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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실무수습 후기] 가장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랑을 -송인혁(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공감이 하는 일/로스쿨 실무수습

by 비회원 2013.01.2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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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 인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역을 보다

 

인권은 흔히 기본권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리하여 법률가에게 인권실현은 기본권을 구체적인 법령으로 구현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모든 인권이 헌법의 기본권의 목록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구체적인 법령에 실정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실정화되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현실에서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번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보낸 짧은 2주 동안 우리 사회의 가려진 면면을 통해 다음의 세 가지를 볼 수 있었다. 첫째, 법과 현실의 괴리가 존재하는 곳 둘째, 정당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 곳 셋째, 존재하는 법이 작동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법률가가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위 세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영역(편의상 제도권영역이라 부르고 싶다)과 셋 중 하나의 문제에 해당하는 영역(편의상 초제도권 영역)이다. 이번 공감에서의 실무수습은, 제도권 영역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내게, 초제도권 영역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알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느 정도 성숙한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인권은 오직 의회의 민주적 의사형성을 바탕으로 어떤 주장이 실정법적 권리로 원활하게 전환되지 않는 한에서만 보충적으로 말하여질 수 있다. 입법을 통한 의회의 권리창설기능이 미치는 한, 어떤 권리를 특별히 인권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인권 개념의 체계적 차원: 이상돈, 인권법, 2006). 그러므로 인권이란 본래 개념적으로 그 체계상, 전술한 초제도권 영역에서 주로 문제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그 영역이, 공감이라는 곳에서 개척되고 있다는 것은, 그리고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경험을 넘어서 큰 감동으로 새겨졌다. 그리고 수습기간 만날 수 있었던, 이 사회의 가장 소외당하는 약자들을 위해 일하시는 수많은 분을 보면서, 법률가의 길을 선택한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성찰할 수 있었다.


 

2. 법과 현실의 괴리 - 난민인정신청자의 경제활동

 

수습기간 동안 나를 지도하신 황필규 변호사님께서 맡고 계신 난민 불인정 처분에 대한 항소 사건이 있었다. 항소 이유를 연구하던 중 우리나라의 난민보호와 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법 체계와 실태를 알게 되었다.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출입국관리법상 난민인정신청자는 새로운 체류 자격을 부여받지만, 취업 활동은 제한되며 다만 신청 후 일정 기간(6)이 지나야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 취업할 수 있다. 즉 법은 난민신청을 이유로 체류를 허용하면서도, 그 동안의 경제활동의 자유는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법의 취지는 난민신청제도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일면 타당성은 있다. 그러나 국가가 신청자에게 생계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신청자가 자발적인 취업을 통해 자력으로 경제생활을 하겠다는 것까지 막는 것은 모순이다. 이는 결국 굶주리면서 합법적인 체류를 하든지, 굶주리지 않으면서 불법체류자가 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꼴이 되고 만다.

 

이러한 법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비록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기는 하지만) 의뢰인은 불법체류자가 되어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법무부와 원심의 판단은, 의뢰인이 난민인지,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있는지를 실질적으로 판단하기도 전에, 위와 같은 불법 취업의 정황을 토대로 의뢰인을 난민제도 남용자로 바라보는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일종의 선입견이 반영되어 있었다. 법과 괴리된 현실 속에서 법의 취지가 살아나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될 위험이 그곳에 서려 있었다.

 

 

3. 정당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 곳 - 한국 대기업의 국외에서의 비인권적·환경파괴적 행위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제재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오늘날 국제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기업 경영 및 생존의 전제조건이다. 기업의 목표는 영리의 추구와 이를 주주에게 분배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영리활동을 가능하게 해 준 국가적 사회적 조건에 대한 당연한 환원의무를 내포하고 있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의무적 조치이며 동시에 기업의 생존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경영 이전 단계의 개념이다. 국제인권 분야를 담당하시는 황 변호사님은, 수습기간 동안 국외에서 국내기업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반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 한국정부가 이를 어떻게 제재, 관리할 수 있는지 (혹은 그 예방책)에 대한 리서치 과제를 내게 부여하셨다.

