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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에서 주최한 인권 포럼 ‘세월호, 진실과 기억’에 다녀왔다. ‘세월호, 그날의 기억’ 발간과 함께 책을 만든 과정과 세월호를 기억하는 의미에 대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자리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날 패널로 함께한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안산으로 가던 중, 라디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한 구절을 듣고 숨이 멎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 어떤 진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치료할 수는 없다. 황 변호사는 진실을 더 알아보고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음을 강조하며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다 다를 것 같지만, 4.16 참사부터 지금까지 세월호 관련해서 어떤 것을 기억하는지 1분 동안 눈을 감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나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그 날, 가까워진 생일에 들떠 있었다. 뉴스에서 배가 전복되었지만,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 스쳤다. 전원 구조. 참 다행이네. 그러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것은 오보임이 밝혀졌다.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SNS 프로필 사진이 노란색 리본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내게 애도의 뜻으로 노란 리본 사진을 달아달라 제안했다. 왜 내게 애도를 강요하지? 세월호 참사는 나와 너무도 먼 이야기였다. 그런데 우연히 광화문에 들렀다가 분향소에서 꽃을 든 순간, 헌화하고 가실 건가요 라고 내게 묻는 유가족분을 처음으로 뵌 순간, 헌화하고 내가 보았던 액자 속의 선한 아이들의 수많은 눈이 나를 마주 보았던 순간, 아이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답할 수 없었던 나는 뒷걸음질 치며 마음속으로 미안해, 미안해 소리쳤다.


1분의 시간 동안 포럼 장소에는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황 변호사는 모든 권리는 진실을 알고, 상황을 알고, 문제를 알아야 개선할 수 있다고 말을 이었다. 뻔한 얘기들이지만 진실이라는 것은 발생한 사실의 온전한 형태이기 때문에 누가, 어떤 형태로 그것에 관여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는 개개인의 권리를 넘어 공동체적인 권리일 수밖에 없다. 법의 지배, 책임, 원리의 문제가 맞물린 참사에서 진실에 대한 권리를 지켜줄 의무는 국가에 있다.

 

공감, 황필규, 안산치유공간이웃, 이명수▲ 황필규 변호사와 안산 치유공간 이웃 대표 이명수

 

황 변호사는 팽목항에서 해경국장의 발언을 들었다. 그리고 틀에 박힌 답변과 거짓말들, 책임 있는 주체가 피해자의 구조나 참사에 대해 성찰을 하기보단 본인의 생존전략을 위해 발버둥치는 현장을 보았다. 순간 그는 '기억해야 한다' 라는 강렬한 생각이 당신을 꿰뚫었다고 했다. 누군가, 이 순간, 이곳에서, 이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담담한 목소리로 발언을 시작했던 황 변호사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유가족들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죽은 아이를 생각하면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점점 노골적으로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권력의 자세가 보였던 것이 아닐까. 시행령, 시행규칙으로 법률을 무력화하는 시도, 피해자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던 태도. 이미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어떻게 유가족들과 극복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더불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어서 안산 치유공간 이웃의 이명수 대표는 유가족들과 함께하며 세월호 진상규명과 치유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말씀해 주셨다. 세월호 참사를 ‘신뢰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뢰를 끊어버린 사건’이라 정의하며, 이런 참사에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로 사회 정치적 맥락에서의 접근이다.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조위를 구성하고, 투쟁하는 공권력과의 싸움이다. 둘째로 심리치유적 맥락에서의 접근이다. 동학 혁명, 4.3 제주 학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은 한 번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이를 등산에 비유해 보자. 정상 정복을 위해선 반드시 베이스캠프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등반하다 다치거나 보급품이 떨어지면 돌아와서 휴식도 취하고 다시 전진할 힘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이스캠프가 없다 보니 정상 정복에서 실패하면 거기서 끝나버린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상처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했나. 시체들이 쌓여있는데 해결할 수가 없으니까 구덩이를 파서 시멘트로 봉하고 놀이공원을 세운 것이다. 그 위에서 사람들은 솜사탕도 먹고 퍼레이드도 하고 안심하고 살았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서울대인권포럼, 세월호▲ 인권포럼 '세월호, 진실과 기억' 현장

 

4월 18일이 되면 아이들이 돌아와야 하는데 유가족들은 벌써 722일째 4월 16일을 맞고 있다. 치유를 위해서는 외부 요인이 정확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아직 바닷속에 있는데 어떻게 감히 상담을 받을 것이며 어떻게 치유를 받을 것인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세월호 인양이 치유의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명수 대표는 우리가 감히 유가족들의 아이를 잃은 슬픔, 고통, 아득함을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조금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산의 하중을 떠받치는 터널의 아치처럼 유가족들이 살 수 있도록 손잡아 주는 것이다. 그 시작은 진실의 힘을 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실의 조각들을 맞추어 주신 기록팀 발언을 들었다. 박수빈 변호사는 2014년 4월 16일 그 당시, 로스쿨 시험 기간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죄책감 속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1년이 지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떻게 대가를 치를 것인지 고민하다 책의 편집 과정에서 법정기록을 봐야 하므로 변호사로서 참여했다. 이 기록을 시작으로 채우지 못한 진실의 공간들이 덧붙여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월호,세월호그날의기록,진실의힘▲ <세월호, 그날의 기록>

 

공저자 박다영 선생님은 세월호 침몰의 과정을 모두가 뉴스로 봤지만 왜 구조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아이들을 보내야 했는지 미안함이 컸다고 했다. 가해자와 책임자 처벌을 넘어서서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고 싶어서 참여했고, 책을 편집하며 객관적인 사실을 정리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의혹과 의심 때문에 유가족들의 감정 소모가 컸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니까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떤 이들은 아픈 말들로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박다영 선생님은 해소할 수 있는 부분들을 최대한 알리고 싶다고 했다. 남은 부분들은 더 많은 고민을 통해 해결해 나가고 싶다며... 기록을 보고 난 사람들은 왜 구조하지 못했냐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 이는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수많은 주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해경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방관했지만, 역설적으로 세월호 안의 승객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도우며 살리려고 애썼다. 책을 만들기 위해 보셨던 자료는 무려 3TB. 그리고 15만 장의 재판 기록. 삼 테라바이트. 아득했다. 나라면 그 어마어마한 자료들을 보려는 용기조차 내지 못했을 것 같다.

 

공감의 4월 달력은 16일에 날짜 대신 노란 리본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이제야 노란 리본을 바로 마주하며 말한다. 절대 잊지 않을게. 가까운 미래, 아니 먼 미래에 진실을 향유하기 위한 싸움이 계속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게.

 

글_양지우(공감 23기 자원활동가)

편집_박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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