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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30일, 공감 25기 자원활동가들은 염형국 변호사와 함께 공감에서 다루고 있는 혹은 다뤄졌던 장애인권 문제들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우리는 불빛이 어렴풋해 가보지 못한 곳, 애써 외면했을지 모르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우리는 먼저 정신장애인의 자리를 살피기로 했다. 처음으로 주목한 사건은 딸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한 한 여인의 사건이었다. 정신보건법 제24조는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에 의해 정신질환자를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신질환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신과 전문의와 보호의무자의 동의만 있다면 소위 말하는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적인 갈등으로 부모를 입원시킨 이 사례를 통해 정신질환자들이 위치한 사각지대를 곱씹어보게 됐다. 이 사건을 단순한 개인의 불화 문제로 국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미나 내내 사회가 그들을 궁지로 몰아가고만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해와 보살핌이 필요한 그들에게 사회의 손길은 차가웠다. 어느새 그들은 배제되어야만 하는, 격리되어야 하는 사회의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염형국 변호사 

 

  우리는 더 나아가 약자를 위한다는 것, 그들을 진정으로 배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공유했다. 선물 혹은 배려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해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곱씹었다. 결국, 우리는 그들의 입장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지 한 번 더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했던 것이다. 진정으로 그들을 위한다면 말이다. 염 변호사가 짚어준 일본의 ‘베델의 집’은 그러한 고민의 흔적을 잘 느낄 수 있는 좋은 선례였다. 재활시설인 베델의 집은 정신장애인들을 치료돼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치료 외에 대안이 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의 병명을 붙이고 ‘환청’ 등의 어려움이 다가올 때 자신을 구하는 법을 함께 고민하는 당사자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주저앉아도 아프지 않도록 조금은 더 편안한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함께 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한때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염전 노예 사건으로 발을 옮겼다. 발달 지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수년 동안 노예로 착취당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그들은 현대판 노예였다. 발달장애인들은 대개 가족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사회의 중심에서 벗어나 노숙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신매매를 알선하는 직업소개소는 그들의 처지를 이용해 접근해 그들을 염전 밭의 노동자로 떠넘기고 있었다. 염전의 일은 대표적인 중노동이라 일반 사람들도 꺼리는 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팔려간 그들이 메워내고 있었다. 오직 그들이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지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말이다. 나는 힘없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염 변호사는 그들이 끼어있는 사회의 구조를 문제점으로 꼬집어주셨다. 근본적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그들의 기본권을 지켜야 할 의무를 유기하였다는 것이다. 가장 중심에 있어야 할 존재인 사람, 그리고 인권이라는 요체가 사라져 버렸다. 또 이들을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살피고 도왔어야 하는 경찰도 이러한 상황을 방조하거나 도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불행하게도 경찰 역시 부패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누구에게 호소해야 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 역시 내가 아닌 누군가를 기대하며 방관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세미나 말미에는 장애인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을 함께 나눴다. 장애인 복지를 사회 비용의 측면에서 어떻게 충당할 수 있을지, 어떻게 소수자 문제를 법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 등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기회가 부족할수록 더욱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한다는데 중지를 모았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따사로이 살피는 일이었다. 걸음이 느릴지 몰라도 함께 가는 길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25기 공감 자원 활동가들이 작은 세미나에 함께했다.

 

 

  장애인의 인권 문제는 오래전부터 중요한 사회문제로 다뤄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고용과 서비스,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과 배제의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우리의 시선이 닿지 못했던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법이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나는 그 안에서 태양을 보고 싶어졌다. 법은 평등과 정의 아래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하는 질서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이 싹틔울 수 있도록 볕이 필요한 곳을 찾아 그곳으로 따스한 눈길을 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5행시가 떠오른다. 나비가 되어 하늘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간다는 심상이 마음을 울리는 글이다.

 

차 나비가 될

벌레는

간들의 무관심한 사이에도

지를 가지고

아가는 꿈을 꾼다.

 

 

  작은 마을의 중학생이 ‘장애인의 날’을 두운으로 삼아 지었다. 그저 마음껏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 그들의 소망은 작지만, 간절히 다가온다. 실제로 어제는 민들레 풀밭에서 나비들의 군무를 보았다. 무겁지 않은 펄럭임은 소리 없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비는 어디서 그런 춤을 배웠을까? 까닭 없는 서러움을 오랜 시간 참아냈기 때문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의 몸짓은 누군가의 영감이 되고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런 세상은 꼭 황홀했다. 그렇게 우리는 꿈꾸며 한 걸음씩 옮겨가야 한다. 모두의 날개가 펄럭일 수 있도록.

 

글 _ 방준휘 (공감 25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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