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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임신중절 규제, 현실을 불법화할 뿐

공감의 목소리/공감 젠더통신

by 비회원 2014.01.1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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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5~44세 가임기 여성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연간 인공임신중절 건수는 17만 건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여성 1,000명당 15.8건 정도의 인공임신중절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원칙적으로 범죄이며 낙태한 여성에게는 도덕적 비난이 가해지고, 의료기관에서도 인공임신중절수술은 기록을 잘 남기지 않으므로 실제 발생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인공임신중절의 대부분이 현행법에 어긋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제로 기소되어 처벌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지만, 불법이므로 낙태한 여성은 언제든 처벌받을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처벌이 강화되는 징후가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이전에는 고발되더라도 기소유예, 선고유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벌금형의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 법은 형법에서 낙태죄를 두어, 모든 낙태를 원칙적으로 처벌하 모자보건법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처벌하지 않는 예외적 사유를 규정하는 구조이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이 합법이려면 첫째, 모자보건법이 나열하고 있는 사유에 해당하여야 하고, 둘째, 임신 24주 이내여야 하며, 셋째, 임부 및 법률상·사실상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협소한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

 

인공임신중절의 허용 사유는 크게 셋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임부 또는 배우자가 우생학적, 유전학적 장애나 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이다. 과거에는 범위가 유전성 정신박약, 현저한 유전성 범죄 경향이 있는 정신장애 등등으로 모호하고 넓었으나 2009년 이후에는 출산하더라도 영아의 생존을 기대하기 어려운 몇 가지 질환으로 축소되었다. 둘째는 윤리적으로 출산을 강제하는 것이 부당한 사유로서, 강간이나 준강간으로 임신하였거나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친족 간에 임신한 때이고, 셋째는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가 해당된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인공임신중절의 대부분을 불법화하는 것은 바로 이 허용 사유의 협소함이다. 여성들이 인공임신중절을 하는 사유를 살펴보면, 임신을 원하지 않아서, 미혼이고 결혼 계획이 없어서, 양육할 만한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서, 자녀 수나 터울 조절 등 가족계획 문제로,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어서 등 대개는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을 기한에 상관없이 불법으로 하고 있다.

 

아동이 임신해도 인공임신중절은 불법

 

일반적으로 산전 검사에서 태아의 심각한 질환이 발견되었다거나 미성년자가 임신한 때에는 인공임신중절이 허용된다고 인식되나 사실과 다르다. 모자보건법의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는 1973년에 규정된 것으로, 임신 중 검사를 통하여 태아의 장애나 질환을 알아낼 수 없었던 시기에 태아의 부모에게 장애나 질환이 태아에게 유전될 가능성으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자 하였던 규정이다.

 

현행법 역시 출생 후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산전 검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부모에게 해당 사유가 없다면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산모의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법은 출산을 기대한다. 최근 초경 연령은 12세 미만으로 나타나고 있다. 11세 아동이 임신하여 인공임신중절을 하면 처벌받지는 않겠지만, 어린 나이를 이유로 한 인공임신중절수술이 합법이어서가 아니라 임부가 형사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형법은 14세 미만의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 아동으로 하여금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게 한 부모는 교사범이나 방조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게 된다.

 

불법화의 그림자

 

결국 우리 법은 낙태를 형사처벌하는 규정을 둠으로써 인공임신중절을 규제하고자 하는 태도를 취한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처벌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인공임신중절을 하고자 하는 임부는 더 위험해진다.

 

2010년 불법적인 낙태 시술을 한 병원 몇 곳이 고발된 이후 의료기관의 인공임신중절 시술은 더욱 음성화되었다. 의료기관은 수술 기록을 남기지 않고자 하였으며 현금 결제를 요구하였고 위험 부담의 명목으로 과거에 비해 턱없이 높은 수술비를 받았다. 전화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기도 어려워졌고, 합법적 사유로 수술하고자 하여도 까다로운 입증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성폭력으로 인하여 임신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성폭력의 입증은 유죄의 확정판결일 것이나, 임신이라는 상황의 특성상 판결까지 기다리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안적 입증 방법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모자보건법은 어떤 방법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다른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혼인 불가능한 친족이 태아의 생부가 맞는지를 확인할 방법,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의 의미 등은 인공임신중절 시술 의사가 독자적으로 판단하기에는 부담스럽고 불명확하기만 하다. 합법적 수술조차 의사가 회피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수술 가능한 병원을 찾고 상향된 수술 비용을 마련하며 합법 사유를 증명하는 사이 임신 주 수는 늘어나고 정신적 피해는 가중되며 수술의 위험도는 높아.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외국의 입법례들을 살펴보면 처벌을 통한 규제에서 안전한 인공임신중절로 변화하는 정책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임부를 무조건 처벌하기보다는 스스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안전한 수술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실 인공임신중절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임부의 형사처벌이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을 줄이는 것이다.

