서, 이 문제를 무시한다면, 이것이 당신의 방문을 두드릴 때에서야 이미 늦었음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시장에서 매매되는 물건과 다르다는 점을 모두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글_이한재(19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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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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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02 16:35
    멋진 글입니다! 사업주들이 법의 망에 걸리지 않도록 교묘히 계약서를 고안해내어, 근로자들을 인간이 아닌 소모품으로 보고 쥐어짜고 있는 이 현실을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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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02 16:44
    글 잘 읽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노동문제에 굉장히 무관심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네요...앞으로 관심있게 지켜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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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02 17:40
    한재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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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03 08:43
    진심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정말 노동의 문제는 특정한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조의 정상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귀족 노조라고 비판하고, 비정규직의 투쟁에는 무능력자의 발악이라며 무시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 꼭 필요할 것 같아요. 어제가 노동절이었는데 다들 안녕하신지요! 좋은 일들 많이 생기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