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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 듣지 않으면 때리고 묶고 가둔다. 2포인트 강박, 3포인트 강박, 5포인트 강박… 그나마 정신병원은 형편이 좋은 것이다. 일반 민간 시설에서는 먹방에 가두고 기저귀, 대야…”

 

신보건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찔해진 저는 아주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게 사실인가요? 그러니까,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지, 그런 일이 흔히 일어나는지… 실감이 나지 않아서요.”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일들은 모두 옛날 일이라고 생각했고 소수의 극악한 사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신보건시설에 수용된 인원은 8만여 명이고, 그중 70% 이상은 본인이 원치 않는 강제입원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접수된 전체 진정사건 중 18.5%가 정신보건시설의 인권침해 진정사건이라고 합니다. 정신보건시설에서 인권유린이 아직도 흔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머리가 멍~했습니다. 왜 나는 장애인에 관한 문제가 이미 어느 정도 해결된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어디서부터 그렇게 믿어온 것인지 되짚어보았습니다.

 

 

1.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것도 명백한 차별입니다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입니까?

 

 장애인이 이 질문의 대상이 될 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살기 좋은’을 ‘살 수 있는’으로 바꿔서 묻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장애인에게는 기본 생활이 가능하다면 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장애인에 대해 말할 때, 행복의 여부가 생활 가능 여부의 문제로 전치되는 이유는 차별의 정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직접차별’과 ‘간접차별’은 이견의 여지 없이 장애인 차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직접차별이란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불리하게 대하는 것이고, 간접차별이란 형식적으로는 평등하게 대우하나 결과에서는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장애인 차별은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제공을 거부하는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일례로, 장애로 인해 손목 관절염을 앓고 있는 A씨가 채용심사의 한 과정인 타이핑테스트를 치르기 위해 특수키보드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테스트 당일 고용주가 특수키보드를 준비하지 않아 의뢰인이 테스트를 통과할 수 없었고 고용되지 못했습니다. 이 경우 미채용 사유가 장애가 아닌 테스트 결과이기 때문에 직접차별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는 정당한 편의제공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차별입니다. 정당한 편의제공거부가 차별이 아니라면, 직접차별금지 및 간접차별금지는 유명이 무실해지는 것입니다.


이 사례를 듣고, ‘어디까지 편의를 봐줘야 하는데? 회사 마음대로 사람을 뽑는 건데 특수키보드까지 준비해줘야 하나?’라는 의문이 드신다면, 여전히 장애인의 행복을 생존, 생활 가능성 정도로만 여기고 계신 것입니다. 만일 시험을 보러 갔는데 혼자만 매우 높은 책상을 배정받았다면 감독관에게 책상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단순합니다. 특수키보드 요구는 책상을 바꿔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만 그 요청이 과도한 부담을 야기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경우는 예외로 합니다)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또는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이고 일률적인 편의를 제공하고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결과와 행복에서 장애인에게 차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장애인을 동등한 사회성원으로 여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2. 보호의 탈을 쓴 억압을 벗겨내야 합니다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가 분명한 차별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 정도 해주면 됐어”라는 식의 장애인 보호는 오히려 인권을 억압하는 기제로 쓰입니다. 더욱이 보호라는 이름을 걸고 있으므로 억압의 실체를 밝히는 일은 더 어려워집니다.


장애인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은 그것을 뛰어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관계는 보호를 베풀고, 보호를 받는 상하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상하관계 속에서의 보호는 진정한 보호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보호는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장애인들을 중심으로, 비장애인들에게 불편함이 되지 않는 선에서, 혹은 이득이 되는 선에서만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호의 이름으로 포장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를 직시하고 이를 허물어야 합니다.


현행 정신보건법상의 정신장애인 입원절차는 보호가 어떻게 억압이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보호자 2인과 의사의 진단이 있으면 정신장애인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입원할 수 있습니다.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이 법이 제정되고 시행되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정신장애인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마땅히 보호와 치료 목적으로 격리되어도 괜찮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보호라는 허울을 들춰내어 보면 정신장애인이 (비장애인들에게 해가 될 만한) 잠재적인 범죄자라는 인식, (비장애인들에게 이익이 되는) 의료권력 등이 그 기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다음과 같은 판결을 가능하게 합니다. 1994년 여름 수원역 근처에서 발견된 현 모 씨는 아무런 신원확인절차도 없이 경찰과 행정공무원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당하였습니다. 13년이 지난 후 신원확인을 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현 모 씨는 신원확인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정신병원에 장기간 입원하게 된 점에 대해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동안 입원비와 급식비로 지급된 돈이 청구한 금액을 초과한다며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습니다. "그 정도 해줬으면 됐다”는 것이지요.

 

 

3. “진짜 행복”을 물어야 합니다

 

단순히 먹고 자는 생존만이 인간이 의욕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은 이제 누구에게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의식 한구석에서 장애인들에게는 “그 정도면 됐어”라는 편협한 자리만 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장애인등급제, 부양의무제 등 장애인의 생존을 어렵게 하는 법적 · 제도적 문제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장애인의 행복을 나의 행복과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먼저입니다. 그 이후에 보호의 탈을 쓴 차별과 억압을 벗겨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장애인의 “진짜 행복”을 묻게 될 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고 받는 것이 마땅한 의무이자 권리로서 모든 사회 구성원의 인식에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스스로 물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도 살기 좋은 나라입니까?


 

글_장혜민(공감 22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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