 

불법화는 인공임신중절을 음성화하고 그 결과 위험도를 높이며, 정보를 차단할 뿐 아니라 인공임신중절에 사회적 자원이 배분되는 것을 막는다. 불법이기 때문에 인공임신중절과 관련된 건강의 문제는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수술을 받은 여성들은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운 소문 수준의 지식에 기대어, 숨어서 자신의 몸을 돌본다. 부족한 지식의 결과로서 임부의 선택과 결정의 폭은 좁기만 하고, 합법적 인공임신중절에조차 보험은 적용되지 않으며, 불법이라는 이유로 건강을 회복할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은 2006년부터 출산뿐 아니라 유산 또는 사산한 근로자에게도 휴가를 부여하도록 하고 있지만, 불법적 낙태를 한 경우는 배제한다는 문구를 명시하고 있다.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불법

 

현행법이 문제적인 또 하나의 지점은 인공임신중절이 합법이기 위하여 배우자의 동의를 요한다는 것이다. 모자보건법상의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에 해당되면서 동시에 임부와 배우자가 동의하여야 비로소 낙태죄로 처벌받지 않게 된다. 배우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임신과 출산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일이고, 배우자는 인공임신중절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배우자 동의 요건이 도덕적 차원의 권한이나 책임 영역이 아니라 임부와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임부와 배우자가 모두 동의하여야 하기 때문에, 만약 임부는 인공임신중절을 원하지만 배우자는 출산을 원하는 경우, 인공임신중절은 불법이 된다.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임부는 타의에 의하여 억지로 임신을 지속하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자보건법은 배우자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되는 예외로서 배우자에게 동의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만을 두고 있고, 배우자의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 부당한 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때문에 별거 중에 남편이 아내를 찾아와 의도적으로 강간한 경우라든가, 임신의 지속이 아내의 건강에 위협이 되어 아내가 임신중절을 원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건강보다 자녀를 우선하기로 결정한 경우 등에서, 아내는 원칙적으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인지 자녀에 대한 남성의 권리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더구나 임신이 언제나 법률상·사실상의 배우자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인공임신중절 또는 출산에 대한 논의는 태아의 생모인 임부와 태아의 생부가 당사자가 된다. 그러나 생부가 언제나 배우자는 아니다. 배우자 동의 요건의 배우자라는 표현은 기혼자의 혼외 임신이나 미혼자의 임신을 매우 모호한 영역으로 남겨둔다. 그렇다고 하여 배우자가 생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유추해석하기도 어렵다. 배우자 동의 요건은 낙태죄 적용의 예외 규정으로서 사실상 형벌 법규에 해당되므로 유추해석이 금지되는 영역으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우자가 없는 미혼 여성은 임부 본인만 원하면 충분하다는 의미인가? 배우자가 아닌 남성과의 성관계로 임신한 기혼 여성은 태아와 무관한 현재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생부가 아닌데도 법률상·사실상의 배우자가 동의하여야만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 법의 취지라면, 이는 그다지 도덕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설령 백보 양보하여 형식적 배우자가 아닌 태아 생부의 동의를 요하는 취지로 해석한다더라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의사는 생부를 어떻게 확인해야 할까? 인공임신중절을 결정하기 전에 유전자 검사라도 거쳐야 하는가? 성폭력에 의한 임신인 경우, 태아의 생부이자 성폭력 범죄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성폭력 피해자인 임부는 출산하여야 하는가?

 

외국의 입법례에서도 일본을 제외하고는 배우자의 동의를 요구하는 국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미국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배우자에게 수술 전에 고지하도록 하는 조항조차 임부에게 부당한 부담을 주는 규제라고 하여 위헌으로 선언한 바 있다.

 

태아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어떤 태아는 태어날 가치가 없다거나, 생부는 태아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잠재적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마땅한 역할이지만, 현행법은 오로지 태아와 아버지를 대변하는 데 치우치고 있다. 그 태아는 누구에게 연결되어 있으며, 누구로부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가. 그래서 마침내 누구의 삶을 흔들어놓을 것인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법이 외면하는 이 질문에, 우리는 답해야 한다. 임부는 인큐베이터가 아니다. 이미 살고 있는 생명이며, 자신과 태아와 가족과, 현재와 미래를 총체적으로 고민하는 인격체다.

 

 

_김정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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