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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구술기록집 “숫자가 된 사람들”

- 숫자에서 사람의 목소리로-

 

  2015년 7월, 11명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 세상에 나왔다. “숫자가 된 사람들”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구술집이다. 형제복지원은 1971년 보육시설에서 “부랑인 보호시설”로 전환한 이래 수많은 사람을 가두고 폭행, 살인, 강간을 조직적으로 실행하거나 묵인하는 등 엄청난 인권유린을 자행한 시설이다.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최소 513명이 사망했다. 1987년 검찰 수사 하에 형제복지원은 폐쇄되었지만 관련자 누구에게도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당시 형제복지원 원장은 부당하게 받아 챙긴 막대한 정부 보조금에 대한 추징도 없이 징역 2년 반 형만을 살고 사회로 복귀했다. 그리고 형제복지원을 경험한 피해생존자들은 여전히 그 기억을 생생히 가지고 지워지지 않는 영향력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이 책은 그 기억의 일부이다.

 

  이 책은 11명의 피해생존자들이 직접 말한 자신의 생애사로 구성되어 있다. 각 이야기는 주로 각자가 어떻게 형제복지원에 들어갔는가,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가, 복지원에서 나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그리고 앞으로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안에 담긴 한 명 한 명의 삶은 각양각색이다.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가는데 영문도 모르고 붙들려간 아이가 형제복지원을 나와 자라서 목수 계통 책임자 일을 하다가 은퇴하기도 했고, 가정폭력을 행하던 아버지에 의해 형제복지원으로 보내졌던 소년은 이제 배우자와 함께 노점상으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양한 삶 속에서도 일관되게 반복되는 몇몇 진술이 눈에 띄었다. 먼저 피해생존자들은 학생이나 주거가 명확한 아동 등 부랑인과 무관하거나, 비록 홈리스긴 하지만 직장이 있어서 스스로 생계부양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이는 부랑인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 자활을 도왔다는 형제복지원 측의 주장을 반증하며, 부랑인 단속을 지시한 내무부 훈령 410호가 잘못 집행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여러 진술자가 국가책임에 대한 문제의식을 내비쳤다. 내무부 훈령 410호나 정부가 형제복지원에 지급한 막대한 지원금, 그리고 부실수사가 전부가 아니다. 거의 모든 진술자는 경찰이나 파출소 직원에 의해 형제복지원으로 인계되었다고 증언했다. 이들이 간신히 형제복지원을 탈출하고서도 얼마 못 가 다시 그 곳으로 잡혀 들어간 것도 경찰에 의해서였다. 부랑인 단속을 위탁한 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의 허술함을 넘어선 국가의 직접적인 책임이 눈에 뜨이는 부분이다. 몇 명은 정부나 사법부가 당시 원장을 비롯한 가해자에 대해 정당한 책임을 묻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많은 피해생존자가 당시 어린 아이였다는 점이다. 지금 형제복지원에 대해 증언하는 이들은 사십에서 육십대 사이의 성인이지만 당시에는 십대, 혹은 그보다도 어린 아이들이었다. 성인으로서 경험했어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져왔을 경험을 어린 시절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씩 하면서 이들에게 가해진 신체적·정신적 폭력, 박탈당한 교육과 평범한 삶의 기회는 빈곤·질병·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자살 등의 형태로 이후 삶에도 지속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생존자의 말은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잃어버린 13년, 그게 내 인생의 전부예요. … 형제원 피해자들의 문제는 다만 그 몇 년의 고통이 아니에요. 우리는 밖에 나와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통합되지 못했어요(p.37).”

 

  형제복지원이 이들의 인생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진술자들이 한결같이 진상규명에 대한 강한 열망을 표현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정확히 어떤 경위로 내무부 훈령 410호가 엉뚱한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근거가 되었는지, 어떻게 이토록 거대한 시설 문제가 감춰질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에서 지역사회까지 모두가 묵인했는지, 왜 수사도 추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국가는 왜 피해자들을 외면했는지.

 

  지금까지 “내가 배운 역사엔 시설도 부랑아도 없었(p.126)”다. 하지만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묻힌 것이다. 이 책은 그 가려진 삶의 진술이자 기록이다. 누군가는 부랑인이라서 잡혀 들어갔을 거라는 낙인 때문에,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으로, 혹은 그 밖의 여러 이유로 인해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히고 그에 합당한 요구를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다. 여전히 고통스러워서 말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목소리를 냈고, 이제는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귀 기울일 차례다.

 

  지난 7월 3일, 나는 국회의 한 회의실에서 일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분들과 함께 형제복지원 특별법안 공청회를 실시간으로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은 피해생존자이자 진술인 한종선 씨가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청하는 글을 고조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는 것을 보고 여러 분이 눈물을 흘렸다. 공청회가 끝나고 모인 자리에서 한종선 씨는 멋쩍게 웃으며 해야 할 말을 충분히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원장도, 국가도 그 책임을 지지 않았고, 대부분의 가능한 공소시효는 만료되었으며, 진상규명과 피해자 배·보상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안이 이번 국회 회기 내로 통과될지는 요원하다. 이 상황에서 피해생존자들이 알고 싶은 진실만큼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 말을 들어주고 함께 하면 좋겠다.

 

글_최현주 (공감 21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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