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로스쿨 실무수습 후기]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공감을 기억함 - 박석훈(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공감이 하는 일/로스쿨 실무수습

by 비회원 2014.02.28 12:08

본문

  


  실무수습 마지막 날(1월 17일) 오후. 나는 수도꼭지를 튼다. 가는 물줄기가 비밀처럼 떨어진다. 떨어지며, 흰 접시에 부딪혀 부서진다. 부서지면서도 차갑다. 벽에 걸린, 입술 같은 고무장갑 한 쌍을 벗겨 낀다. 접시에 묻은 케이크 파편을 문지른다. 크림은 검질기게 달라붙어, 대번에 지워지지 않는다. 공감과 함께 한 지난 2주도, 접시에 묻은 크림처럼 나의 몸 어딘가 물씬 엉켜 오래 살겠구나, 예감한다. 몇 분 전, 2014년 동계 실무수습생 전원이 공감 사무실 한 편에 모여 앉았다. 앉아서, 같이 누빈 시간에 대한 소감을 나눴다. 나누면서, 기념 케이크를 잘라 접시에 덜어 먹었다. 먹으면서, 웃었다. 웃으면서, 박수쳤다. 이 모든 연속동작들을 암시할 단체사진을 촬영하기에 앞서, 다들 일어나 서로의 때 묻은 자리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맡았던 것이다. 자, 모이세요! 이제 익숙하지만, 누구의 것인지 분명치 않은 목소리가 화장실로 틈입한다. 사진 찍을 시간이다. 수도꼭지를 돌려 잠근다. 잠시, 시간도 함께 돌려 실무수습 첫날(1월 6일)로 가보자.


  공감에 첫발을 내딛는 일, 나로서는 쉽지 않았다. 길을 자주 잃는 편이라, 3호선 안국역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공감 사무실은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다). 뒷좌석에 오르며 외쳤다. 공감으로 가주세요. 기사님은 대답 대신 고개를 꺄우뚱했다. 나는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미리 인쇄해온 약도를 꺼내 펼쳤다. 그럼 북촌창우극장으로 가주세요. 기사님은 이번엔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쳐다봤다. 당황했지만, 약도에서 내게도 익숙한 장소를 발견해, 댔다. 창덕궁은 아시나요? 그제야 기사님은 자신 있게 핸들을 꺾었다. 그로부터 우리는 장장 20분이 넘도록 창덕궁 언저리를 맴돌았다. 자신 있게,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거리를 걷는 남녀노소를 유형별로 붙잡아 묻고 또 물었다. 공감, 공익인권법재단, 비영리 전업 공익 변호사 모임, 좋은 일 하는 곳, 거 왜 잘 생긴 염형국 변호사 등등 연상될 법한 단어들을 번갈아 제시했다. 실패였다. 손목시계의 분침은 약속시각 10시 30분을 넘어 내달렸다. 상의 끝에 우리는 관할 파출소 문을 두드렸다. 벽에 걸린 지구대 약도를 보고서야 우리가 여태 그, 공감을 연거푸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단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실은, 너무 숨어 계신 것 아닙니까, 라고 역정을 내보고도 싶었지만, 나를 뺀 16명의 실무수습생들과 염형국 변호사께서 가을하늘 같이 공활한 표정으로 회의실 문을 박차는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달아오른 얼굴을 오른손에 든 약도와 함께 바지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싶었지만, 냉큼 의자를 구해와 앉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요는, 내가 공감에 대한 최소한도 모른 채 실무수습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공익변호사에 대한 찬양과 지향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건만, 나는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겨울방학에야 처음으로 공감에 가닿았다. 말하자면 후기랍시고

  


그 풍경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린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중략)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중략) 

햇살의 천둥번개가 치는 그 오후의 음악을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다만 마음을 다해 당신이 되고자 합니다

(후략) 


 라는 김선우의 어느 장시(長詩)처럼 써내려갈 자격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쓴다면, 기만일 게다. 실제로 공감과 맺은 다종다양한 인연으로 빛나는 실무수습생들도 있었다. 당장 공익변호사로 투입되어도 손색없을 동료들도 있었다. 따라서 공감의 표면을 겨우 2주간 도둑처럼 훔쳐 본 나의 범죄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것이어서, 쓰는 사람이 받는 형벌로서의 부담을 안게 되었노라, 왜장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후기란 것을 쓰게 되었으니, ‘대학원생의 격’에 어울리지 않게, 그저 지나간 중간시험과 다가올 기말시험에 숨 막혀 지내온 나로서는, 오로지 익숙하면서도 서글픈 방식으로 그 시간들을 가두려 한다.

