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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재난과 인권 - 재난과 일상의 차별에서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대한민국 국군 flickr


 

  “아기 돼지 세 형제가 살고 있었어요”

모두가 한 번쯤 들어봤을 동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기 돼지 세 형제가 각각 집을 지어 살고 있었는데, 형제를 잡아먹으려는 늑대의 입김으로 지푸라기집, 나무집은 날아가고 오직 벽돌집만 튼튼하게 남아 늑대로부터 지켜주었다는 이야기. 동화책마다 조금은 다르지만 집을 잃은 돼지들은 벽돌집으로 도망을 갔다던가 늑대한테 잡아먹혔다던가 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동화를 조금 비틀어보자니 어쩐지 조금 마음이 씁쓸해진다. 분명 늑대는 세 집을 모두 공격했다는데, 자신을 지켜줄 튼튼한 벽돌집 좀 없기로서니 갑자기 도망을 다니고 심지어 잡아먹히기까지 해야 하다니. 아마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동화와 달리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누구나 원한다고 벽돌집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동화에 돼지들을 노리는 늑대의 입김이 있다면, 불안정하고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일상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둘러싸이고 있다. 곳곳에서 들리는 지진, 해일, 태풍과 같은 재해는 물론이고, 세계를 긴장하게 하는 전쟁이나 원전사고의 위협,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까지. 그러나 같은 경험 속에서도 우리는 무엇을 가졌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따라, 그 위기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고 혹은 그로 인해 한순간에 삶이 무너질 수도 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주변의 재난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재난 속에서 마주하는 차별과 배제 

-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 선언 -

5조 (구조의 의무)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재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고 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구조에 있어서 그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재난의 위험과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특히 장애인들에게 재난 상황은 더욱 참담하고 치명적이다. 4.16 씨네토크의 두 번째 영화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이다 모토하루/일본/다큐/2012)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겪은 피해 지역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이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과 과제들을 전달한다. 



영화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그날로부터,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었던 것인가. (영화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서)


대지진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경추손상장애인은 연락을 취할 수도, 흔들리는 가구를 피할 수도 없이 죽음의 공포를 직면한다. 쓰나미가 밀려올 때 활동보조인이 옆에 없었던 중증장애인은 결국 손 쓸 수 없이 물길에 휩싸였다.  


그런가 하면, 피난시설의 불편과 이웃에 폐가 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혹은 자폐성 장애로 인해 소통이 어려워서, 피난하지 못하고 위험지역에 남기를 선택한 장애인과 그 가족들도 있다. 그러나 남아있는 동안에도 이들의 생활은 끊임없는 어려움의 연속이다. 건강상의 위험은 물론이고, 물류와 의료서비스가 중단되거나, 장애로 인해 정보를 얻을 수 없어 필요한 지원을 못 받거나, 지원을 받고 싶어도 너무 멀어서 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피난소로 대피한 장애인들의 경우는 어땠을까?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피난소에 침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2주 동안을 눕지 못한 채로 생활하고 잠들어야 했다. 피난소 생활 4개월 만에 마련된 가설주택에서는 현관 앞 계단과 좁은 화장실 때문에 도움 없이는 외출할 수도, 씻을 수도 없는 생활을 해야 했다. 


주위의 편견과 차별도 장애인들의 재난 상황 극복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이다. 피난소에서 이웃으로부터 “장애가 있으니 집이 있다면 돌아가라” 같은 이야기를 듣거나, 행정청에 생필품 배달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장애인은 자신을 향하는 차가운 사회의 태도를 겪으면서 “미움받을까 봐” 걱정되어 필요한 것도 요구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재해∙재난 시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파악하고 피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국가와 지역사회의 당연한 과제이다.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을 때 누구보다 큰 위험에 처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약자’들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후쿠시마 사고지역 장애인들의 이야기는 재난 상황에서조차도 (어쩌면 재난 상황이라서 더더욱) 공평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재난과 일상은 맞닿아 있다

-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 선언 -

1조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돈이나 권력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보다 앞설 수 없다. 

