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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1호] 성폭력 범죄, 고소 없어도 처벌한다 - 친고 규정 전면 폐지,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 높아져

공감의 목소리/공감 젠더통신

by 뚱깡이 2013.03.1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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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7회에 걸쳐 2012년 11월 22일 국회에서 의결되어 2013년 6월 19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성폭력 관련 법률의 쟁점을 짚어 보려고 합니다. 첫 회에서는 성폭력 범죄의 신고와 형사처벌을 막았던 주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 친고죄 조항 전면 폐지의 의미와 폐지 이후의 과제를 살펴 봅니다.  ■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다고 하는 ‘친고죄’는, 피해가 경미하거나 피해자의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범죄에 적용된다. 성폭력 범죄는 후자의 이유로 오랫동안 친고죄로 남아 있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이 침해될 위험이 있으므로, 피해자가 이를 감수하고 직접 처벌을 구하는 경우에만 형사절차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소시효가 남아 있더라도 성폭력 피해자가 1년 내에 고소를 하지 않으면 수사가 개시될 수 없다. 고소를 했더라도 1심 판결 선고 전까지 고소를 취소하면 수사·재판은 중단되고 불기소처분 또는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지게 된다. 현행법상 친고죄에 해당하는 성폭력 범죄는 비장애성인에 대한 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준강제추행 및 각 범죄의 미수범, 미성년자등간음, 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간음·추행, 13세 미만 간음·추행,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통신매체 이용 음란죄이다.

 

고소가 기소의 요건이 되므로, 친고죄 여부에 따라 기소율에는 큰 차이가 있다. 2011년 기준 전체 범죄의 기소율은 43.3%이다. 형법상 성폭력 범죄를 친고 여부에 따라 비교해보면, 고소를 요하지 않는 강간․강제추행상해죄의 기소율은 78.4%, 강간․강제추행치상죄는 51.3%인 반면 친고죄인 강간, 준강간죄의 기소율은 14.8%에 그친다. 피해자가 고소를 하지 않거나 수사 도중 고소를 취소함으로써 불기소된 사례가 많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2012 검찰연감> 참조

 

 

고소를 요구한다는 것은 얼핏 보면 피해자의 의사를 매우 존중하는 태도인 것 같다. 하지만 가해자 처벌의 ‘칼자루’를 쥐게 된 피해자는 친고죄의 목적대로 사생활 보호와 처벌 사이에서만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다양하다.

 

고소하지 않는 이유, 사생활 보호만은 아니다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가족들에게 비난당할까봐’ 신고하지 않았다는 답변은 각각 15.0%, 13.3% 수준에 불과하다. 성폭력 피해 공개의 두려움 외에도 ‘범인이 아는 사람이기 때문’(18.3%),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16.7%), ‘증거가 없어서’(13.3%), ‘보복이 두려워서’(10.0%) 등의 이유로 피해자들은 경찰 신고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생활의 비밀 유지보다도 형사절차에 대한 불신과 정보 부족, 고소의 부담감, 보복이나 비난의 우려 등이 더 큰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 <2010년 성폭력 실태조사> 참조
                          * 성폭력상담소 및 피해자 보호시설을 이용 중인 피해 여성 대상 설문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일지를 분석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볼 수 있다. 피해 사실 공개 우려 외에도 피해 후의 심리적 불안, 가해자로부터 보복이나 역고소를 당할 우려, 가해자에 대한 연민, 자책감, 조사에 대한 두려움, 증거 부족, 직장생활의 불이익이나 조직 내 2차 피해 우려 등의 사유로 성폭력 피해자들은 고소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성폭력 범죄를 친고죄로 둔 이유는 피해자의 사생활 보호이지만, 실제로 피해자들이 고소를 지연하고 포기하는 맥락은 사생활 비밀 유지에만 있지 않다. 그 결과 가해자는 처벌 면제의 혜택을 받는다.

 

‘결정권’을 가진 피해자는 바로 그 ‘결정권’ 때문에 가중된 부담에 짓눌린다. ‘전도가 유망한 청년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비난은 ‘네가 유혹했지’와 더불어 성폭력 피해자에게 널리 사용되는 표현이다. 고소를 함으로써 피해와 가해는 역전된다. 피해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고소를 해서, ‘남자의 실수 또는 오해’를 기어이 처벌해야겠다고 기를 쓰는 ‘억센 여자’, 더 나아가서 합의금을 노리는 의도적인 ‘꽃뱀’으로 이미지화된다.

 

돈과 처벌의 교환

 

친고 규정 때문에 성폭력 범죄에 대한 ‘형사합의’는 형사절차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현상인데, 범행의 처벌과 범죄 피해의 배상은 본래 별개의 사항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다른 부담 없이 정당한 피해 배상을 받을 수 있으려면, 피해 배상이 처벌과 연동되지 않는 공식적 절차여야 한다.

 

배상과 처벌 간의 상관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거래의 일종으로 변질되기 쉽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공식적 ‘합의’가 사실상 성폭력 피해에 대한 공식적 배상 절차를 대신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합의금과 고소 취소가 교환되고, 가해자는 돈으로써 처벌 면제를 구매할 수 있다. 그만큼 피해 배상을 확보할 국가의 부담도 줄어든다.

 

합의가 가해자에게 주는 이득은, 무리한 합의 시도를 야기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하여 사죄인지 협박인지 비난인지 알 수 없는 접근을 집요하게 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이에 대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은 없다. 수사기관은 수사기관대로, 한참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 합의종결된 전례들로 인해 친고죄에 해당하는 범죄 수사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는 수사․재판기관이 합의와 고소 취하를 권하는 경우도 있다.