 

 미리 밝히자면, 이번 실무수습 프로그램은 크게 기록검토, 세미나, 단체방문(‘월례포럼’ 포함)으로 구성되었다. 전은미 실장님과 박영아, 염형국, 장서연, 황필규 변호사께서 담당해주셨다. 17명의 실무수습생들은 서너 명씩 나뉘어 총 4개 조로 배정되었다. 각 담당변호사 곁에서 전문분야와 연계된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여기,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문 1. 

다음 중 염형국 변호사의 지도 아래 진행된 기록검토 프로그램은? 

①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108조 제7호 등 위헌확인

②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 등 위헌확인

③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본문 제3호 위헌확인

④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위헌확인


|정답|

|해설|  4가지 선택지 모두 새해 들어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사건들이다. 염형국 변호사의 지도로 검토했던 기록은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 등 위헌확인 사건’과 ‘학교운동부지도자의 신분 및 처우 개선을 위한 법적 대응방안’이었다. 특히 전자는, 우리 실무수습생이 장장 1주일에 걸쳐 다루기도 했고, 실제로 그 기간 중에 헌법재판소에 접수되어 사건번호(2014헌마22)를 부여받은 ‘핫 이슈’였다. ‘장애인 인권’이라는 큰 배의 선장으로 활약하는 염형국 변호사께서는 신문칼럼(「맘대로 사람을 가두지 마라」, 한국일보 2013년 12월 27일자)을 통해서도 이 문제의 핵심을 피력하셨으며, 오랜 기간을 두고 헌법소원을 준비해오셨다. 덕분에, 정신보건법상 강제입원제도의 문제점과 헌법소송 전반에 관한 이해를 전수받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실무수습생들은 헌법소원청구서 초안과 관련 기록을 직접 읽고 특히 적법요건의 충족 여부를 면밀히 따져보는 과제를 수행했다.

 


문 2.

다음 중 세미나 주제와 공감 변호사의 연결이 잘못된 것은?  

① 이주와 난민 - 황필규 변호사 

② 빈곤과 복지 - 박영아 변호사 

③ 성소수자 인권 - 장서연 변호사 

④ 환경 인권 - 염형국 변호사   


|정답|

|해설| 각 변호사분들께서 자신의 전문분야 가운데 특정주제에 관하여 1시간에 걸쳐 강의하시고, 30분 정도 질의응답을 갖는 방식으로, 세미나는 진행되었다. 지도변호사 별로 나뉘는 기록검토와는 달리, 세미나 시간에는 공감의 실무수습생 전원이 회의실에 모였다.


  염형국 변호사께서는 ‘장애인 인권’을 주제로, 지난 10년 간 공감이 장애인 인권을 위해 진력 해온 사업들을 소개해주셨다. 덧붙여 가라사대, “2004년 가을, 장애체험 행사에 참여한 때였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안내자의 인도에 따라 인사동 초입부터 종각 사거리까지 가서, 은행 현금인출기에서 아무 종이라도 출력해 다시 돌아오는 것이 과제였다. 온통 컴컴해진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기조차 두렵고 힘들었다. 수많은 사람과 입간판, 가게 앞에 쌓인 물건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과 불쑥불쑥 나타나는 턱이 모두 나를 위협했다. 비지땀을 흘리며 우여곡절 끝에 은행에 도착했다. 평소 5분이면 충분할 거리였지만 30분 가까이 걸렸다. 그런데 현금 인출은 고사하고 종이 한 장 뽑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들었다. 미션을 마치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몹시 지쳤다. 앞이 보이고 사지가 튼튼한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내건 위험한 일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피상적으로만 생각했던 장애인의 삶이 비로소 피부에, 그리고 가슴에 와 닿았다”(『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209쪽). 우리에게 ‘인권 감수성’을 조성하고 견지할 것을 당부하신 것이다.


  장서연 변호사의 세미나는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에 대해 우리가 가진 편견을 걷어내는 자리였다. 각종 통계와 판결을 내리훑으며 지난 세월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법률가들이 흘린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 예로,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 <친구사이?>에 대해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청소년관람불가등급결정을 내린 적이 있었다. 장 변호사께서는 그 결정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셨고, 2010년 9월 서울행정법원은 취소판결을 내렸다. 이후, 서울고등법원도 대법원도 공감(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익변호사의 활약상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는 감탄이 절로 들었다. 장 변호사께서는 “성소수자 관련 법과 정책을 더 전문적으로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법률가, 연구자, 활동가를 중심으로 연구 모임(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도 만들”(『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132쪽)어 연구의 고삐도 늦추지 않고 있다.


