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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포럼 후기]장애인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_정보라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지난 4 24, 공감에서는 장애아 낙태를 주제로 “장애인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라는 제목의 포럼을 주최했다. 건강과 대안의 운영위원인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와 희망을 만드는 법의 김재왕 변호사를 패널로 초청하여 장애아 낙태 문제에 대한 여성계, 장애계의 입장을 각각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우리나라는 낙태를 원칙적으로는 금지하나 모자보건법 14조를 통해 다섯 가지의 협소한 허용 규정을 두고 있다. 포럼의 주제인 장애아 낙태와 관련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조항은 모자보건법 14 1 1호로,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를 낙태 허용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장애가 있는 부모는 “합법적”으로 낙태를 할 수 있다. 또한 조항에서는 부모가 장애를 가진 경우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최근에는 산전검사를 통해 태아의 장애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는 장애아 낙태를 가능하게 하는 규정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낙태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장애아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국가가 장애인을 차별하고 장애인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며 손상을 입은 태아의 출생을 막아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한편으로는 장애아 낙태 또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영역에 있기 때문에 여성이 선택할 문제라는 지적 또한 있다. 하지만 장애아 낙태는 어느 한 쪽의 시각에서 단편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여성 본인 뿐만이 아니라 배우자, 가족, 의사 등 제 3자의 개입으로 낙태 결정이 이뤄지는 현실, 복지 서비스, 의료 서비스 등 여러 가지 사항들이 얽혀있는 복합적인 문제다.

 

 

 

 1. 장애아 낙태 현황과 각계 입장

 

앞서 살펴본 현행 모자보건법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와 장애계 입장을 김 변호사에게 들을 수 있었다. 김 변호사는 현행 모자보건법 14조가 “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 혹은 더 나아가서 “장애를 가진 태아는 태어나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퍼뜨리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장애계에서 장애 태아 낙태에 대한 입장은 다양하다. 그러나 공통적으로는 14 1 1호에서 “우생학적”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것에 반대하고 있으며 2014 UN 장애인 권리위원회에서 장애인 권리 협약의 국가 심의 당시 해당 조항이 삭제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주장한 바 있다. 해당 조항은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 당시부터 있었으며, 세부적인 질병명을 규정한 대통령령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2009년에 바뀌었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현행 모자보건법이 과거에 비해 진보했다고 하나 기본적으로 14 1 1호와 시행령 15조가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윤 전문의에게 현재 병원에서 이뤄지는 산전 검사 및 의료 현장의 장애아 낙태 상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낙태가 불법이고 음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으나 2010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연간 약 17만건의 낙태가 이뤄지고 있다. 낙태 사유에 대한 답변으로 “태아의 건강 문제”가 전체의 15.9%를 차지했기 때문에 2 6천건 정도가 장애 태아의 낙태와 관련이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산전검사가 관례화되어 있고 일부 검사는 보험적용이 되기도 한다. 선별검사, 양수검사, 제대혈검사, DNA검사 등의 여러 종류의 최신화된 산전검사를 통해 태아의 장애나 질환을 파악할 수 있으며 시장 규모도 4,500억 정도로 크다. 윤 전문의는 현재 유전적인 질환의 가족력이 있거나 유전적 질환이 있는 아기를 출산한 적이 있는 고위험군 산모가 아니더라도 산전검사가 거의 모든 산모에게 선택 아닌 선택처럼 주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2. 장애인의 생명권 vs 여성의 자기결정권?

 

낙태가 흔히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대립으로 여겨지듯이, 장애아 낙태 문제 또한 장애인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대립되는 양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마치 장애아 낙태가 “권리의 대결”인 것처럼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패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김 변호사는 장애아 낙태가 권리의 대립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사실은 관념의 문제라고 밝혔다.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표현은 법적인 것이 아닌 관념적인 표현이며, 2011년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 반대 활동을 하면서 이러한 권리의 대결구도가 더욱더 도식화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특히 장애가 있는 태아를 출산 할지 선택할 때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복지서비스와 정보 제공 등의 사회적 주변장치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태아에게 장애가 있을 때 아이를 낳을 지 결정하는 것은 여성 혼자가 아니다. 태아가 태어나서 생존할 수 있는 경우에 여성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어디서 도움을 받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를 고려할 것인데, 현재로서는 암담할 수밲에 없다. 반면 장애아 양육을 위한 복지 서비스와 여러 긍정적인 선례들이 있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이 경우 여성은 장애 태아를 섣불리 낙태하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며 이러한 두 상황은 매우 다르다. 따라서 장애 태아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방법은 적절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지, 여성의 낙태를 무조건 막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 전문의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명의 경계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생명으로 볼 수 있는지 모호하며, 특히 연구에서는 배아의 폐기가 이뤄지는 등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담론이 허구적임을 지적했다. 또한 최근에는 개인에게 건강에 대해 책임을 묻고 “정상성”을 추구하는 건강 이데올로기가 만연하면서 건강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을 내재화한 개인이 내리는 건강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선택”이 정말 선택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산전검사가 선택이 아니라 관례화되어 있다는 점, 여성에게 중립적인 정보가 제공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기 위한 학문이라는 의학의 특성상 상담을 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인 의사와 유전학자 등이 중립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또한 경제적인 문제도 장애 태아 낙태에 일조하고 있다. 현재 태내에서 태아의 심장 수술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태아 수술이 발달되어 있으나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태아 수술을 할 수 있는 경우에도 대부분 낙태를 하는 상황이다. 아이가 태어난 경우에도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을때 드는 비용 부담 역시 크다. 현행 모자보건법이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태아 기형에서 유전학적인 원인은 약 10%에 불과하며 환경 영향 등의 다인자성 원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생리학적인 진단 검사에 치중하면서 이러한 영향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앞으로의 공존 가능성

 

마지막 순서에서는 장애인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대립을 넘어서 각 주체가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은 없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지거나 논의가 이어져야 할지 들을 수 있었다.

 

김 변호사는 장애 태아 낙태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님에도 여성 개인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지적했다. 또한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환경과의 상호작용이고 사회적 문제인 것처럼 여성의 재생산 또한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인데 개인의 문제로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맥락에서 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문의는 앞으로 낙태 여성 비범죄화, 모자보건법 14 1 1호의 “우생학”적 사유 제거와 함께 여성의 어떤 결정이라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히며 영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2008년 통계에 따르면 영국에서의 전체 낙태 약 19만건 중 태아의 장애를 이유로 행해진 낙태는 1988건으로 1%에 불과한데, 이는 한국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이다. 또한 영국 산부인과 학회 가이드라인에서는 산모가 산전검사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초음파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된다면 즉시 상담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산모가 낙태를 선택하더라도 의사는 산모의 선택을 지지해야 한다. 더불어 치명적이지 않은 태아 기형에 대해서는 신생아집중치료를 제공하며, 생존이 불가능한 치명적인 기형을 가진 태아가 출생했을 시에는 호스피스 케어를 제공하여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매우 다른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여러 질문들이 이어졌고,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청중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여성의 임신 중단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장애 태아 낙태는 나에게 생소하고 어려운 주제였다. 포럼을 함께 준비했던 자원활동가들과도 치열하게 논의하며 고민 지점을 나누면서 장애 인권과 여성 인권에 대해, 또 각각이 만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여성과 가족이 장애아 육아에 대한 정보와 안내를 제공받고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자신에게 맞는 복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김 변호사의 말을 인용한다. “장애인 차별이 없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애를 가진 것은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하다고 해서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 태아가 태어나도 불편하겠지만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 _ 정보라 (공감 25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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