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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한국 사회를 위한 제안_ 여름 인권법 캠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님 강연 후기

공감이 하는 일/공감 인권법 캠프

by 공감이 2013. 8. 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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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물음표를 가지고 왔지만 돌아갈 때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가지고 돌아갑니다.”

 

1박 2일의 공감 인권법 캠프를 마무리하며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또한 이 말에 상당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좋았던 만큼 아쉬움이 커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던 이틀이었지만, 많은 것들을 안고 갑니다.

 

공감이 마련한 인권법 캠프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다양했습니다. 인권 운동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부터, 인권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학생까지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중간쯤에서 인권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인권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는 가득했었습니다. 누군가처럼 인권 침해의 경험을 직접 겪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욕구의 근원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적으로는 소수이나 수적으로는 결코 소수라 할 수 없는 많은 사람을 보며 마음이 뜨거워졌던 경험을 해왔고, 스스로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하였습니다.

 

공감 캠프는 어색하기만 했던 처음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에서부터 마지막 수료식까지 매 순간이 알찼던 시간이었습니다. 강연자분들의 진심이 담겼던 강연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값진 시간이었고 또한 인상 깊었던 점은 강연자분들 모두가 하나같이 선한 미소를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캠프의 마지막 강연은 최근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인 ‘김영란 법’의 주인공이신 전 국민권익위원장 김영란님께서 해주셨습니다. 크지 않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한 카리스마는 강연자님께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하였습니다.

 
'공감과 인권은 어떻게 통하는 것일까?'

 

김영란님께서 강연의 시작을 이 질문으로 열어주셨습니다. '공감'에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오기는 하였지만, '공감'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김영란님은 공감을 'sympathy'로 볼 것인가, 'empathy'로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sympathy'와 'empathy'는 사전적으로는 둘 다 공감으로 해석되지만, 다른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sympathy(공감)'는 타인의 아픔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으로 상대와 같은 처지가 되어 그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동정'에 가깝습니다. 반면, 후자의 'empathy(공감)'는 타인의 아픔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으로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인정할 줄 아는 '공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설명을 듣고 나니, 확실히 공감이 추구하는 '공감'은 'sympathy(동정)'가 아닌 'empathy(공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원화되어가고 민주주의가 심화하여 갈수록, 절대적인 부정의는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서로 상충하는 이해와 가치들이 인권의 이름으로 빈번히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나와는 다른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대접하라'

 

위의 문구는 황금률(golden rule)로, 로마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황금률의 핵심적 메시지는 다른 사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즉 나와는 다른 사람의 '다름'을 존중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강연자님의 전체 강연을 들으니, 과거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사례가 생각났습니다. 이 사례는 김영란님이 전달해주신 전체 강연 내용과 많은 부분에서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파르타는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 체제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스파르타의 법은 제정된 이후 도시가 존재했던 천 년간 변하지 않았으며, 법의 구성도 권리와 의무가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어느 순간 잊히고 맙니다. 이는 도시의 법률과 문화가 너무나도 획일적이어서, 다양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테네라는 도시국가가 있습니다. 아테네는 어느 정도의 자유는 있었지만 언제나 팽팽한 긴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충돌과 충돌을 겪으며, 불균형에서 균형을, 대립에서 통일을 추구하며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테네는 역사 속에서 인류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문명으로 남게 됩니다.

 

다름에 따른 변화와 기존 가치의 대립은 긴장을 낳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과 발전의 기회를 주고, 때문에 다원사회 내의 관계 속에서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다르다'는 것과 '틀리다'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여러 집단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려 한다면 다원 사회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나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이상, 타인의 가치는 존중받을 대상이 된다는 인식을 명확히 가져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각 개인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명확히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찰하는 법률가는 어떤 사람?


김영란님께서는 성찰하는 법률가를, ‘실질적 평등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사람’, 그리고 ‘사회의 다원성을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찰하는 법률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공감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덧붙여, '위선적인 생각의 힘'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저 또한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은 사회를 꿈꾸면서도 어느 순간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종종 스스로를 자책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자기 모순적 생각들이 때로는 위선적으로 여겨질 수는 있지만, 계속해서 그러한 방향으로 생각하다 보면 거기에 맞춘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때 자책하기도 했었던 저의 생각에 많은 위로가 되었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상생의 길을 가려는 의지, 다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글_이주현(캠프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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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26 09:06 신고
    " 김영란님께서는 성찰하는 법률가를, ‘실질적 평등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사람’, 그리고 ‘사회의 다원성을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

    평등의 확장과 사회 다원성의 유지, 중요한 시사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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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1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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