2조 (자유와 평등)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어떠한 이유로도 억압당하거나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특별히’ 재난 상황이기 때문이 아니다. 씨네토크 게스트 타리(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재난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도 일상에서의 대우들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한다. 장애인들이 재난 상황에서 마주하는 위험과 차별은 일상에서 겪는 위험과 차별을 그대로 반영한다.


사실 장애인들은 재난 상황이 아니라도 언제나 위태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화재나 발생하거나 정전사태가 일어나는 일, 도로가 고르지 않거나 갑자기 무언가 튀어나오는 일…… 비장애인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평범한 장면들도 장애인에게는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재난상황이 될 수 있다. 



ⓒ 페이스북 페이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농성'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열악한 복지체계, 사회에서 쉽게 지워지고 타자화되는 장애인들의 위치 역시 일상과 다르지 않다. 영화 속 휠체어 장애인은 재난이 발생하기 전 후쿠시마에서도 버스로 외출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폐를 끼칠까 봐, 미움 받을까 봐 늘 걱정하고 주저하는 장애인들의 태도는 그 동안 그들이 받았을 차가운 시선과 그로 인해 키워온 당사자들의 죄책감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재난과 일상의 경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분명하지 않다. 재난은 오히려 일상에서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어 있던 모순과 불평등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더더욱 재난을 고민한다면,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평소에 ‘어떤 목소리를 듣지 못해 왔는지’, ‘누가 배제되고 있었는지’ 질문하고 기존의 불평등을 성찰해야 한다. 



  어떤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있었나

-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 선언 -

9조 (치유와 회복) 피해자는 재난 발생 즉시 필요한 구제와 지원을 평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치유와 회복을 위해 적극적이고 충분한 조치를 취한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 한국사회로 돌아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5년 전 일본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었다면, 한국에서는 불과 2년 전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단면을 압축적으로 드러내었던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세월호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있었을까? 씨네토크의 게스트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공감)는 우리가 놓치고 있던, “숫자로만 이야기했을 때에는 드러나지 않던” 수많은 세월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세월호 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대다수는 우리 사회에서 동등한 주체이나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청소년들이었다. 늘 통제의 대상이 되어 ‘가만히 있기를’ 요구받았던 청소년들은 끝내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하거나 돌아온 이후에도 ‘보호의 대상’이 되어 참사 이후 해결과 회복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학생들과 함께 남겨진 기간제 교사들은 동료 정규직 교사들과 달리 순직 처리되지 않았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불평등을 구조화하는 계산법이 죽음에 이르러서까지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의 피해자로 온전히 호명되지 못하고 그 안에서도 배제되었던 사람들이 있다. 배 안의 다른 탑승객들, 화물기사들, 직원들, 자원봉사자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 또 다른 피해와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던 민간 잠수사들, 진도 어민들 등이 그렇다. 한국어 자료만 배포되어 정보를 받지 못한 이주민 피해자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다리며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터를 향하는 한부모가정 학부모들의 이야기는 재난 상황이 누구에게서 더 비극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겉으로는 하나의 재난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부조리한 차별,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 무책임하고 무능한 사후 조치, 극단적인 자본논리와 같은 중첩된 불평등이 내재해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형 대형참사에서 어떻게 사회적 약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지, 또 재난 안에서 다시 어떤 배제들이 일어나는지 확인시켜주는 사건이었다. 특히 재난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는 국가가 가장 앞장서서 세월호에 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산사람과 죽은 사람을, 유가족과 외부세력을, 학생과 일반인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며 계속해서 누군가를 피해자의 범위에서 제외시키고 축소시켰다. 


