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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린 채 검과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의 형상은 고대 그리스의 여신 디케에서 연원한다. 눈이 가려진 모습은 법의 정의를 실현할 때, 사건 당사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정치적 연고 등과 무관한 객관성이 담보돼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법원 앞에도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비록 그 모습이 전통적인 서양의 그것과는 상이하지만,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하는 국민의 염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 표상은 유사하다. 하지만 눈을 가린 디케와는 달리 눈을 부릅뜨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상은 뜬 눈으로 자신의 입맛대로 공권력을 남용하기에 바빴다. 본래 법전을 올곧이 바라보라는 사법부에 대한 요구로서의 뜬 눈은 정의를 해치는 데 이용된 것이다. 국민의 낮은 사법신뢰도는 이를 방증하는데, 여기에는 판사들의 추문, 국민의 법감정과 불일치하는 판결 등이 기여했다. 그런데 그러한 경향성에 크게 불을 키운 사건이 바로 사법농단사태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침해한 이 사태의 심각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625, 사법농단 사태로 비춰본 사법개혁방안 긴급토론회를 열고, 사법농단 사태의 원인 파악과 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로보노지원센터 센터장인 염형국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가 사회를, 서울변회 회원이사인 김지연 변호사가 좌장을 맡았다. 토론회는 크게 주제 발표 부분과 토론 부분으로 나뉘어 이루어졌다. 우선 주제 발제는 서울변회 인권이사 정영훈 변호사, 법률사무소 나란의 오지원 변호사, 건국대학교 법전원 한상희 교수가 맡았다. 한편 토론의 경우 박주민 국회의원, 한양대 법전원 박찬운 교수, 경향신문 이범준 기자가 토론자로서 의견을 나누었다.

 

 

첫 번째 발제에서 정영훈 변호사는 현 사법농단 사태의 의미, 경과와 그 원인에 대해 다루었다. 농단(壟斷)이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용어가 아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두루 살핀 후 시장판을 좌지우지 한다는 의미의 농단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사태에서 국민들이 일전에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법농단이란, 간단히 말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을 가지고 놀았던사태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양승태 전 원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 모임을 축소하려는 위협과 관련하여 법원이 진상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판사사찰과 관련한 진술이 나온 것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사태의 심각성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으며 재판거래, 재판개입 의혹이라는 중대한 헌법파괴행위로까지 나아갔다. 형법상으로도 직권남용죄가 성립될 수 있는 이러한 행위는 양승태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을 도입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의 사건적체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진보적인 법조인의 대법관 진입을 막기 위한 계책이었던 것이다. 그 이유로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판사들을 사찰하여 주요 보직에서 배제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오지원변호사는 사법행정권 남용사태의 향후 전망과 권리구제방법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서는 직권남용죄가 충분히 성립될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는 대법원의 이전 판결에 있는데,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지만,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에도 직권남용으로 인정한판례가 존재한다. 한편 발제 중 나온 전망과 관련된 쟁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로 검찰 수사가 바람직하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검찰과 법원의 관계를 고려할 때도 그러하며,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검찰의 남용가능성도 무시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특검 추진이 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법원 재판에 대한 이슈인데, 폐쇄적인 직장 관계 탓에 중립적인 판결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건에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피고인의 신청을 요하므로 신청과 무관하게 진행 가능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구제에 관한 재심청구권 문제가 존재한다. 현행법상으로는 재판에 관여한 법관이 그 사건에 관한 직무에 죄를 범할 때만 재심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판거래의혹이 제기된 정황이 확실한 경우, 그 재심청구권을 인정하는 내용의 특별법 제정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사법개혁의 방안으로는 무엇이 이야기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한상희 교수의 사법권의 재구성에 관한 논의를 참조할 만하다. 본래 사법의 영역은 권력이 아니라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며,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의 이익에 봉사해야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법위원회라는 제도를 도입해야 마땅하다. 이는 사법행정을 법관과 국민(혹은 국민의 대표)가 공동운영하자는 방안이기에 이는 사법의 독립성과 민주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만약 개헌이 된다면 배심제나 참심제에 헌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과, 법관의 인사를 독립된 사법위원회가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만하다. 또한 한상희 교수는 과거사청산의 문법에 따라 사법농단의 책임자를 엄벌해야 마땅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내놓은 개혁안은 사법농단의 실태를 투명하게 밝히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국회의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여 국회가 직접 진실규명을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사법농단과 관련된 법관들의 징계는 대법원 차원에서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국회가 가로채어서 탄핵소추절차로 연결해야 한다.

