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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전 성평등기본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 조항에 대한 삭제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여성가족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대한문 앞에서 주최된 이 궐기대회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여성 성소수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사회 규범적인 여성성만을 강제하는 여성가족부에 강한 분노를 표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여성 성소수자는 여성의 권익 향상과 성적 평등을 지향한다는 기관에서조차 배제당하며, 사회적으로 매우 취약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장서연 변호사와 함께한 성소수자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는 순간에도 나는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삭제당하고 있는 존재들

 

 

사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하는 행위의 패턴은 역사적으로 뿌리 깊고 지속적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근대 이성애규범적 핵가족 제도가 확산되었고, 이와 동시에 동성애라는 독자적인 정체성이 표면적으로 문제화되기 시작되며, 기존 이성애 핵가족 구조에 편입되지 못한 성소수자들은 점점 주변화되고 다양한 영역에서 배제당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비생식적인 성’으로 분류된 성소수자는 오직 쾌락만을 탐닉하는 집단으로 치부되며, 결혼이란 ‘신성한’ 제도에 의해 배제됨과 동시에, 결혼 평등을 이루려는 이들의 목소리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침묵을 요구당해왔다.

 

굳이 결혼이라는 광범위한 제도적인 측면까지 바라보지 않아도 이 같은 폭력적인 삭제와 일축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20대 초반 남성 동성애자들의 삶과 현실을 그려낸 영화 <친구사이?>는 2009년 개봉과 함께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는데, 그 이유인즉슨, 해당 영화가 모방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노출과 성적 접촉 등의 묘사가 포함된 일부 장면이 선정적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등급 분류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비정상적인 범주에 귀속시키려는 행위이자, 그들의 존재 자체를 유해한 것으로 인식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다행스럽게도 대법원의 판결로 영화에 적용된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이 철회됐지만, 본 사례는 예술의 영역에서조차도 그 존재가 소실 당하는 성소수자의 위치를 첨예하게 보여준다.

 

하물며 이성애 질서와 남성성이 극한으로 요구되는 군대는 어떠할까? ‘군형법 92조6’은 군대 내 동성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으로, 동성애 자체를 추행과 동일시하며, 동성애를 ‘계간 (항문성교)’으로 밖에 해석하지 못하는 무지함을 보여준다. 인권이나 정의라는 가치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조항에서 성소수자는 ‘항문성교를 통해 동성을 추행하는 집단’ 정도로 정의된다. 더 나아가, 해당 조항은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다양한 규범들의 재생산을 수행함으로써 혐오를 통해 배제로 귀결되는 도식을 더욱 공고하게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2011년에 UN 인권 이사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종식하고, 그들의 권리 증익을 도모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우리나라도 이 결의안에 서명한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결의안이 우리나라에서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인권변호사를 자처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개신교 세력에 항복해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보수 개신교 조직들은 퀴어문화축제 행진을 향해 인분을 투척하는 등 혐오로 무장한 방해를 일삼았으며, 서울시민 인권헌장의 제정은 거센 논란 끝에 결국 폐기되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 인권의 현주소는 ‘서울시민은 누구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생래적이어야 할 명제조차 논란의 불씨로 쟁점화되는 위치에 있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 세계인권선언 제1조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가 보장하는 자유와 존엄 그리고 권리를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소수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우리 사회는 외면과 침묵에서 벗어나, 그들을 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게 될까? 우리에겐 희망이 있을까?

 

이러한 물음들이 세미나를 듣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성소수자 운동,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소수자의 운동이 희망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는 자신들이 권익투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을 한 후로 줄곧 그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앞장서왔다. 미국에서는 콘돔 사용의 부재로 동료 동성애자들이 AIDS로 사망해나가자 성소수자 사이에서 자생적인 Safe Sex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일도 있었고, 스톤월 항쟁을 중심으로 동성애를 범죄화하는 공권력에 맞선 ‘동성애자 해방 전선’을 성소수자가 주축이 돼 이끌어나간 사건도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문화적 특성상 성소수자들이 엄격한 법적 한계와 차별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혐오세력의 방해로 인해 퀴어문화축제가 취소될 위기에도 불구, 경찰서 앞에서 약 1주일간 철야하며 결집력을 보여준 활동가들 덕분에 행사가 무사히 개최됐으며,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등 사회의 가장 취약한 위치에서도 성소수자들은 그들의 권리를 쟁취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되었던’ 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가며 인권 개선의 최전방에서 투쟁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은 성소수자의 삶을 크게 향상시켜왔다. 스톤월 항쟁이 일어난 지 46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데 성공했고,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의 정체성이 가시화된 지 얼마 안 됐음에도 불구,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이 같은 사건들의 조각을 맞춰보면서 나는 희망을 느낀다. 언젠가는 평등과 자유라는 매우 기초적인 가치가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올 날을 위해 이 의미있는 투쟁에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소수자라는 이유로 배제되고 외면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다.

 

그리고 이 투쟁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자명하다.


 

글_이예찬(공감 22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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