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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 공변일기 2 - 차혜령 변호사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변

by 비회원 2013.04.1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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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뉴스레터에 <‘초짜’ 공변일기>를 쓴 지 어언 5년이다. ‘공변일기는 계속될 것이다. ‘초짜’ 공변이 진정한 공변으로 거듭날 때까지.’로 맺은 그 글을 쓰면서 생각했던 진정한 공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 곁눈질을 하고 종종 딴 생각을 하고 자주 헤매는 나는.

 

오늘은 ‘홈리스행동’으로 파견 가는 날이다. 4월에 흩뿌리는 이것은 봄비인가, 눈발인가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창덕궁 앞의 돈화문로를 따라 지하철 1호선을 탈 수 있는 종로3가역으로 간다. 도중에 간단히 요기하고 1호선을 타면, 종로3가를 출발한 전철이 지하 서울역을 지나면서 지상으로 나간다. 전력 공급방식이 바뀐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면서 실내등이 잠깐 꺼졌다 켜졌다. 북촌의 공감에서 용산의 홈리스행동으로 공간 이동. 

 

남영역에서 내려 원효로 방향의 큰 길을 걷다 보면 용산경찰서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국민행복시대 구현을 위한 4대 사회악 척결 - 학교폭력, 성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이라고 커다랗게 씌어 있는 펼침막이 걸린 용산경찰서, 그 옆 골목 동네 한쪽의 낡은 주택에 ‘아랫마을’이 있다. ‘아랫마을’은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빈곤사회연대,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이윤보다 인간을, 홈리스행동의 여섯 개 사회단체와 반빈곤운동단체가 함께 일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곳은 홈리스들이 모여서 함께 배우는 야학이 열리고 끼니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두 짝으로 된 이 집의 파란 대문 한 짝은 항상 활짝 열려 있다.

 

3월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의 법률상담을 맡고 있다. 30분 또는 1시간 간격으로 상담이 이루어지고 대부분 미리 약속하고 오셔서 기다리신다. 아가씨도 있고,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도 오신다. 거리와 쪽방, 고시원, 여인숙, 쉼터를 오가는 이분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보잘것없다는 생각과 이것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번갈아 하게 된다. 열에 아홉은 명의도용 피해 때문에 상담하러 오신다. 돈이나 자산, 노동력, 학력, 인맥과 같이 자본의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 무엇도 갖지 못한 이분들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그 사실을 국가가 확인해 준 공적 기록을 유일한 자본으로 삼아 한 끼의 식사, 며칠의 잠자리와 바꾼다. 한 아저씨는 거리 노숙을 하다가 만난 사람들에게 이끌려가 장기간 반감금상태에서 집단 합숙을 하며 자기 명의를 수차례 도용당하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대출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다. 아저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 착취나 노동착취와는 또 다른 유형의 착취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 경우 홈리스 명의도용과 인신매매의 경계는 그리 선명하지 않다.

 

오늘의 상담을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이다. 아랫마을에서는 단체 활동가들이 매일 돌아가면서 밥 당번을 하고, 상담이든, 야학이든, 마실 삼아 나오는 당사자들과 점심, 저녁을 지어 먹는다. 상담한 아저씨 한 분이 끓인 쑥 된장국이 향긋하다. 여기서 먹는 밥은 이상하게 맛나서 꼭 두 그릇을 먹게 된다. 서른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먹인 밥솥이 바닥을 보일 즈음이면, 상담실이었다가 식당이었던 2층 큰방은 다시 홈리스야학 권리교실로, 지하는 홈리스행동 운영위원회 회의실로 바뀐다. 기초생활수급신청, 주거지원 연계, 건강보험체납결손처리, 의료지원과 같이 직접 당사자를 지원하는 일뿐만 아니라, 거리 노숙 현장상담(홈리스 인권지킴이), 야학, 정책 대응, 실태조사, 홈리스신문 발행, 연대활동까지, 3명의 상근활동가로 이루어진 단체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다니. 매월 열리는 운영위원회 회의 때마다 놀란다. 한편으론 운영위원이랍시고 이름을 걸고도 활동가들 최저임금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게 미안하다.   

 

회의 뒤풀이는 야학 학생들 몇몇까지 같이였는데 오늘은 함께 하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귀갓길에 올랐다. 이로써 일과 끝. ‘진정한 공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어제보다 단 한 뼘이라도 더 나은, 조금이라도 더 새로운 생각을 하고, 조금이라도 덜 헤매는 변호사, 바라는 것은 단지 그뿐이다. 

 

글 _ 차혜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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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짜' 공변일기 - 차혜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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