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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6월 월례포럼은 성별정체성의 다양성이 존중되며, 차이로 인한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로의 발걸음을 내딛고자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의 헤일러님과 법률고문 윤기쁨님의 강연으로 진행되었다. 각 개별 주체가 삶 전반에 있어 성별정체화 과정에서 직면하는 내외적 어려움에 대한 이해와 어려움을 해결해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탐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양한 방식으로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부터 사회를 조금씩 변화하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 강연으로 여러 시사점을 던져주었는데, 이제부터 그 시사점들을 살짝 풀어보고자 한다.

 

 

강연중인 윤기쁨, 헤일러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활가 )    

 

 


  한국사회에서 개별 주체들은 바이너리 즉,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도 안에 안전하게 자리잡아야만 사회로부터 인정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절대적인 진리로 상정된 성별 구도는 과연 완전할까?

 

  당연하게도 완전하지 못하다. 생물학적으로 XX와 XY를 벗어난 간성(인터섹스)의 존재는 성별이분법에서 절대 다룰 수 없다. 세계 전체인구의 1% 달하는 개별 주체들(성별이분법에 벗어나는 몸을 가진 모든 사람은 100명 중 1명, Blackless 외 5명, 2000)을 단순히 유전적 돌연변이로 치부하고 소거하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인 행태인가. 간성으로 태어난 많은 이들이 출생과 동시에 자신의 독립된 의사와는 별개로 의료진에 의하여, 부모에 의하여 성별을 선택 당한다. 무조건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범주 안에 억지로 집어넣으려는 이러한 시도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다양성을 무시하는 사회에게 존속의 양분을 제공한다. 이제 우리는 또다시 의문 할 수 밖에 없다. 왜 우리는 또다른 성별의 존재를 선택할 기회조차 없이 오로지 남성 또는 여성으로만 표기되어야 하는가?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의료적 판단에 근거하여 국가로부터 법적으로 성별을 지정 받는데, 현재 한국에서는 인간을 남성 또는 여성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를 ‘지정성별’이라고 한다. ‘지정성별’과 비교되는 개념으로 개개인 스스로가 느끼고 정체화한 성별정체감을 의미하는 ‘성별정체성’이 존재한다. ‘지정성별’과 ‘성별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을 ‘시스젠더’, 불일치 하는 사람을 ‘트렌스젠더’라고 지칭하는데, 한국사회는 너무나도 시스젠더 중심으로만 굴러가고 있어 실재하는 다양한 존재들을 지워버린다. 지정성별과 성별정체성이 불일치하는 ‘트랜스젠더’의 경우 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인 MTF(지정성별 남성이 자신의 성별을 여성으로 정체화)와 FTM(지정성별 여성이 자신의 성별을 남성으로 정체화)인 경우에 제한조건을 충족하여 성별정정을 법원으로부터 허가 받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제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수많은 트랜스젠더 주체들은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실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제도적으로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시급한 현안이 아니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제도의 힘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에 시급한 제도 개선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제도개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성별이분법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즉, 인식의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성별정체성이 무엇이고, 얼마나 다양한지, 그리고 당사자들이 어떠한 차별들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차별을 개선해 나갈 지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이 자신의 성별을 어떻게 느끼고 인식하든 그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받지 않고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멀리 있지 않다고 믿고 싶다.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로의 발돋움을 꿈꾼다. 아니 그에 따른 차별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글 _ 박상희 (공감 25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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