 

한국은 다국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명문화한, OECD 가이드라인을 수용하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지식경제부에 NPC를 설치하여 운영 중이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고 NPC도 국가의 투자정책에 한정된 범위에서 그것도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작동할 뿐인데다 시민 사회의 개입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자원외교의 중요성이 드러나면서 국외자원 특히 원유와 철강 사업을 개척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가 강해졌다. 그러면서 많은 국내 다국적 대기업들이, 자원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에 진출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현지의 환경을 파괴하거나, 현지 주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현지 정부를 방조하거나 심지어 아동 노동을 묵인하는 등의 반인권적 행위를 자행하였다. 개발 시대 노동자의 혹사와 판자촌의 강제철거 등 우리의 암울한 과거의 행태를, 이제 우리가 선진국이 되고 나서 다른 개도국에서 그대로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국외자원개발법에서, 자원 개발에 나서는 기업에 대한 특별 지원을 하고 있고 나아가 자원개발에 실패해도 융자금 상환을 면제해주는 구조까지 마련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의 정책은 자원의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위와 같은 행위에 대한 제재에는 무관심하다. 리서치 결과, 융자 원리금 상환 면제신청을 허락하지 않거나, 대외무역법에 따라 국외생산품의 국내 반입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가능함을 확인하였으나, 역시 정부의 재량에 달려 있거나 법령 해석의 문제에 귀착하게 되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그리고 나아가 이를 관리할 정부의 책임에 대하여 아무런 직접적인 법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국 정부에서도 외국 대기업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삶의 터전을 잃거나 인권을 침해받는 개도국의 힘없는 국민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4. 작동하지 않는 법 - 장애인 관련 법 제도


 

수습 기간 중 매일 오전에는 각 변호사님의 관련 분야 강의를 들을 기회가 제공되었다. 공감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었던 중요한 지식과 정보를 섭렵한 좋은 시간이었다. 이를 통해 알게 된, 존재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법 영역을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장애인(차별) 관련 법 제도들을 들 수 있다.

 

20073월 무수한 난관을 뚫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제4조에서 차별을 직접차별, 간접차별,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 형식적으로는 차별하지 않으나 장애를 제대로 배려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장애인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거나, 정당한 인적·물적 제반 조처를 하지 않는 것도 차별로 포섭하고 있는 것이다. 법은 차별의 개념을 정의하고 이를 금지하지만, 현실에서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직접적 차별은 지양하는 단계에 왔다 할지라도 간접차별 금지와 편의제공을 활성화할 만한 사회적 인식 수준의 제고는 요원한 단계이다.

 

장애인의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공선법의 정보 제공 규정도 마찬가지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방송은 의무가 아닌 재량 규정이어서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또한 수화화면이 지나치게 작고 전달되는 내용도 너무 함축적이라 제대로 된 정보전달이 되지 않는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거용 점자 책자의 발행도 법에 규정되어 있으나, 책자의 페이지 수를 제한하는 일반규정이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점이 문제이다. 점자용 책은 일반책자보다 2배 이상의 지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법은 존재하지만 사회의 현실 때문에 혹은 법률 자체의 체계적 불합리 때문에 그것이 본래 취지대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 마치며 - 가장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법과 현실이 괴리되었을 때 법률가는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가? 법의 보호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을 위해 법률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존재함에도 작동하지 않는 법을 법률가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이것은 공감이 아니라면 결코 마주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인권을 배제하고 답할 수 없는 물음들이다. 이것은 법 자체의 문제가 아니면서도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가장 높은 법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을 완전히 충족시켜 줄 해답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외된 약자들의 처지를 공감하고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 아무리 적은 수라 할지라도, 전체 사회의 차원에서는 예외적인 현상일 뿐이라도,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생 전체가 걸려 있는 것이다. 사회 성숙함의 정도는 대다수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느냐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수자라 할지라도 그 사회에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는가, 사회가 그들을 포용하고 보호해 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 사회의 격을 높이는 데 필요한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축적된 부도 아니요, 단순한 기회의 평등도 아니다. 바로 자유도 평등도 넘어서는 박애의 정신이다. 소외된 모든 자에게 박애의 빛이 내리쬐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러한 가능성이, 그러한 희망이 언제나 살아 숨 쉬는 사회를 꿈꾼다. 그리고 그 희망을 공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정부도, 가족도, 재단도, 어느 사람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도가니 속에서 절규하던 아이들, 이 사회에서 가장 소외당하는 자들, 오직 그러한 자들에게 가능성과 희망의 손을 조용히 내미는 것이 공감이기 때문이다.

 

무한 경쟁 사회의 메커니즘에 진절머리가 나는가? 인간은 동물의 본능에 따라 살아간다는 애덤 스미스의 명제가 가슴 속 어딘가를 불편하게 자극하는가? 그렇다면 공감에 참여해보라.

 

중국 당나라 시절 나뭇가지 위에 앉아서 선에 든다 하여 새 둥지라는 뜻의 조과(鳥窠)로 알려진 지도림 선사가 있었다. 당대의 유명한 지식인이었던 백거이가 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

조과 선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힘써 행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러자 백거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오

나무 위에 앉아 있던 선사가 백거이에게 말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알지 모르나 여든 된 노인도 그것을 실천하기란 어렵습니다



 

글_ 송인혁(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모집] 2014 공감 인권법 캠프 참가자 모집 (예비법전원생 및 예비사법연수생)


 공감  에세이집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출간 - 박원순 시장신경숙 작가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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