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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철조망을 넘어서 - 염형국 변호사와 함께한 ‘장애인권’ 세미나 후기

공감이 하는 일/공익법 교육·중개

by 비회원 2013. 3. 2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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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넌, 15년간 군만두만 먹인 누구냐 넌!”

영화 올드보이에서 누군가에게 강제로 갇혀 지낸 오달수(최민수 )의 대사다.

 

나는 시설에서 12년 동안 살았다. 그동안 미역국만 먹었다. 그래서 나는 미역국이 싫다.”

2011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염형국 변호사가 만났던 어느 장애인의 이야기다.

 

시설 - 합법적인 감옥

 

섬뜩하지 않은가? 누군가가 나를 한 곳에 가두어 놓고 밥만 주면서 평생을 살라고 한다면 나는 죽을힘을 다해 그곳에서 탈출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나도 당연하게 장애인들에게 시설이란 감옥에 들어갈 것을 권유하고 있다. 아니 강요하고 있다. 염형국 변호사는 충남에 있는 한 장애인시설의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 시설 생활자와의 면담과정에서 자기를 대신하여 아버지께 꼭 부쳐 달라며 탁자 밑으로 내민 꾸깃꾸깃한 쪽지 하나를 전해 받았다. 그 내용인즉슨 자신은 이제 술을 마시지 않고 많이 반성했으니 나가서도 사고를 치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다. 제발 이 시설에서 자기를 데리고 나가 달라는 부탁이었다고 한다.

 

중죄를 범하여 갇힌 사람들에게도 보장된 서신의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은 그곳에서 가능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설 생활자들의 노동력은 시설운영을 위해 착취당하였고 각종 후원금과 정부 지원금은 고스란히 운영자의 축재 수단으로 쓰이고 있었다. 말을 듣지 않는 생활자는 먹방 혹은 똥방 이라고 불리는 1인 감금실에 가두고 며칠씩 밥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운영자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민간 시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운영자가 개인 가족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들끼리 모든 직책을 나누어 가지고 있으니 부정부패의 사슬이 끊어질 수가 없는 구조이다.

 

다행히도 2011년 통과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에는 외부이사를 1/3 이상 선임하도록 하였고 외부감사를 도입하여 예산 전횡을 방지하였다. 또한, 장애인인권침해 전력이 있는 사람은 자격에 제한을 두었으며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에 대한 최소 서비스 기준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족벌운영 구조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장애인을 돌보기 어려운 가족과 그 장애인을 이용해서 부를 쌓을 수 있는 시설운영자 그리고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는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을 볼모로 합법적인 구금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설에서의 폭행이나 노동력 착취 등 인권침해 소지가 사라져서 투명하고 편안한 시설이 된다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시설이 좋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만 살아야 하는 현실 자체가 더 큰 인권침해다. 설병이라는 말이 있다. 오랜 기간 의존적으로 시설에서 살아온 장애인들은 자존감이 낮아지고 무기력해지며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장애인들을 시설에 보냈기 때문에 시설병에 걸렸는데 다시 그 결과 때문에 시설은 존재의 정당성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시설병은 말 그대로 치료해야 할 이다. 장애인들을 가두어 두고 시설병에 걸리게 한 우리 사회의 배제적 시선과 장애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문제다. 일례로 시각장애여성을 위험하다는 이유로 목욕탕 출입을 금지한 사건이 있었다. 안전을 이유로 1, 2심에서 모두 기각이 된 사안이었는데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보호받아야 할 어린아이가 아니다. 장애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위험과 실패 가능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는 존재이다. 그게 바로 인간 삶의 모습이다.

 

정신병원 - 사적 감금의 위험성

 

