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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8일에야 시청 광장에서 2015년의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릴 수 있었다. 지난 해 방해 세력과의 대치로 행진을 멈춰서야 했던 일에서 모두가 예상했듯, 올해 축제 개최까지의 여정은 보다 험난했다. 조직적인 집회 신고 방해로 인하여 개막식이 끝나고 이 주나 후에 본 행사가 열릴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퀴어 문화 축제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평화와 자긍심으로 충만한 날이었다.

 

 

  우리 성소수자 월례 포럼팀은 포럼의 후속 작업으로 축제 부스 행사를 준비하였다. 부스행사에서는 매뉴얼 배포, 메모 보드 설치, 포토 프레임 제공과 레고 목걸이 및 무지개 팔찌 판매가 이루어졌다. 포럼의 주제가 ‘성소수자 친화적 공동체 만들기’였기 때문에, 부스에서는 포럼에서 논의된 얘기를 종합하여 자체 제작한 매뉴얼을 배포하고,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국가/학교/직장/가족에게 바라는 점들을 적을 수 있는 보드를 설치하는 것을 주 행사 내용으로 정했다. 대부분의 행사가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 한 두 시간 내에 준비한 것들이 대부분 끝날 정도였다. 매뉴얼을 배포하고, 보드를 설치한 것이 각자의 생각을 전달하고 수집하게는 하였지만, 그것이 실시간으로 공유된 것이 아니어서 아쉬웠다. 보드에 적힌 얘기들을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고 지나갔었는데 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거나, 매뉴얼을 가져가신 분들이 어떤 생각으로 가져갔고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이를 어떻게 활용하실 생각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시간이 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스를 지키는 중간 중간 활동가들과 다른 부스를 구경하러 다녔다. 여러 대사관부터 각 대학의 성소수자 모임, 페미니스트 단체와 동물 권리 운동 단체, 인권 동아리 등 정말 다양한 단체가 참여하였다. 다른 부스에서 뭘 진행하는지 눈으로 보기도 하고, 무지개 아이템을 구매하기도 하고, 서명도 하며 돌아다니다가, 자원 활동가 한 명과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 연대(차세기연)’부스에서 진행하는 ‘인간 띠 잇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축제를 방해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폴리스 라인을 두른 채로 축제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축제를 방해하려는 사람들을 ‘입구’에서 선별하는(?) 것을 돕는 것이 이 캠페인이었다. “우리는 혐오와 차별 선동에 반대합니다.”라는 배너를 목에 걸고, 출입구를 제한하는 띠를 붙잡고 반대 세력이 들어오려는 것, 무단으로 사진을 찍는 것에 항의하고 싸웠다. 오랜 시간 서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막았다. 나야 축제라는 기분에 들떠, 짧은 시간만 참여해 그다지 힘겹지 않았지만, 이것을 일상적으로 싸워 내야 하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떠할까? 울타리를 경계로 안전한 축제의 장과 전투의 장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저녁 즈음이 되어, 퍼레이드 카의 진두지휘를 받으며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퍼레이드 카와 거리가 멀어 축제보다는 집회에 나간 것 같아 신이 날 것도 없었지만, 공간 여기저기에 퍼져 있던 사람들이 앞뒤 좌우에 ‘존재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길가에도 행진 열을 따라 혐오 표현을 하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에 되받아 환호성을 지르거나 맞사진을 찍으려 하면 하나같이 시선을 회피하고 조용해졌다. 자신들의 그러한 행동에 주눅들 줄 알았던 사람들이 당당하니 두려워하는 것이 비겁해서 우스웠다.

