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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죄 확대와 유사강간죄 신설의 한계점-무엇이 '가장 나쁜' 성폭력일까?

공감의 목소리/공감 젠더통신

by 비회원 2013.09.1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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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 젠더통신에서는 7회에 걸쳐 2012년 11월 22일 국회에서 의결되어 2013년 6월 19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성폭력 관련 법률의 쟁점을 짚어 보려고 합니다. ■

[1회] 성폭력 범죄, 고소 없어도 처벌한다 - 친고 규정 전면 폐지,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 높아져

[2회] 성폭력 피해자 국선변호사, 활동 보장 방안부터 마련해야 - 성인 피해자에게도 지원 확대, 의견진술권 신설

[3회] 의사소통이 어려운 성폭력 피해자 지원하는 '진술조력인'제도 도입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의 구체화

 

[4회] 무엇이 ‘가장 나쁜’ 성폭력일까? 

 

강간죄 확대와 유사강간죄 신설의 한계점

 

 올해 6월부터 시행된 개정 형법의 큰 변화 중 하나는, 형법 제정 이래로 줄곧 ‘부녀’로 제한되었던 강간 피해자의 범위를 남성에게까지 확대한 것이다. 이 때문에 개정법을 소개하는 많은 글들은 ‘남성도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되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이번 법으로 바뀐 것은 비장애 성인 남성에 대한 ‘강간’을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처벌이 불가능했는가, 즉 남성이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강간이 아니라 강제추행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고, 그래서 더 낮은 법정형이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미성년자와 장애인 남성의 경우는 좀 더 이전부터 강간죄 적용이 가능했었다.



남성에 대한 강간죄 인정의 의미


 남성에게까지 확대되었다는 ‘강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법에서 강간이란 폭행, 협박으로(强) 타인을 간음하는(姦) 것이고, 간음은 성관계를 맺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 성관계는 매우 좁은 개념이다. 무수히 많은 성적 접촉 중에서도 ‘이성 성기 간 결합’이라는 특정한 행위에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개정 형법에 따라 남성에 대한 강간이 성립하려면, 여성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남성에 대하여 성기 결합 성관계를 해야 한다.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강간죄 규정은 여성의 성을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성으로 재현하고, 여성의 순결을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한 맥락에서 남성 피해자를 포괄하는 강간죄의 확대는 강간죄의 보호법익을 여성의 순결과 정조로부터 남녀 모두의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한 걸음 이동시켰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남성 피해자의 포함이 가져오는 실질적인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녀의 물리력의 차이, 생리적 특성 등을 고려할 때, 여성이 단독으로 폭행, 협박을 사용하여 남성의 저항을 억압하고 간음에 이르는 행위는 매우 드물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성폭력 가해를 하는 경우는 지위를 이용하거나 거짓으로 속이거나 상대방의 장애를 이용하 는 등 물리력의 사용이 불필요할 상황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고, 그보다도 남성에게 위협적인 성폭력은 다른 남성에 의한 가해 행위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들은 개정 형법상으로도 강간의 범주 밖에 있다.



강간과 ‘유사한’ 행위의 법정형 상향


 남성에게 강간이 의미하는 바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법은 강간 개념을 수정하지 않고 다만 피해자의 범위에 남성을 포함하였을 뿐이다. 대신 강제추행 중에서 좀 더 가벌성이 높은 일부 행위를 가려내어 법정형을 상향한 새로운 구성요건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택하였다. 바로 강간과 유사한 행위를 더 무겁게 처벌한다는 ‘유사강간죄’의 신설이다.


 유사강간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① 구강, 항문 등 신체 내부에 성기를 넣는 행위, ②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말한다. 즉 강간을 제외한 강제추행 중에서 남성 성기를 타인의 신체에 삽입하는 행위, 항문 및 여성 성기에 대한 성적 삽입 행위를 강간과 유사한 정도의 불법행위로 보고 기타 강제추행보다 더 강하게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법정형은 강제추행죄보다 강간죄에 좀 더 가까운 2년 이상의 징역이다.


 이로써 형법상 성폭력 범죄는 3단계로 세분되었다. 구성요건을 살펴보면 각 단계의 주된 구분 기준은 성기와 관련이 있는가, 신체 내 삽입 행위인가 여부이다. 이 같은 구분법은 우리 형법에서는 독특한 것이다. 


