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준비1호] 무엇을 위한 '인신매매죄' 신설인가

공감의 목소리/공감 젠더통신

by 뚱깡이 2013.03.15 21:49

본문

 

2013년 3월 5일, 정부가 제출한 형법 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어 인신매매죄가 신설되었다(현재 공포 전, 공포일로부터 시행). 도입된 인신매매죄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형법 제31장 ‘약취, 유인, 인신매매의 죄’ 주요 내용>

범죄구성요건

법정형

약취․유인

미성년자 약취 유인

287조

10년 이하 징역

‘추행, 간음, 결혼, 영리 목적’

사람 약취 유인

288조 1항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

‘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적 착취, 장기적출 목적’

사람 약취․유인

288조 2항

2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국외 이송 목적 사람 약취․유인

약취․유인된 사람 국외 이송

288조 3항

2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인신매매

사람 매매

289조 1항

7년 이하 징역

‘추행, 간음, 결혼 또는 영리 목적’ 사람 매매

289조 2항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

‘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적 착취, 장기적출 목적’

사람 매매

289조 3항

2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국외 이송 목적 사람 매매 /

매매된 사람 국외 이송

289조 4항

2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상해/치상

약취․유인․매매․이송된 사람

상해/ 치상

290조

3년 이상 25년 이하 징역/

2년 이상 20년 이하 징역

살인/치사

약취․유인․매매․이송된 사람

살인 / 치사

291조

사형, 무기, 7년 이상 징역/

5년 이상 징역

기타

약취․유인․매매․이송된 사람

수수, 은닉, 모집, 운송, 전달

292조

7년 이하 징역

※ 빨강 표시는 구성요건 신설 범죄

 

법무부는 지난 2000년 한국 정부가 서명한 유엔 조직범죄방지협약 및 인신매매방지의정서를 비준하기 위한 입법 조치라고 밝혔다. 인신매매방지의정서란 ‘국제조직범죄방지협약을 보충하는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의 매매 예방 및 억제를 위한 의정서’를 약칭한 것이다. 이 의정서는 인신매매를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이나 폭력 또는 다른 형태의 강압, 유괴, 사기, 기만, 권력 남용 또는 당사자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하거나, 기타 타인의 통제력을 가진 사람의 동의를 얻기 금전적 보상이나 이익을 수수하는 수단에 의해 사람을 모집, 이동, 은닉, 또는 인계받는 행위를 뜻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과연 개정 형법이 인신매매방지의정서를 국내에서 이행하기 위한 입법으로 충분한지 살펴보자.

 

착취 목적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인신매매방지의정서상 인신매매는 ‘착취 목적’으로 행해져야 성립한다. 개정 형법에 도입된 인신매매죄는 ‘추행, 간음, 결혼, 영리 목적’(288조 1항), ‘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적 착취, 장기적출 목적’(288조 2항) 또는 ‘국외이송 목적’(288조 3항)으로 목적을 특정하고 있다. 범죄구성요건으로 목적이 특정된 이상 인신매매 범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목적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의 내심의 의사인 목적을 입증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상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죄’가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 처벌된 사례를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수사와 재판 실무상으로는 성매매의 ‘결과’가 발생해서 이를 수사․입증했을 때 비로소 인신매매 행위 당시에 성매매 ‘목적’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적어도 현재는 착취의 결과 발생이 인신매매죄의 구성요건이 아님에도 인신매매의 ‘목적’으로 정해진 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적 착취, 장기적출의 ‘결과’가 발생되어야 인신매매죄로 처벌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목적 입증의 어려움에 더해 보다 근본적으로는 ‘성적 착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불분명하다. 현행법상 강간, 강제추행에서 나아가 ‘의사에 반하는’ 성교행위 및 유사 성교행위가 포함되는지,「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2조 4호에서 규정하는 넓은 의미의 성매매까지 포괄되는지, 포르노그라피를 위한 사진․영상물의 촬영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성적 착취’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한 것이다. 도대체 어떠한 목적을 입증하라는 것인가. 명확하지 않은 구성요건은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한 예측을 불가능하게 해 실제 발생하는 피해사례에 적용하기도 어려우며 처벌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게 한다.

 

무엇이 사람의 ‘매매’인가

 

인신매매, 풀어보자면 사람을 매매한다는 것인데 노예제도가 인정되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어떤 행위가 이에 해당할까.

 

신설된 인신매매죄는 개정 전 형법의 ‘부녀매매죄’에서 사용했던 ‘매매’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신설된 인신매매죄의 ‘매매’의 의미는 부녀매매죄의 ‘매매’의 해석론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이전에 부녀매매죄로 처벌되었던 판례를 살펴보면 ‘부녀’에 대한 ‘매매’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인수․인계 쌍방 사이의 ‘실력적 지배 이전’과 ‘대가 지급’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즉, 법원은 부녀매매죄의 성립 여부를 ‘매매의 일방이 어떤 경위로 취득한 부녀자에 대한 실력적 지배를 대가를 받고 그 상대방에게 넘긴다고 하는 행위에 중점을 두고 판단’하여야 하고, ‘실력적 지배’ 여부는 ‘계속된 협박이나 명시적 혹은 묵시적인 폭행의 위협 등의 험악한 분위기로 인하여 보통의 부녀자라면 법질서에 보호를 호소하기를 단념할 정도의 상태에서 그 신체에 대한 인계인수가 이루어졌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도1402 전원합의체 판결).