 

 

  행진 이후에는 다시 시청 광장에서 무대 행사가 이루어졌고 공감은 이른 뒤풀이를 시작하였다. 수다를 떠는 사이 본 행사가 모두 끝나고 사람들이 서서히 흩어졌는데, 평화롭게 축제가 끝난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너무나 아쉬웠다. 정말 축제다운 하루여서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반대 세력의 집중적 반발로 인하여, 축제가 다 끝나고 나서 오히려 논쟁이 시작되었다. 퀴어 문화 축제가 개최된 지 10년여가 지났는데 ‘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려야 하는 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퀴어 문화 축제는 인권 운동의 차원에서도, 축제 본연의 차원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먼저는 이렇듯 퀴어가 논쟁적이기 때문이다. 퀴어들이 논란이 대상이 된다는 점, 그들에게 숨어 지낼 것을 바라는 묵시적 압력이 존재하는 이상, 그들의 존재에 대한 적극적인 논쟁을 불 피울 퀴어 퍼레이드는 이슈 파이팅의 측면에서 필요하다. 둘째는 만남과 연대의 장이라는 점이다. 축제에 참여했던 지인들은 공통적으로 ‘이 곳에서 인권에 관심 있다는 친구들을 다 만날 수 있었다.’는 경험을 얘기했다. 다양한 운동 영역에서 얼마나 많은 관심과 연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일 것이다. 대중 운동에 있어 서로를 확인하고 연합하는 작업은 핵심적이다. 광장에서, 행진에서 서로의 발견이 기쁨을 주었던 것은 축제가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있어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축제 자체의 의의다.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공감 구성원들과의 얘기에서 감지할 수 있던 것은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인간띠잇기 활동에서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었지만, 소수자에게 삶은 전투와 같고, 지속된 국지전은 운동과 삶을 지치고 슬프게 만든다. 운동의 지속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즐거운 경험은 절실한 필요를 갖는다. 퀴어 문화 축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써 다시 일상을 버텨나갈 힘을 주고 운동의 맥을 이어 준다.

 

 

  나는 무엇보다도 즐거움에 주목하고 싶다. 퀴어 문화 축제에서 느낀 즐거움은 다양한 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음악이 있기 때문에, 여유롭게 풀밭에서 뒹굴 거릴 수 있었기 때문에, 재미있는 차림을 한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함께 한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게 즐거웠던 것은 공간 안에 가득했던, 그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나를 구성하는 어떤 소수자성들로 인하여, 일상에서 나는 대부분 긴장하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생김새에 대하여, 신체에 대하여, 행동에 대하여, 말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어느 것에서도 타인의 혹독한 평가에서 자유로워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축제에서 예외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길 필요도 없고, ‘굳이’ 소개하고 드러내야 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어떤 차림을 하고 있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나아가 내가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나는 이 곳에서 안전하고 자유로웠고, 그렇기 때문에 내내 행복하고 즐거웠다. 시선의 폭력에서 자유로운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지, 이제는 이 경험을 통해 상상할 수 있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면서, 모두가 당연하게 서로를 지지하는 세상.

 

 

 

  우리는 사회에 의해 나의 삶과 자신에 대하여 평가당하고 간섭되는 것에 어느 새 익숙하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자신을 부정당하는 슬픔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퀴어 문화 축제가 선사하는 즐거움은 ‘드러냄’의 즐거움이고, ‘당당함’의 즐거움이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기 시작할 때, 나의 몸과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진 주체가 될 때, 억압을 가하던 사회는 오히려 겁을 먹기 시작한다. 그걸 확인하게 되었을 때, 이제는 슬퍼만 하지 않고 맞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 한 달 간, 포럼팀은 성소수자 친화적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포럼을 준비했고, 그 결과로 공감 내에 이성애자-성소수자의 연대, 지지 모임인 ‘공감 BRIDGE’를 만들었다. “모든 사람이 성소수자와 만나는 그 날까지”, 공감은 성소수자 지지를 표방하는 활동을 확장할 것이고, 퀴어 문화 축제는 계속해서 열릴 것이다. ‘그 날’ 우리가 만나게 될 사람들은, 직접적으로는 퀴어 당사자들이며, 나아가서는 자신을 부정해본 경험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하기 위하여, 성소수자들을 만나고 ‘사랑’이라는 모두의 동일한 이슈를 발견하자.

 

 

  “사랑하라, 저항하라, Queer Revolution.” 사랑은 명백히 혁명이 될 것이다.

 

글_박정원 (공감 21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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