후쿠시마와 세월호 참사는 재난을 경험한 사회라면 반드시 들리지 못한 목소리, 보이지 않던 문제들에 주목해야 하며, 이를 통해 인권은 무엇이고 평등은 어떤 의미이어야 하는지 되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윤지영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하며 평등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평등이란 나와 당신, 혹은 우리의 존재를 주변화시키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라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 선언 -

11조 (기억과 기록) 공동체는 피해자를 기억하고, 재난과 그 해결의 전 과정을 기록하여야 한다.

13조 (존엄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 권리) 모든 사람은 돈과 권력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 자유와 평등, 연대와 협력,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 권리를 가진다. 


세월호와 후쿠시마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재난을 겪은 피해자들 모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영화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은 인력이 부족한 지역복지서비스, 마련되지 못한 재해 피난/구호 시스템, 장애유형과 개개인의 환경에 맞는 지원체계 부족을 지적하며, “장애인들의 재해는 아직도 진행 중”임을 역설한다. 


며칠 뒤면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돌아온다. 세월호를 겪은 한국 사회 역시 그동안 크게 변한 것이 없다. 피해자 가족과 시민들이 한파를 견디며 농성을 하고, 불볕더위를 뚫고 거리를 걸으며, 곡기를 끊고 진실을 요구하고, 물대포에 쓰러지며 정의를 요구하였으나 그들이 마주한 것은 존엄과 안전의 요구를 봉쇄하는 차벽이었고, 인권의 주장을 거부하는 진압작전이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언론의 왜곡과 우익 대중의 모욕이었다. 오히려 안전을 산업화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정부 정책은 여전하고, 참사 피해자들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지원도 부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안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신뢰마저 무너졌던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떻게 하면 이전과 다른 안전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가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씨네토크 진행을 맡은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활동가는 “안전이란 단지 재난을 피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참사로부터 어떻게 회복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세월호와 그 안의 목소리들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조금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안전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세월호 이전과는 달라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부터 제대로 마주하고, 철저히 기록하고,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하고 기억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아기 돼지 세 형제가 함께 살아가려면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아기 돼지 세 형제 이야기의 주요한 교훈은 미래를 대비해 성실하고 영리하게 집을 지었던 막내 돼지를 본받자는 것이다. 그러나 시작하며 말했던 것처럼 현실에서 우리는 모두 벽돌집에서 사는 것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지푸라기 집에 살 수 밖에 없거나 자신을 보호해줄 집조차 없는 취약한 상황에 몰려 있다. 왜 진작에 튼튼하게 집을 짓지 않았느냐고, 그것을 개인의 무능력과 게으름이라고 탓한다면 결국 또 다른 늑대나 강풍이 나타났을 때 다시 누군가의 삶은 무너지고 더 위태로워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4·16 씨네토크 발언발언 중인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



씨네토크에서 손희정(땡땡책 협동조합) 활동가는 “세월호를 겪은 이후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위험’이라는 수사를 통해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오히려 탈정치화와 각자도생의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모두를 위한 튼튼한 안전망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물음과 요구가 향해야 하는 것은 개인들이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지탱할 국가와 지역사회여야 한다. 


인권은 때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옵션도, 누군가 시혜적으로 베풀어주는 선물도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인권은 위기 상황이라서, 여력이 되지 않아서, 다른 것을 위해서 언제든지 포기되고 밀려날 것이다. 하지만 인권은 이 사회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며, 따라서 누구나 ‘당연히 요청할 수 있는 권리’로서 존재해야 한다. 그렇기에 재난은 약자가 방치되고 억압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기민하게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이유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돌아오는 4월, 세월호와 그로 인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잊지 않고 바꾸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담은 ‘존엄과 안전에 대한 4.16 인권선언’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나아가 선언이란 목소리가 모일수록 더 큰 힘을 갖는 것이기에,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부터 한 번이라도 더 말하고 주변에 알린다면 좋겠다고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한다.  


글_신소현(공감 23기 자원활동가)

편집_허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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