 

친고죄의 수혜자는 누구?

 

가해자 처벌 여부를 피해자의 의사에 맡긴다는 것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국가형벌권을 발동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성범죄는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국가가 반드시 처벌하여야 하는 정도의 범죄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를 의심하고 그 피해를 경미하게 이해하는 태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피해자의 사생활 침해를 방지한다고 하는 친고 규정은 피해자에게는 도리어 약점으로 작용하였고 가해자는 이를 이용하여 처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친고 규정 폐지 요구가 지속되었으며, 특별법상의 성폭력 범죄를 중심으로 일부 규정이 비친고죄로 전환되었다. 19세 미만 피해자에 대해서는 친고죄 대신 반의사불벌죄의 예외를 두기도 하였다. 반의사불벌이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히면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으로서, 고소가 없어도 기소를 유지할 수는 있다는 점에서 친고죄와 구별된다.

 

성폭력 범죄 관련 친고 규정 전면 폐지

 

그러다가 지난 2012년 11월 개정을 통하여, 성폭력 범죄 관련 친고 규정이 전면 삭제되었다. 형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남아 있던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 규정이 폐지되었고 이와 더불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반의사불벌 규정도 삭제되었다. 성폭력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거나 고소를 취소하더라도, 명시적으로 처벌 반대 의사를 밝혀도 기소와 유죄판결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친고 규정의 폐지로 인하여,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거나 고소 기간을 넘겨 처벌이 불가능해지는 문제, 피해자가 가해자 측의 접근에 시달려야 하는 문제 등은 사라지거나 상당히 완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한편으로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수사, 재판이 진행될 가능성이 열리게 됨으로써 피해자 보호와 권리 확보의 필요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친고죄 폐지 논의 당시에 피해자 보호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친고죄 대신 반의사불벌죄로의 전환이 논의되었던 바 있다. 그러나 반의사불벌 또한 가해자 처벌의 부담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명하도록 하기 위해 가해자가 접근할 가능성을 남기게 된다. 따라서 반의사불벌죄의 도입은 적절한 대안은 아니다.

 

친고 규정 폐지로 피해자 보호 필요성 더욱 높아져

 

형사절차를 통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대안을 몇 가지만 꼽아 보자면, 신원정보 보호와 수사·재판 절차에서의 피해자 보호 강화, 피해배상의 공식적 절차 활성화, 피해자의 처벌 의사를 양형에 반영하는 양형 기준의 재검토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형사절차에서 피해자의 신원정보 보호가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형사절차를 진행하더라도 피해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굳이 피해자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국가형벌권을 포기하여야 할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원정보 보호 강화는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전과 달리 피해 진술을 원하지 않는 피해자도 조사 및 심리에 협조하여야 하므로, 신원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인쇄물이나 언론에의 유출을 금하는 수준을 넘어서, 공소장 및 판결문 등의 피해자 익명화 조치, 공판시 피해자 가명 사용, 가해자의 공탁 시 피해자 신원정보 관리 기준 마련 등의 장치가 요청된다.

 

이번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은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을 준용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였다. 이에 따라 경찰·검찰은 수사시 조서 등의 서류에 성폭력 범죄 피해자 인적 사항을 생략할 수 있다. 피해자가 인적 사항 기재 생략을 신청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해당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법원은 증인신문의 전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적 사항이 비공개되도록 하여야 한다. 다른 범죄와 달리 성폭력 범죄 피해자에 대해서는 보복 우려를 요하지 않는다는 점은 큰 변화다. 새로 도입된 신원정보 보호 규정의 활성화를 기대한다.

 

둘째, 수사·재판 과정에서의 2차 피해 방지 또한 강화되어야 한다. 형사절차에서 성폭력 피해의 진술은 피해자의 ‘권리’로서, 범죄 피해를 공적으로 인정받고 피해를 회복하는 긍정적 과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에 따라서는 기억의 회상과 진술 자체가 성폭력에 뒤이은 또 다른 피해가 될 가능성도 고려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진술 횟수의 최소화, 인적 지원 강화를 비롯하여 부당한 신문 내용 통제, 성적 이력의 증거 사용 배제 방안 등이 좀 더 논의될 필요가 있다.

 

셋째, 범죄 피해의 확인과 동시에 피해 배상을 확보할 수 있는 공식적 절차를 활성화하여야 한다. 친고 조항은 가해자의 합의 시도를 통한 2차 피해 야기라는 역기능을 갖고 있었다. 반면 피해자로서는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피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는 순기능 또한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합의의 역할이 약화될수록 피해 배상을 위해서는 공식적 절차를 이용할 필요성이 커진다. 형사절차와 별도로 진행하여야 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의 비용과 시간, 입증상의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현재는 거의 이용되지 않는 배상명령제도의 적극 활용이 요청된다.

 

넷째, 양형기준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여전히 피해자의 처벌불원은 성폭력 범죄의 형량을 줄이는 요소이다. 피해자로부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이끌어낼 필요가 가해자에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피해자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가해자가 합의 시도 중 피해자에게 피해를 발생시킨 때에는 형량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피해가 ‘예방’되지는 않는다. 또한 피해자가 가해자의 접근으로 인한 피해를 적극적으로 법원에 알리지 않으면, 법원이 이를 양형에 반영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친고 규정이 삭제된 시점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양형에 반영하는 것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하여야 한다. 또한 법원에서도 합의 시도 중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여부를 능동적으로 조사함으로써 양형에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글_김정혜(공감 객원연구원)

 

공감 에세이집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출간 - 박원순 시장, 신경숙 작가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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