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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끄러움이 많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심히 두려워했다. 맹세컨대, 초중고 시절 수업시간에 단 한번도 내 의지로 선생님에게 질문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들어간 대학에 다니던 스무살 적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아무런 꿈도 꾸지 못한다는 비루함에 하루하루를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고시공부는 적성에 안 맞아 하기 싫고, 군대도 가기 싫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인생을 어떻게 살지 막막하여 몸은 학교에 있되, 마음은 안드로메다에 가있는 시절이었다.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대학 4년을 마치고 어쩔 수 없이 군대에 입대했다. 그런데 오랜 두려움과 절망감을 없애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군대였다. 이등병 시절엔 맘고생이 심하여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릴까도 고민해봤다. 가족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상병이 되니 조금은 적응이 되고, 맘이 편해졌다. 어떻게 하다보니 병장을 달면서 부대 내 하급병을 관리하는 선임이 되었다. 그토록 부끄럼 많고 소심한 내가 병사들을 통솔하고 지휘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여러 훈련과정을 통해 남 앞에서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졌다. 조금씩 나도 뭐든 할 수 있겠단 자신감이 생겼다.

 

군 제대를 하고 진지하게 사법시험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도서관에서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면서 아무런 근거(도 물론 실력)도 없지만, 시험에 붙을 수 있겠단 자신감이 무럭무럭 커갔다. 늘 나는 합격한다는 얘기를 혼자 되뇌고 또 그렇게 생각하였다. 돈을 절약해야해서 강의는 거의 집에서 테이프(20여년 전에는 그랬다^^; 2배속으로 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카세트가 참으로 유용했다)를 듣고, 막판에 신림동 독서실에 등록하여 공부를 하였다. 다행히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사법시험에 붙었다.

 

사법연수원 입소 후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특강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공익변호사로서의 새로운 진로를 알려주었다. 그 새로운 진로가 무척 신선하게 느껴져 흥미를 갖게 되었다. 사법연수원 수료 직전, (정말로 어~~~) 용기를 내어 박원순 변호사를 찾아가 진로 상담을 청했다. 박원순 변호사는 나와 몇마디 나누어보시더니 아름다운 재단에 일단 출근할 것을 권유했다. 나는 그 제안에 응했고, 그해 12월부터 아름다운재단에 출근을 시작하였다. 그것이 공익변호사로서의 첫걸음이었다. 생각해보면 용기를 내어 박원순 변호사를 찾아갔던 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하였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도전하여야 한다.

 

공익변호사가 되고 난 후,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전혀 딴판인 내가 되어갔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면 어쩔 줄 몰라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던 내가 이제 수십 명수백 명 앞에서도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버벅대고, 쭈뼛거렸던 내가 방송에도 나가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잘 아는 사람에게도 부탁을 하기 어려워하던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공감에 후원해달라고 뻔뻔하게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올해로 공익변호사로 일한지 15년차가 되었다. 예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을 늘 불안해하였다. 남들에게 좋은 면만 보이고 싶었고, 남들에게 인정받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15년 동안 사회생활을 해보니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내 신념을 관철하고 내가 로 온전히 서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미움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또한 타인에 대해 기대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도 일종의 집착임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집착으로 인해 타인을 힘들게 하고 나를 힘들게 할 필요는 없었다. 인생은 결국 사람과 동물 그리고 자연의 무수한 관계의 연속이다. 좋은 관계를 많이 맺으면 인생이 행복하고, 좋지 않은 관계가 많으면 불행하다. 공감 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된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이 정말 감사하다. 좋지 않은 관계에 대한 미련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는 않다.

 

지금껏 살아보니 모든 사람은 선한 면과 악한 면이 동시에 있다. 어느 일면만으로 사람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쉽게 자기를 비하하지 말고 나 자신을 아껴야 한다. 그리고 내 마음 속 솔직한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가면 좀더 인생이 평화롭다. 반대로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고 귀를 막으면 결국 불행하고 팍팍한 삶의 한복판에 자기가 서 있음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이해가 자신의 삶과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라 믿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적의 노래 말하는 대로는 내 인생에 꼭 들어맞는 가사였다. 이젠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힘들었던 나의 시절 나의 20, 그때는 정말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알지 못했다.

 

 

"주변에서 하는 수많은 이야기

그러나 정말 들어야 하는 건 내 마음 속 작은 이야기

지금 바로 내 마음속에서 말하는 대로"

 

 

_염형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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