시설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곳이 정신병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과 의사의 진단과 가족의 동의만 있으면 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담당의사의 허락이 있기 전까지는 외부에 연락을 취할 수도 없고 가족 면회조차도 불가한 곳이 1급 정신병동이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 없어 인권침해 소지도 그만큼 더 커진다. 예전에 알던 어떤 한 학생은 몇 년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이유가 컴퓨터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부모님께서 자신을 여기에 입원시켰다고 했다. 그래서 얼마나 게임을 많이 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하루에 3~4시간 정도 했다는 말을 듣고 경악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요새 아이들이 온종일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도 부모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정신장애로 강제 입원시킬 수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또 조금 뚱뚱했던 한 여자아이는 폭식을 이유로 강제 입원이 되었고 살을 일정 kg 빼면 퇴원을 해준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지만, 그 양에 조금 도달하지 못하자 퇴원이 거부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일에 상처받은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피웠다는 이유로 온몸이 포박되고 입에 재갈을 물린 채 독방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속상함을 표현한 것은 정신장애가 더욱 심해진 것으로 진단되고 입원 기간은 계속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인권 침해적인 치료(?)가 폐쇄적인 공간에서 자행되는 문제점과 의사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그 기간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위험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서 정신병원 안에서 자살을 시도 하였는데 그렇게라도 해야 병원 측에서 가족들에게 연락할 것이고 그러면 놀라서 달려온 가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얼마나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었으면 그런 일을 시도했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너무 아팠었다.

 

이처럼 멀쩡한 사람을 얼마든지 악의적으로 사적 감금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법규범은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범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사인들의 계약만으로 강제적 구금이 가능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염형국 변호사의 말대로 입원단계부터 제3기관(예컨대 법원)의 개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사람은 정신장애 치료를 이유로 병원에서 평생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정신장애에 대한 정신병원 치료의 효과에 대한 의문도 든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강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치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유아적인 행동 특성을 위험하다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정신장애인도 당연한 인권의 주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 같다. 정신장애인 인권이 장애인 중에서 가장 열약한 이유는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신과 의사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냥 판단만 할 뿐이다. 우리가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고 말을 어눌하게 한다고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정신장애인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봐 주는 것은 어떨까?

 

易地思之

 

얼마 전에 염형국 변호사는 재판과정에서 판사가 정신장애인을 앞에 두고도 무식하면 아예 법률행위를 하지 말았어야지.”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셨다. 또한, 지하철 안에 장애인 전용 화장실 남/여 구분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소송에서는 판사가 예산상의 문제만 들먹이면서 서울 메트로측의 항변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정말 국가의 녹을 받으면서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왜 예산 타령을 하는지 황당하기 그지없고,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판사라는 사람이 당사자 앞에서 그런 인권 침해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었다는 사실에 내가 더 부끄러웠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왜 사회에 나와서 불편하게 하는가?’라는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은 비단 그 판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교육지원법, 이동편의증진법 등 법이 잘 갖추어져 있어도 사회적 인식이 그에 따라주지 않으면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는데 당시 거의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였었다. 하루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승차했는데 기사는 아예 운전석에서 나와서 장애인전용 좌석에 휠체어를 고정해 주고 안전이 확인되자 자리로 돌아가 다시 운행을 시작하였다.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다른 어떤 승객도 불편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 자연스러움을 혼자 놀라서 바라보는 내가 그들 눈에는 이상했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학부시절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장애복지론 수업 중에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하여 서울시의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몸소 휠체어를 타고 한 장소에서 학교까지 이동을 해보고 걸린 시간과 버스, 지하철, 건물의 장애인 편의시설 유/무를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4년 전임을 고려해도 당시 저상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힘들게 탄 버스에서도 왜 짜증 나게 바쁜 시간에 돌아다니냐?’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지하철의 휠체어리프트는 작은 세미나에서의 표현처럼 정말 목숨을 걸고 타야 할 만큼 위험했다. 또한, 정신장애인과 같은 동네에 사는 게 위험하다며 그 가족을 아파트 단지에서 몰아내는 단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이웃이다. 이게 OECD 가입국으로 세계 선진국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처럼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권리들을 장애인들은 매우 힘들게 투쟁을 해서 얻어내고 있다. 내 일이 아니고 남의 일로 생각하고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배제하고 있지만 실제로 후천성 장애가 모든 장애원인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도 언젠가는 나이를 먹고 신체가 불편해질 것이며 불의의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장애인체육회에서 휠체어 농구팀과 같이 농구를 한 적이 있었다. 팀원 중에 또래 친구가 있었는데 1년 전까지만 해도 자기가 휠체어를 타게 될지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비록 사고를 당했지만 자기도 똑같이 예전처럼 다양한 욕구가 있고,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친구의 물음에 함께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연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인 것 같다. 혼자서 행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애인, 이웃 등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역지사지의 자세로 장애인들의 입장을 이해하여 우리가 쳐놓은 시설 혹은 편견의 철조망을 넘어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글_이준석(17기 자원활동가)


공감 에세이집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출간 - 박원순 시장, 신경숙 작가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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