 

이에 따라 의사 표현이 가능하고 저항할 수 있는 비장애․성인에 대한 지배력 행사를 인정받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미성년자가 비자발적으로 성매매 업소로 넘겨진 사례에서조차 법원은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성경험이 있거나 다방에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배력 행사가 인정될 수 없다고 보았다. 사실상 13세 미만의 아동이거나 장애가 있어 항거가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매매’가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부녀매매죄로 처벌된 건수가 총 30여건에 불과하다는 통계에서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은 ‘매매’ 규정의 한계를 인식해서 현행「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는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 범죄를 규정하면서 ‘지배․관리’하에 둔 것으로 간주하는 규정이 추가되었다. 선불금 등을 제공하여 대상자의 동의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의사에 반하여 이탈을 제지하거나, 여권이나 여권을 갈음하는 증명서를 채무이행 확보 등의 명목으로 제공받았다는 것만을 입증하면 타인에 대한 지배․관리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비록 수사와 재판 현실에서 이 간주 규정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는 못하지만, 개정된 형법에는 이러한 간주규정조차 보이지 않는다.

 

당사자의 취약성을 이용한 인신매매는 처벌 못하나

 

나아가 인신매매방지의정서에서는 인신매매의 수단을 ‘위협이나 폭력 또는 다른 형태의 강압, 유괴, 사기, 기만, 권력 남용 또는 당사자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하거나, 기타 타인의 통제력을 가진 사람의 동의를 얻기 금전적 보상이나 이익을 수수하는 행위’까지 포괄하고 있다. 반면 개정 형법의 인신매매죄는 별도의 수단을 명시하지 않고 행위 태양을 ‘약취’, ‘유인’, ‘매매’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약취, 유인, 매매의 구성요건 해석상 폭행, 협박, 기망, 대가 지급만이 인신매매의 수단으로 한정된다. 그 결과 개정 형법의 인신매매죄의 수단은 인신매매방지의정서의 수단과 비교했을 때 그 범위가 매우 협소하다. 이러한 협소한 인신매매 죄 규정으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복잡 미묘한 인신매매범죄, 특히 권력 남용이나 당사자의 취약성을 이용한 인신매매를 처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피해자가 동의한 인신매매는 처벌 못하나

 

별도의 규정이 없는 이상 착취 목적이나 인신의 이동에 대해서 피해자의 ‘동의’가 존재한다면 인신매매 범죄로 처벌할 수 없다. 인신매매로 언론보도 되었던 사례를 살펴보자. 2005년 중국동포 여성들을 위장 결혼시켜 입국토록 한 뒤 성매매를 강요한 혐의로 일당을 검거한 사례가 보도된 바 있다. 피해 여성들은 수개월 동안 브로커이자 업주인 한국인에게 감금, 협박을 당하면서 이발소, 마사지업소 등에서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일한 대가를 지급받기는커녕 위약금 예치 명목으로 현금을 압류당하기까지 했다. 피해자 지원을 하며 수사기관에게 업주 일당을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로 처벌할 것을 강력히 의견 개진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여성들이 위장결혼해서 불법 입국하는 것에 자발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에 인신매매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피해자가 착취 목적 또는 인신의 이동에 대해 동의했다면 범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한국이 비준하고자 하는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의 경우 ‘피해자의 동의를 불문하고 인신매매 범죄가 성립함’을 천명하고 있다. 피해자가 자신이 착취당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거나 인신의 이동을 선택하는 현대의 인신매매범죄를 처벌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이 내용은 개정 형법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무엇을 위한 형법 개정인가

 

형법은 변화하는 현실을 그때 그때 구체적으로 담아낼 수 없기에 어느 정도 일반적이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개정된 형법 내용은 현재의 인신매매 현실을 규율하기에는 모호하기 그지없다. 추상적인 선언에 그친 개정 형법은 인신매매가 문제되는 구체적인 현장에 개입할 수 없다. 그 결과 인신매매 범죄 처벌은 요원하다. 인신매매 범죄의 처벌이 담보되지 않는 한 인신매매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다. 형법 개정이 미국 국무부 인신매매보고서에서 1등급(인신매매 방지 최고 등급. 정부가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충분히 따르고 있는 국가) 평가를 유지하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 지점이다. 공감과 두레방 쉼터, 성매매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등 현장 인권 단체는 그동안 인신매매범죄의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을 위해 노력해 왔음에도, 인신매매죄가 신설된 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이유이다.

 

 

글_소라미(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