 

 

이어서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사법농단 해법을 이야기해보았다. 앞서 언급한 국정조사의 경우 그 해결방안으로서의 한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로 논의는 시작되었다. 국회 내부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적극적인 협조가 가능할지가 미지수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법원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대법관들이 단결하여 재판거래는 없었다고 입장문을 발표한 상황에서 법원이 공정하게 영장을 발부할 것일지는 알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독립된 영장전담 법관이 임명되는 방안을 제시했다. 더불어 보다 본질적으로 재판의 진행이 국민적 신뢰를 얻는 동시에 그 진행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예 독립된 재판부를 꾸리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독립된 재판부가 기소 이후 사건 진행 또한 맡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들 재판부는 시민사회의 추천을 받아 재판부를 구성되거나 시민사회의 추천을 받은 위원회가 법원과 논의해 그 재판부를 구성할 수도 있겠다. 이는 모두 사회적 합의와 입법 조치가 전제돼야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이다.

 

 

박찬운 교수의 경우도 사법농단의 해결책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대부분의 내용은 다른 토론 발제자·토론자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었으나, 그중 급진적으로 보이는 해결책으로서 양승태 대법원의 구성원으로서 현재 재직 중인 대법관들의 일괄 사퇴를 주장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양승태 전 원장도 수사 대상이 될 것이며 이는 사법부 권위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재판거래 의혹 진위여부를 떠나 이들 대법관이 재직하는 것은 대법원의 신뢰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이다. 더불어 현 정부에서 임명된 4명의 경우, 같은 대법관이라는 동료애에 기반한 야바위식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점도 역설하였다. 재판관들이 이번 사안에 대한 독립적이고 분명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본인은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

 

 

법원공무원규칙 제69조 제1항에 적시되어있는 법관이 취임할 때의 선서문이다. 판사는 법정 내에서 권위가 가장 높은 사람이며 사법권의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해 탄핵을 당하거나 금고 이상의 형벌을 받지 않는 한 파면되지 않는다. 이렇게 기대되는 청렴함에 더불어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이 판사로 임명될 수 있는 구조 덕분인지 판사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편에 속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실시한 직업만족도' 결과에 따르면 판사는 세부 영역 중 사회적 평판(2), 직업지속성(8), 급여만족도(4), 수행직무만족도(4) 등에서 골고루 높은 순위에 오르며 종합적 직업 만족도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사법연수원 시절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로스쿨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로클럭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곧 청렴한 인품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반대로 이 말이 판사를 포함한 법관들은 전부 부도덕하다라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보다는 법원이 다른 조직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그 집단성/구조 내에서 개개인 판사가 자신의 온전한 양심에 따라 업무와 행정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신화(Myth)라는 말이다. 개인이 선의지(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싶어도, 법원의 시스템과 구조 자체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모든 법관이 이탄희 판사처럼 사표를 제출하는 결정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회심리학에서 밝혔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수많은 실험은 이러한 현상을 지지한다. 그것에 따르면 인간은 동조(conformity)와 응종(compliance)의 과정을 통해 집단의 규칙에 순응하게 될 수밖에 없게끔 프로그래밍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사실에 침묵했던, 재판거래와 관련된 의혹을 알고도 잠자코 있었던 소수 판사들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제시한 토론자와 발제자의 의견대로 그들의 과거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근원적인 관료적인 구조 자체가 변화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시스템이나 의식은 너무나 견고하여 그것이 변화되기 힘든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사법부 특유의 엘리트의식과 군대문화는 앞서 언급한 사법위원회 제도, 독립된 법관 제도 등으로 무너뜨리기에는 지나치게 견고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하이데거와 같은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말처럼, 사회의 구조는 조금씩 변한다. 비록 그것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시간과 세대가 거듭하면 할수록 변화할 수 있다. 세계 전반에 만연한 인식틀조차 그러한데, 그보다는 규모가 작은 법원 조직의 개편과 판사 개개인의 인식변화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지난 625, 3시간이 넘게 지속된 논의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도록, 위정자들과 사법부는 분골쇄신하여 개혁에 힘써야 마땅하다.

 

글_김동섭 (공감27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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