 신체 또는 자유를 침해하는 다른 범죄들은 피해자가 누구인가(영아, 직계존속 등), 침해의 정도가 어떠한가(중범죄, 치사, 치상 등), 어떤 환경에서 범행하였는가(야간, 2인 이상 합동 등) 등에 따라 구성요건과 법정형을 달리할 뿐이다. 신체의 어느 부위에 상해를 가하였는지, 어떤 방법으로 폭행하였는지는 범죄의 성립과 무관하다. 특정한 부위에 상해를 가한 것이 다른 부위에 상해를 가한 것보다 더 큰 피해를 야기하였거나 그 부위의 공격이 악의적이었다면 그와 같은 정황이 판결에서 고려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해당하는 죄가 달라지거나 다른 법정형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어떤 범죄의 법정형을 정할 때에는 범죄의 성질,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의 중요성, 행위자에게 물을 수 있는 책임의 정도, 동종 범죄의 근절을 위한 정책적 측면, 역사와 문화, 입법 당시 시대적 상황, 국민 일반의 가치관과 법감정 등을 고려하게 된다. 


 그런데 성폭력 범죄의 경우, 각 요소들이 상반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성폭력에 대한 편견이 일반인의 가치관과 문화에 녹아 있다면 이에 따라 법정형을 결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보다는 범죄의 성질과 보호법익, 책임의 차원이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며, 일반인의 가치관과 문화 등을 반영할 때에는 그 배경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이성 성기 간 결합(강간), 그 외의 성적 삽입(유사강간), 성적 삽입 외의 추행(강제추행)을 비교해보면,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성기와 삽입을 기준으로 하는 행위유형별 구분은 정당한가


 상대방을 오직 성적인 존재로 비하하고 인간적 모멸감을 주고자 여성 성기에 물건을 삽입하는 행위는,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하여 남성 성기를 여성 성기에 삽입하는 행위에 비하여 볼 때 범죄의 성질이나 책임, 보호법익의 중요성 측면에서 더 가벼운 것인가? 피해 여성의 성기에 남성의 성기가 삽입되는 것과 물건이 삽입되는 것은 보호법익에 질적인 차이가 있는가? 


 가문과 남성의 재산권으로서 여성의 정조를 보호한다는 관점에서는 그 차이가 명확하다. 다른 남성의 성기가 삽입되는 것은 여성의 순결 상실, 혈통의 순수성을 침해할 가능성을 의미하지만 물건의 삽입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침해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호법익이 피해자의 신체와 자유라면, 두 행위 사이의 질적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오히려 어렵다.


 유사강간과 기타 강제추행의 관계도 그 서열을 정당화하기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다. 유사강간은 강간을 기 준점으로 하여, 강제추행 중에서 강간과의 유사성에 따라 선별된 행위들이다. 그 결과 남성의 가해를 중심으로 하는 신체 내 성적 삽입 행위가 유사강간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선별 과정에서 유사강간에 포함되거나 포함되지 못하는 개별 행위들에 대한 평가가 충분히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타인에게 성기를 빨게 하는 행위는, 대상 성기가 남성 성기인 때에는 유사강간, 여성 성기인 때에는 강제추행으로 분류된다. ‘신체(구강) 내 삽입’이라는 차이만으로 두 행위 사이의 가벌성이 다르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강간 개념 확대 모색해야


 개정법과 같은 법 조항의 구분은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에 해당하는 행위들에 서열을 정하고, 가벌성과 피해의 정도를 일률적으로 재단하는 효과가 있다. 이성 간 성기 결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장 중대한 성범죄가 되고, 가장 큰 피해를 야기할 것으로 가정되며, 그에 비하여 신체 내 삽입이 없는 추행은 일단 경미한 범죄로 추정된다. 이는 재판부의 판결에, 일반인의 법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기준점으로서 기능한다.


 유사강간죄는, 강간에 못지않은 또는 그 이상의 피해를 가져오는 수많은 범죄가 강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볍게 처벌된다는 비판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강간과 ‘유사한’ 행위를 법조문에 일일이 구분하고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에 상응하는 형벌의 선고와 집행을 수사·재판에서 누락 없이 확보하는 것이다. 범죄와 피해의 경중은 사례에 있는 것이지, 행위의 유형에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강간과 유사강간, 강제추행의 구분과 그 기준은 재고가 필요하다. 강간 개념이 가문과 가족 내 여성의 순결을 다른 남성으로부터 보호하여야 한다는 관념에 따라 구성되었던 것이라면, 남성 피해자까지 포괄하는 개정 이후에도 여전히 그 정의를 이성 성기 간 결합행위라는 제한적인 범주 속에 묶어 두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일일 것이다.

 

 글_김정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객원연구원)

 

공감 에세이집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출간 - 박원순 시장, 신경숙 작가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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