  박영아 변호사의 세미나(빈곤과 복지)와 황필규 변호사의 세미나(이주와 난민)는 공히 단체방문 프로그램과 연계되어 현장과 법지식의 교차로로 기능했다. 밑에서 살핀다.

 

문 3. 

다음 중 단체방문 프로그램과 관계 없는 곳은?

① 빈곤사회연대 

② 홈리스행동 

③ 청와대 

④ 노동인권회관    


|정답|

|해설| 빈곤사회연대와 홈리스행동에 대한 단체방문은, 빈곤과 복지를 전문분야로 활동하시는 박영아 변호사의 지도로 이루어졌다. 빈곤사회연대의 소개를 맡으신 김윤영 활동가께서는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수급자를 선정하는 기준의 하나인 ‘부양의무자 기준’이 갖는 문제점을 부각, 분석해주셨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로 선정되려면 본인의 소득인정액과 부양의무자의 경제수준이 일정 기준 아래에 해당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비수급빈곤 가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란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넓히는 주범이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빈곤이라는 사회현상이 어느 개인과 가족의 책임에 머물 수 없다는 점에 공감한다면,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의 필요성에 어렵잖게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 홈리스행동은 노숙인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허물고, 이들의 재활을 지원하기 위한 갖은 활동들을 진행해 온 단체였다. 다음 날 이어진 박영사 변호사의 세미나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조목조목 뜯어보는 한편, 이 법을 운용하는 일선 공무의 문제점을 톺아보는 자리를 가졌다.


  황필규 변호사께서는 세미나에 앞서 ‘내 안의 인종주의 마주하기’라는 제목의 월례포럼에 우리를 초대하셨고, 세미나 다음 날에는 노동인권회관(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 위한 모임)으로 우리를 인도하셨다. 월례포럼의 경우 공감이 주최하는 정기행사로서, 2014년 첫 달에는 김현미 연세대학교 교수께서 연사로 나섰다. 한국인이 앓는 고질적인 인종주의에 대한 경쾌하고도 따끔한 비판을 음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노동인권회관에서는 독재정권 시절부터 노동자 인권을 위해 투신해온 분들의 소사(小史)를, 그 주역의 목소리로 접할 수 있어, 짜릿했다. 요즘은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 위한 모임으로서 새 역할을 찾아 운영되고 있단다. 노동법에 대한 관심이 배가 되었다. 단체방문과 월례포럼 사이에 열린 황 변호사의 세미나에서는 국제인권활동에 임하는 법률가의 자세와 방법을 가늠할 수 있었다.




  휘뚜루마뚜루 쓰인 이 글만큼, 실은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힌 2주였다. 무엇보다 법 공부, 제대로 해야겠다는 경각심이 몸에 사무쳤다. 공감 실무수습을 통해, 교과서의 법지식이 현장의 법실무와 그리 동떨어지지 않다는 결론을 쑥스럽게 움켜쥔다. 당장 공감의 변호사님들부터가 연구모임을 꾸리고 기획 강연을 마련하며 쉼 없는 공부를 하고 계셨다. 그 둘 사이 간극이 클 것이란 핑계로, 늘 반쯤 졸린 눈길로 법전과 교재 사이를 바장인 지난날이 부끄럽다. 열심히 습득한 법률지식이 내 학점, 내 합격을 담보하는 데만 쓰이는 게 아니라, 너와 나의 공감을 확보하고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을 포장(鋪裝)하는 기술로 구사될 수도 있겠다, 는 생각까지만 뻗어갔다, 고백한다. 나는 졸업을 할 것이고 밥벌이를 할 것이다. 하면서, “우리는 다만 마음을 다해 당신이 되고자” 한다는 공감 변호사들의 웅변을, 접시에 묻어 잘 지워지지 않던 크림처럼, 한껏 찍혀 어딘가로 무한히 떠돌 단체사진처럼, 잊지 않겠다. 그리고 다음에는 늦지, 않겠다. 

 

설거지를 마친다.     

글/ 박석훈(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 공감 SNS 에서 공감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  눌러주세요~!^^ 공감의 이야기가 더 많은 분들께 전해집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