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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30일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 <장애인복지법 제15조의 문제점과 개정 방안>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토론회의 발제는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인환 교수가 맡았으며, 토론에는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유동현 소장, 한국정신보건사회복지학회의 박재우 정책기획위원장,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이문희 사무차장,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에 신용호 과장이 참여하였다.

 

장애인 복지법 15, 무언가 부조리하다.”

 

  본격적인 발제가 시작되며 들었던 생각이다. 장애인복지법은 동법 15조를 근거로 정신장애인을 보편적인 장애인 복지전달체계에서 배제하고 있다. 바로 정신장애인은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의 약칭)의 적용을 받으므로 장애인복지법의 적용을 제한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사회복지에 들어가는 예산은 세금에서 나오고, 이는 결국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해당 조항은 언뜻 보면 합리적인제한 법안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을 알면 해당 법이 부조리하게 정신장애인을 복지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촉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이 본래 복지와는 무관한 법(구 정신보건법)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법률을 담당하는 주관부서가 장애인의 복지에 대한 마인드가 부재한 정신건강정책과라는 현실 탓에 정신장애인은 장애인이라면 마땅히 받아야 할 전달체계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신건강복지의 목적(1)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과 욕구에 맞는 복지서비스 제공이 포함되어있지만 목표의 실현은 요원해 보인다. 요컨대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 내재된 허점 탓에 정신장애인은 복지전달체계에서 소외받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 하에서 그들은 지역사회에 통합되기보다 시설에서 머물며 사회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분명 부조리하다.

 

  위에서 언급했던 해당 법 제15조의 허점을 지켜보며, 얼마 전에 접했던 책 한권이 떠올랐다. 펜실베니아대학교 교수인 레오 카츠는, 그의 저서 법은 왜 부조리한가에서 법은 왜 허점투성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말한다. 책에 따르면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형법 상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정당방위/긴급피난 요건을 꾸며내어 거짓 변론을 하는 경우, 자산보호라는 명목으로 채권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재산을 은닉하는 책략은 모두 법을 준수하고는 있으나 그 허점을 공략하여 사익을 추구하고 있는 사례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가? 책에 따르면, ‘모든 것을 감안해서 사람들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행위법률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행위사이에는 늘 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법을 제정할 때는 해당 법을 악용할 가능성을 고려하기 힘들며, 설령 입법 당시에 그 예측이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그런 사건을 접했을 때 진실에 가까운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토론회에서 직면한 문제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복지의 책임이 있는 부서들은 법에 따라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할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는 분명 허점이 있으며 부조리한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토론회에서 들었던 현 장애인복지법의 문제를 전부 감안했을 때에는(, 정신건강복지법의 내재적 문제점, 행정부서 담당의 한계점) 정신보건법 제 15조를 개정하거나 폐지하여 정신장애인의 배제를 막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동시에 제15조를 제정한 목적인 서비스의 중복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것또한 일견 타당하며 이를 사람들(행정부)에게 요구하기에 그 간극이 발생한다. 이는 아마 장애인복지법을 제정할 당시나 관련 시행령을 내릴 당시에, 정신장애인이 겪을 수 있는 현실적 문제, 주관부서의 역할 등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부족했던 과오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책에 따르면 이러한 법의 허점을 완전하게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 법이 어느 저도는 제정의 타당성을 지니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법이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기보다 박탈하는 극심한형태로 나아간다면,(, 정도가 지나치다면) 이를 근원적으로 손볼당위성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토론회 또한 그러한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해당 조문을 고치는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토론자마다의 의견이 다소 상이했다.

 

  박인환 교수는 정신보건복지법을 이유로 정신장애인을 장애인복지법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장애인복지법 15조를 폐지하기보다는 동시행령 133항을 개정하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 조항을 개정하게 된다면, 정신장애인은 중복 수혜가 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장애인복지법상 제공되는 복지서비스를 지역사회의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적 개선과 함께 정신장애인을 위한 독자적인 복지서비스 전달체계 구축이 뒷받침돼야 하는 필요성 또한 이야기했다.

 

  한편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장애인복지법 제15조 자체의 개정을 요구하였다. 그 이유는 정신건강복지법 자체가 실질적으로는 복지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한계에서 비롯된다. 정신건강복지법의 제 4장인 복지서비스 지원에 규정된 제33~38조 중의 적지 않은 수의 조항은 그것을 구체화한 하위법령이 존재하지 않거나, ‘실태조사를 할 수 있다’, ‘연구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만을 담고 있다. 언급한 내용은 전부 복지와는 큰 관계가 없는데, 변호사의 표현에 따르면 여기서의 정신장애인의 복지는 알맹이는 빠진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발생했는가? 그에 따르면, 이는 법형식의 문제보다는 해당 법을 관할하는 주관부서의 문제로부터 비롯된다. 정신건강복지법은 복지부 내에서 건강정책국 산하 정신건강정책과에서 담당하고 있는 반면, 장애인복지법의 경우 복지부 내의 장애인정책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정신건강정책과는 정신건강에 관한 정책부서일 뿐 이들이 하는 업무는 정신장애인의 복지와는 큰 관련이 없다. 이러한 현실 하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복지서비스는 장애인복지체계에서 제외 되었다. , 정신장애인은 두 법률 모두에서 제대로 된 복지서비스를 지원받기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위에서 서술한 주관부서의 한계를 종합적으로 참작할 때,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133항의 개정안으로는 정신장애인이 처한 복지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논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장애인복지법의 원칙 자체가 적용이 되어야지, ‘제한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는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별도의 법이 있지만 장애인복지법에는 특별한 적용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사실이 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에 한국정신보건사회복지학회의 박재우 정책기획위원장 역시 제15조의 폐지를 주장했다. 다만 그는 장애인복지법 개정,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정신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이 패키지로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장애인을 복지 전달체계에서 배제하는 것은 단순하게 복지서비스의 접근권의 제한을 가져올 뿐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가는 데로 나아간다. 따라서 정신장애인의 경우도 발달장애인과 같이 그들을 보호할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토론 참관자들과 토론자들의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졌는데, 이 시간을 통해 정신장애인들의 고충과 요구를 직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장애 유형 중에서도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결코 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지금껏 앉아서 열심히 들었는데, 당최 장애인복지법 15조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정신장애인의 말이었다. 정신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입법부로, 행정부로 전달되기 힘든 상황에 대한 이해와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다. 관련되어 토론회에서 들었던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이야기와 연결이 된다. “다른 장애유형 토론회와 다르게 정신장애인들은 그 목소리를 듣기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우는 아이 젖 준다.’라는 말도 있고, 독일의 저명한 법학자인 폰 예링은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고도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동시에 위정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러 찾아다녀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본질적인 아쉬움이 들었다. 장애인들은 사회적 소수자이며, 그들을 배려해야 하는 필요성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정신장애인의 경우 많은 제약 탓에 시설에 갇혀 사회와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들이 가진 장애를 이겨내어 목소리를 청와대나 국회에 들리도록 내는 것은 상당히 힘겨울 것이다. 그런 이들이 직접 세종시에 있는 보건복지부에 찾아가거나, 토론회에 참가하여 본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의견을 피력해달라는 요구는 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적지 않은 사회복지영역에서, 직접 발로 뛰며 복지대상자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웃리치를 진행하고 있지 아니한가. 정신장애인의 욕구 파악에 관련된 문제에서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돼야한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일을 잘 못하고 있다고 핀잔을 주는 것은 아니며, 관련된 인력과 재정의 확충이 현실적으로 뒤따라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토론회를 통해 개선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참관 후기를 마무리하고 싶다.

 

_ 김동섭 (공감 27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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